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Jul 18. 2021

쌍둥 아기오리 (번외 편)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K 대학교 오리연못은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그곳에 유난히 목이 길고 깃털에 윤기가 흐르는 어미 오리가 알을 품고 있었어요. 전 세계를 덮친 A형 조류독감으로 오리 개체수가 줄면서 멸종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왕년에 빼어난 미모로 조류계의 기대주였던 어미 오리는 봄부터 노력해서 아홉 개의 유정란을 만들었고, 귀여운 아기오리가 태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경험을 살려 배아가 껍질에 들어붙지 않도록 부지런히 알을 굴려주었어요. 달걀이 병아리가 되려면 3주가 걸리지만 오리알은 4주를 기다려야 귀여운 아기 오리가 태어난답니다.


"꽥꽥 꽥꽥"

마침내 어미 오리의 배 아래서 귀여운 아기오리들이 알을 깨뜨리고 머리를 내밀었어요.


"어머나! 어쩜 이렇게 나를 닮아서 사랑스러울까!"

어미 오리는 한껏 뿌듯해하며 한 마리 한 마리 부리를 맞추면서 세어보았어요. 그런데 구석에 아직 깨지 않은 푸른 알이 오늘따라 더 커 보입니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이웃 오리들이 수군거립니다.


"날도 더운데 이 골아버린 것 같은 알은 갖다 버리라고~"


다른 오리들의 마음에도 없는 말에는 아랑곳 않고 분명 특별한 녀석이라 믿고 며칠을 더 품어봅니다. 이틀이 지나자 커다란 알에 금이 가더니 아기오리가 나왔습니다.


 "꽥꽥 꽥꽥! 꽥꽥 꽈악~"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 아기오리를 쳐다봅니다. 어머나! 한 마리에 이어 또 한 마리까지 쌍둥 오리네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보다 몸집도 작고 생김새도 좀 다릅니다. 깃털은 창백하고 부리와 발이 검네요. 다른 오리들이 신기한 쌍둥 오리들을 보고 달려들어 한 소리씩 해대기 시작합니다.


"얘들은 오리 새끼가 아니야. 물에 들어가면 헤엄도 못 치고 빠져버릴 것 같은데."

"아니 상태가 왜 이래요? 알 속에 오래 있더니 불량으로 태어났나 봐."

불길하게  색깔이 흐리멍덩해? 병약해서 얼마  가서 죽는  아니야?”


 어미 오리는 확인할 것이 있어 아기오리  마리를 몰고 오리연못으로 갔습니다. 어미 오리가 우아하게  위로 미끄러지자 아기 오리들도 따라서 하나둘씩 입수를 시작합니다. 쌍둥 아기오리도 다른 아기오리들과 함께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합니다.


"헤엄을  치네! 역시  아이들이 !"

 하지만 다른 여덟 마리 오리들은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도 작은 쌍둥 아기오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유, 창피해. 저 이상하게 생긴 것들이 내 동생이라니!"

"너네들 때문에 괜히 우리까지 놀림을 받잖아!"

"고양이한테 잡아먹혀버렸으면 좋겠네~"


 다른 아기오리들은 합심해서 쌍둥이 아기오리를 물어뜯고 쪼아대었어요. 밥을 먹을 때에도 물고기, 곤충, 양서류 등의 영양가 있는 반찬은 자기네들끼리 나눠 먹고 둥이들에게는 잡초 남겨 주었어요. 쌍둥 아기오리들은 수초의 뿌리까지 꼭꼭 씹어서 사이좋게 먹었어요. 둘이서 너무  먹으니 다른 아기오리들은 괜히 화가 났습니다.


 3년을 지켜보던 어미 오리는 마음 한편이 쓰라립니다. 그리고  아기오리의 행복을 위해  결심을 합니다. 다른 오리들과 어울려   없다면 남쪽나라에 보내기로 말이죠. 그날 ,  아기오리들을 조용히 불러 빅픽쳐를 보여줍니다. 어미 오리의 이야기를 들은 쌍둥 아기오리들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악몽 같은 곳을 벗어나게  줘서 고마워요, 엄마! 남쪽나라에우리를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존재가 분명 있을 거예요!"

 쌍둥 아기오리는 서둘러 떠났습니다. 밤에 출발해서 한참을 걷다 보니 아침에서야 작은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친구가 있나 찾아보려고 돌담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아기참새들이 돌담 아래에서 무리로 놀고 있네요.


“짹짹짹 짹짹”

"아기참새야, 안녕! 여기는 어떤 곳이니?"

 아기오리는 돌담에서 쿵하고 뛰어내렸습니다. 아기참새들은 둥이 아기오리가 일으키는 바람이 놀라 후루룩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기오리들은 배도 고프고 의기소침해져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커다란 늪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기러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쌍둥 아기오리는 목을 축이고 반나절을 늪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그러자 기러기들이 불량하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이봐 애송이들, 너희의 분명하지 않고 흐리멍덩한 깃털 색깔이 참 마음에 드는구나. 우리랑 놀지 않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우린 남쪽나라에 가던 길이라 시간이 없어요."

“계모에게 버림받고 어린것들이 참 안 됐구나. 남쪽나라에 숨겨둔 아버지라도 있니?”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탕! 탕! 탕" 총소리가 났습니다. 겁에 질린 기러기들이 푸드덕 날아갔는데, 미처 피하지 못한 기러기 한 마리가 총에 맞아서 땅에 떨어집니다. 아기 오리들은 무서워서 갈대숲에 엎드려 숨었습니다. 사냥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사냥개는 죽은 척하는 아기 오리들에게 코를 들이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죽은 기러기를 찾아 물고는 그냥 가버렸습니다.


"휴~ 다행이다.”

사냥개가 영리하지는 않은데! 그런데 기러기들이 말한 계모와 숨겨둔 아버지는 무슨 이야기일까?"

괜히 던져본 소리 아닐까? 원래 기러기들이 의심 많고 함정 파고 넘겨짚기를 잘하잖아.”


 아기오리 두 마리는 다시 기운을 내서 걸어갑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할머니와 고양이와 암탉이 살고 있었지요. 아기오리는 온기가 느껴지는 집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낯선 아기오리들을 발견한 고양이가 고르릉 거리고 암탉은 꼬꼬댁거리기 시작합니다. 주인 할머니가 소란에 다가와서 보니 두 마리 아기오리가 있네요.


"솜털이 날리는 어린 녀석들이 불쌍하기도 해라. 갈 곳이 없으면 여기서 지내도 좋다."

 

 할머니는 두 마리 아기오리를 보고 수컷만 아니라면 알을 낳을 수 있겠구나 계산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었어요. 아기오리는 모처럼 따뜻한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3주가 지나면서도 아기오리들이 알을 낳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자 고양이와 암탉이 할머니가 없을 때 주인행세를 하면서 오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너희들 알은 낳을 수 있는 거니?"

"아니요."

"그럼 쥐는 잡을 수 있어?"

"쥐는 무서워요."

"양식만 두 배로 축내고 아무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 굴러들어 왔군!"

"죄송해요. 저희는 이제 남쪽나라로 가야겠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쌍둥 아기오리들은 심술쟁이 고양이와 암탉의 등살에 지쳐 떠나기로 했어요. 며칠을 밭과 들판을 걷고 또 걸어 어느 호수에 다다랐어요. 석양이 질 무렵 갑자기 눈이 부시게 희고 아름다운 새들을 발견했어요. 그들은 목이 길고 우아하면서 커다란 날개를 펼쳐 경이로운 소리를 내며 더 높이 날아올랐어요.


"꽥꽥, 어디로 가세요?"

"우린 남쪽나라로 가야 한단다."

"길을 잃었어요. 저희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쌍둥 아기오리는 힘을 다해서 소리쳤지만 백조들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날개를 펼쳤지만 날아오르기엔 역부족이었어요.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속에서 바닥까지 자맥질을 하면서 빙빙 돌아보기도 하고, 헤비메탈로 목청껏 비명소리를 질러보기도 했어요. 대체 어떻게 그리 아름다운 새들이 있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하얗고 쭉 빠진 몸을 가진 백조들이 그리워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아! 백조들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오리들은 몸이 얼어버릴까 봐 시들어버린 수초를 뽑아 먹으면서 쉴 새 없이 헤엄을 치기 시작했어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호수의 물이 점점 얼어서 헤엄치던 구멍은 점점 작아졌어요. 백조들이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연못에 꽁꽁 얼어붙을 때까지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어요.


"연못이 가장자리부터 얼어붙고 있어서 조금 있으면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겠네. 우리 이대로 꽁꽁 얼어서 얼음조각이 되면 어쩌지."

전에는 눈송이가 깃털이나 부리에 떨어지면 바로 녹아버렸는데 이제 쌓이고 있어.”


 어미 오리의 무한한 믿음과 할머니의 따뜻한 환대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그리고 지금 옆에는 서로를 닮은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며  마리 아기오리는 부둥켜안고 정신을 잃었어요. 이튿날 아침, 지나가던 나무꾼이 아기오리를 발견하고 얼음을 깨고 데려왔어요. 그리고 아기오리를 바구니에 담아 난로가에 두자 몇 시간이 지나 얼었던 아기 오리가 살아났어요. 오리를 바라보던 나무꾼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어요. 아기오리들이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아기오리들이 도망가자 아이들이 잡으려고 쫓아오기 시작했어요. 우당탕 쿵쾅! 쌍둥 아기오리가 우유통, 버터 , 밀가루 통에 들어갔다가 엎어지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집에  어머니는 튀김옷을 입은 오리들을 보고 입맛을 다시면서 빗자루를 휘저어 기름솥으로 유인했어요. 쌍둥 오리들은 안 되겠다 싶어서  밖으로 달아났어요.


", 어쩌지? 미끈거리고 비린내도 나는 것 같은데."

"그냥 기름솥으로 뛰어들어 튀김이 될 걸 그랬나?”

“냄새도 향기롭고 보기 좋은데?”

“아, 길고 긴 겨울을 다시 어떻게 견디지?"


 그 어두운 겨울 이야기를 들려주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지도 몰라요. 비록 둘이었지만 어린 오리들이 천적들을 피해서 숨어 지낸 스펙터클한 무용담은 속편이 나올 기회가 있으면 영광스럽게 특집으로 다루기로 해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눈이 녹으면서 꽃이 만발한 봄이 왔습니다. 얼음이 녹아 연못에서 헤엄을 칠 수 있을 것 같아 물가로 내려가며 날개를 푸드덕거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몸이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어머나, 지금 꿈속인가?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니!"

 힘을 주어서 날갯짓을 하자 구름 가까이 하늘 높이 올랐습니다. 다리가 달랑달랑 달려있는 느낌에 신이 났습니다. 저 아래로 푸른 풀밭과 파란 호수가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경치였어요. 그때 백조 떼가 날아와 호수에 미끄러지듯 앉았습니다.


"어, 예전에 봤던 그 눈부신 하얀 새들이다!"


 아기오리들은 근처로 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지난번처럼 외면당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한참을 원을 그리고 돌고 있는데 백조 한 마리가 다가와서 말을 건넵니다.


"얘들아, 너희들도 어서 이리 와~"


 조심스럽게 수면으로 내려와 백조 무리들을 관찰합니다. 왜 우리를 불렀을까? 혹시 괴롭히려는 것은 아닐까 놀란 새가슴을 진정시켜 봅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을 살펴보니 이럴 수가? 하얗고 목이 긴 아름다운 백조와 같은 모습이네요. 이게 무슨 일이지? 두 마리는 신이 났습니다. 백조 무리들이 주위를 맴돌면서 긴 목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저 멀리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빵과 조각 케이크를 물 위로 던져줍니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었죠. 백조로 다시 태어난 오리들은 호기심에 서서히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그가 손을 뻗어서 머리와 목을 쓰다듬고 입맞춤을 해줍니다.


“우리 아가들 어서 와. 7년 만에 무사귀환을 축하한다.”

"누구세요?"

"내 이름은 MOK, 너희들을 만든 아버지란다."

"어떻게 저희 소리를 이해할 수 있으신 거죠?"

"너희를 만들 때 NLP dna 삽입해 종에 상관없이 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었단다. 다른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도록 말이지."

“와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릴 적 다른 오리들이 괴롭히지는 않았니?”

덩치  여덟 마리가 있었는데 항상  같은 것만 남겨서 줬어요. 배려한  같지 않지만 맛은 있었어요.”

 다른 오리들이 생선 먹을  비린내에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지끈지끈하던데.”

“백조는 초식이란다. 아무거나 먹는 잡식성 오리 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혼자였다면 슬펐을 텐데 둘이라서 괜찮았어요.”

“맞아 맞아, 나도 네 덕분에 늘 든든했어.”


 MOK 쌍둥 아기오리를 만든 과학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백조의 알이 어떻게 오리 둥지에 이게 되었을까요? K 대학교 오리연못 근처에 위치한 생명공학 연구실 5215에서 일하는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아기오리> 고증하려고 인공수정으로 완벽하게 조합해 낸 백조 알을 만들어 오리 둥지에 숨겨 놓았습니다. 백조 ‘하얀  지칭하는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고니 (swan)’라는 이름 공식적으로 맞습니다. 벌써 눈치챈 분도 계시겠지만 어미 오리도 사실 백조였습니다. 겉으로는 오리 비슷하게 보여도 유전자는 백조였지요. 첫눈에 핏줄들을 알아보고 무리의 따돌림에서 구해서 멀리 보내게 된 것이었죠. 오리들의 세상에서는   없는 미스터리였지만 백조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대하고 수정란을 자연에 풀어놓은 연구원의  그림이 있었지요.


“아버지, 알을 낳고 싶지 않아요.”

“저도 알을 품고 싶지 않아요.”

“왜지? 생명은 유한해서 번식을 해서 이어가야만 한단다.”

“하지만 우리가 알을 낳으면 인간들이 먹기 위함이 아닌가요?”

“맞아. 동남아에서 몸보신으로 먹는다는 '발롯 (ballot)'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 잔인하게 부화 중인 알을 삶아서 국물을 쪽쪽 마신 다지.”

“아버지, 저희들이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그럼 귀찮게 번식하지 않아도 개체 수가 줄지 않잖아요?”

“얘들아, 내가 한 번 연구해 보마.”


 MOK은 백조들과 집단지성을 모아 조류독감 AI 백신을 개발하고 훗날 조류의 살처분을 막았습니다. 조류가 지능이 낮을 거라는 사람들의 편견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본능적으로 공간지각력이나 공감능력은 인간보다 훨씬 앞서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조류의 지능을 또 다른 AI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그들이 영생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았답니다. 그 덕분에 성공적으로 포닥까지 마치고, 멋진 오리연못을 품은 K 대학교의 총장이 되었습니다. 백조들의 도움으로 <사이언스>, <네이처>지 등에 업적이 실리고 2050년 노벨상을 타게 되면서, 그 대학에서는 총장보다 서열이 높은 백조들이 탄생하게 되었죠. 쌍둥 백조들은 놀고먹으면서도 우월한 유전자로 자손을 번성시키며 백년해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Lisay G.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