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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Feb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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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섬의 비밀


 행복이란 무엇인지 곱씹어 본 적이 있다. 누구나 처한 상황이 있기에 고민은 있기 마련이니까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한다고 속단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삶의 목적이 사라지면 우울증이나 약물, 도박에 빠지는 사례가 압도적인 것을 볼 때 적당한 스트레스와 부족함은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뤄야 할 모든 것을 물려준 부모의 자녀들은 삶이 무미건조하겠지. 언제 성공하는 것이 좋을지 청년 대표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일찍 성공하는 것이 좋은지, 늦은 성공이 나은지를 두고 말이다. 늙어서는 놀고 싶어도 못 노니 전자가 낫다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120세까지 살고 싶은 사람들은 후자를 택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수 있겠지만 일찍 성공한 사람일수록 판단력은 부족할 것이다. 결국 유혹에 번 돈을 탕진하고 나이가 들어 고독하게 죽는 모습을 보았다. 정답이야 없겠지만 우리가 내린 결론은 성공하더라도 주변의 질투를 살 정도로 티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가진 것보다 더 부풀려서 플렉스 (Flex)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닥까지 떨어져 봤다면 그런 열등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임을 안다.


"베르니, 좋은 아침!"

"정호도 굿모닝!"

"알려준 방법대로 주말에 비트코인 비번 찾았지 뭐야. 몇 천만 원 공돈이 생겼는데 행복한 고민이지 뭐야."

"SBT나 NFT에 투자해봐. 예술이나 게임 좋아해?"

"유미는 좋아하는데 난 지루하더라고. 운동은 잘하는데."

"그럼 스포츠 스타트업부터 공략해봐. 좋아하는 것부터 파고들어야 손해를 보더라도 후회는 없지."

"그럴까? 해외여행도 심드렁하고 노년 준비아 확실히 해야지."

"저녁에 술 마시는 회식 문화도 없어졌으니 좋더라. 매월 첫 번째 월요일 랜선으로 티타임 가지면서 '비공개 주식' 하나씩 소개하면 어떨까? 1시간 내로 발표하고 일찍 로그아웃 하자."

"월요병도 없어지고 기다려지겠는데? 잊어버리지 않도록 calendly 추가하고 zoom 회의실 코드 만들어 slack으로 단체 공지해둘게."

"역시 꼼꼼하네. 강 이사님, 고마워!"


 대부분 영어 이름을 선호하는데 강 이사와 젊은 친구들은 외국 이름을 거부했다. 일만 잘하면 됐지 개구리든 프린스든 이름이 뭐 중요하랴. 지베르니의 이름은 본명이다. 전 영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의 동창이자 웰슬리 대학교 (Wellesley College)에서 영문학 박사과정을 하던 베르니 어머니의 선견지명으로 튀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눈에 띄는 이름 덕분에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 오후에 면접 볼 유학생들이 좀 있어. 핀란드, 미국, 세네갈, 스위스... 박사님들이 지원했는데 반반 나눠서 심화 면접을 맡아줘야겠어. 안 뽑아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폭력을 쓰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고."

"그런 인간말종도 있어?"

"은퇴한 분들 중에서 화려한 이력을 몰라준다며 훈수를 두며 겁박하는 지원자도 있었어. 사무실에 CCTV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앞으로는 그런 일 생기면 내가 처리할게."

“아는 선배가 1년 넘도록 놀고 있길래 인턴 스카웃을 제의했거든. 그런데 우리 어머니 장례식에 왜 자기한테는 연락 안했냐며 호통치더라고. 내가 처음이라 워낙 경황이 없고 코로나 시국이라 일가친척들도 제대로 연락 못 드렸는데 어이가 없더라고. “

“그 사람 완전 소시오패스네. 그런 사람이라면 하루빨리 인연을 끊는 게 정답이었겠구나. “


 오전 내내 면접 질문지와 준비를 마치고 눈 깜빡할 사이에 두 시가 되자 지원자들이 라운지에 하나둘씩 체크인하기 시작했다. 늦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긴장한 듯했다. 그러던 중 긴급 콜이 들어왔다. 언니가 암으로 별세했다고. 유방암으로 입원해 있었는데 항암 과정을 순조롭게 마치고 있었는데 충격이었다. 출가한 자매들이라 애틋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말은 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임종을 준비하라는 형부의 호출에 면접은 강 이사에게 맡기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베르니도 brca2 유전자를 가졌기에 친언니가 맞이한 임종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유난히 자랑스러워하던 언니였기에 ‘엄마가 데려갔을까’하는 허튼 생각도 들었다. MOK 박사님께 도움을 청하니 미래 유전자 연구를 통해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살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친척들을 설득시켜 냉동인간으로 보관하기로 했다. 영안실 냉동고는 호텔 못지않은 비용에 장사진을 이루었지만, 체액을 빼고 급속냉동을 하는 것은 단위가 다른 고차원의 비즈니스이기도 했다.


 마음을 추스르며 5월 초까지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강 이사가 초인적인 역량을 발휘해서 우리 회사가 글로벌 기업에 높은 가치로 M&A로 인수 합병된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시점에 로또처럼 운 좋게 엑시트를 하게 되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맞았다.


"정호야, 5월까지는 안 나와도 된다니까 미안하게..."

"인생 낭떠러지에서 임원으로 스카우트도 되고 무상증자까지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집에서 쉬나 사무실에 나오나 텐션은 비슷한데 뭘. 커피도 마시고 바람 쐬러 나왔지. 좀 괜찮아?"

"언니가 떠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잔소리하며 전화가 올 것 같은데 살아있을 때에 잘해주지 못하고..."

"힘내야지. 네가 잘 살아야지 언니도 기뻐하시지. 조카는 양자로 거두기로 했다면서?"

“응. 형부가 우리보다 젊은데 20년 동안 쉬지 못하고 혼자 달렸거든. 이제 재혼해서 좀 편하게 살아야지.”

“큰 결정 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20년 전 기도로 점지했던 아이라 낯설지가 않아. 내 유전자가 전해졌는지 내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는 게 놀랍다니까.”

“베르니는 회사도 잘 보살피니 입양한 아이들도 잘 키울 거야. 마음 정리되면 하고 싶은 거 있어?"

"보라보라 섬에 다녀와야지. 20년 전에 신혼여행 갔었는데 끝없는 태평양이 마치 우주처럼 고요했거든. 좀 쉬다가 회복이 되면 돌아올게. 그때까지 도망가지 않을 거지?"

"당연하지! 평생 은인인데 내가 사부님도 잘 챙기고 회사 인수인계 있을게. 걱정 말고 조심해서 다녀와."

"덕분에 힘이 되어 주어서 항상 고마워. 수다스러운 우리 남편하고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럭셔리 브랜드 엠베서더 파티나 대사관 파티에 동석해도 좋아.”

“나 그러다가 커밍아웃하는 거 아니야?”

“우리 회사는 LGBTQ를 지지하니 괜찮아. 박사과정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시작해. 학비는 우리 회사에서 일괄 경비 처리할게."

“대박! 정말? 역시 내가 인복은 있다니까!”


 메타버스에서 함께하던 초식남이 수줍은 듯 운을 뗐다.


“언니분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BRCA1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이제 목표가 생겼으니 저도 보라보라로 함께 갈게요.”

"MOK 박사님께 뒤늦게 알린 제 실수였어요. 연구소에 데이터베이스가 그렇게 있었는데, 유전자 치료를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적극적인 구제를 실천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심리적 차이겠지요. 이제부터 베르니 님이 아프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두 신사분들 덕분에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MOK 박사는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이 연구했던 것처럼 보라보라 섬에 머물면서 dna 데이터를 연구하겠다고. 초파리 연구소에는 안식년을 받아 스케줄에 무리가 없을 듯했다. 마침 타히티의 날씨는 겨울이라 날씨도 좋을 것이다. 2주가 지나고 MOK 박사가 미국에서 귀국했다. 아지트에서 비밀 키트를 챙겨 부치고 베르니와 나리타를 경유해서 타히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보라보라 섬은 베르니에게 낯선 곳이 아니다. 그녀가 20년 전 묻어두고 온 타임캡슐이 있기 때문이다. 장래를 촉망받던 물리학도 시절 어그러져버린 꿈과 미발표 논문을 담아 잠적해버렸으니 말이다. 한 세대가 지나면 개봉하려고 했는데,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팀도 생겼으니 이제 그때가 온 것 같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모든 영혼이 부활하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보라보라 공항에 착륙했다. 지상낙원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날과 도전을 기대해본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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