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의 문자들
Angel이었다. 대만에 함께 왔던 친구 커플 중 신부의 이름이 Angel 이었다.
Angel : You are coming alone to the party?
Paul : I broke up with the Korean yesterday. It was horrible.. Me and the Taiwanese girl were too cool to each other.
Angel : Did the Korean cry?
Paul : I think crying everywhere..
날짜를 보니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지 않기로 하고, 울면서 전화를 끊었던 그 날 즈음인 듯 했다. 타이완 여자 이야기는 뭐고 마지막에 한 crying everywhere은 어떤 의미인지 난 몰랐다. 그렇다고 내용을 캡쳐해서 친구들에게 어떤 뜻일까 공유하기에는 그 소리에 Paul이 깰 지 몰랐다.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고,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또 Amanda와의 문자에도 내가 등장하고 있었다.
Amanda : So, what happened to you guys about long distance relationship?
Paul : Nothing has been changed really. I think I'm not ready to start anything right now..
내가 벤쿠버에 온 이후에 친구와 나눈 문자 메시지였다. 무언가를 바랬던 건 아니다. 어떤 것이 시작되기를 원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단호하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고, 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와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이 문자를 가지고 그를 깨워 채근하기에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자고 있는 그의 핸드폰을 몰래 본 셈이니 말이다. 아직 남아있는 몇 일의 시간동안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 채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소파에서 잠이 든 나를 그는 아침에 일어나 의아해 했지만, 나는 그의 옆에서 잠들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잠시 미팅이 있어 외출을 했고, 나는 그 시간동안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랜빌 아일랜드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걸어가는 길 내내 그 문자들이 떠올랐다. 주변 경관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제 보았던 문자를 이야기했고, 그들은 타이완 여자 이야기는 아마 나를 만나기 전 이야기인 듯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it was horrible이라고 표현한 것이 나 혼자만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 또한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이니 오히려 다행인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그렇게 조금 기분이 풀렸고, 돌아온 그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오후 시간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고 또 한국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 그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러 개스 타운으로 갔고, 그 곳에서 한 커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YJ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YJ는 한국계 캐나다인이었고,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할 줄도, 한국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YJ는 Monica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Monica, YJ, 그리고 YJ의 언니 이렇게 셋은 토론토에서 살다가 몇 년 전 함께 벤쿠버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가는 것만 해도 무척 큰 일인데, 토론토에서 벤쿠버까지 이사를 하고, 거점을 옮기면서 그 때 함께 했다는 것은 누구보다 친한 친구라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런 YJ 자매와 Paul은 아직도 무척 친하게 지냈고, 나와 함께 그 커플을 만나러 가다니, 문화 차이인가 싶었다. 물론 이런 배경을 이야기하고 나에게 같이 가겠냐고 제안한 것이긴 하지만. 만약 내가 그에게 전과 같은 큰 마음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YJ커플과 만나지 말자고 했을 것 같았다. 부담스럽고, 싫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는 불타지 않는 감정으로 즐겁지만 미친 듯이 행복하지는 않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