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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ug 01. 2017

여름의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칠월의 마지막 날이다. 퇴근 후 자전거를 탈까 했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에 포기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전거를 타려면 블루투스 이어폰과 기타등등이 필요할 것 같아 필요한 소품을 구입할 때까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집 앞에 따릉이 정거장이 생겨서 대책없이 신났다는 말이다.) 


그 대신에 요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묻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창 밖에 비가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집은 베란다 안쪽 문을 닫으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구조다. 중간 문을 열지 않으면 바깥에 천둥이 쳐도 알 길이 없다. 몇 달 전에 아이패드를 샀다. 활용도가 아주 높다. 지금도 유투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마우스 곁에 두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있다. 김현철의 노래가 랜덤으로 재생되고 있다.


비밀의 숲이 끝났다. 오랜만에 본방사수 한 드라마다. 마지막회는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마음으로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모두가 각자가 가진 직업적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 좋았다. 그런 직업을 갖게된 구구절절한 전사가 없다는 점도 좋았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버리지 않아서 좋았다. 남자 주인공이 감당못할 정의감으로 가득차있지 않고, 감정이 없는 설정이라는 게 좋았다. 여자 주인공이 어리숙하게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지 않는 주체적인 역할이라 좋았다. 


배두나라는 배우를 다시금 좋아하게 됐다. 모르긴 몰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미치는 사람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회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투덜이를 맡고있는 나로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그녀가 무척 부러웠다.  커다랗고 여유로운 마음은 어떻게 갖게 되는걸까. 어떤 비법이 있어 가진게 아니라, 살아온 삶의 걸음걸음이 닿아 그런 에너지를 만들었을 테다. 요즘 나는, 마음이 아주 조그맣다. 배려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이만큼 큰 마음을 갖고 배려해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일을 더 맡아도 고생하는 건 나야, 조용히 있는게 가장 인정받지, 괜히 나섰다가 욕만 먹는다.' 이런 생각들을 품고 회사를 다닌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안되는 시간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난 겨우 이만큼의 사람이었던걸까.


요즘의 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쉽사리 되질 않는다. 보지도 듣지도 쓰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니 내가 텅 비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한창 글을 많이 쓰던 시절엔, 내 글을 보고선 위로받는 느낌이라는 말을 듣는 걸 좋아했다. 그치만 지금은 한두글자 쓰는것도 어렵다. 완성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어렵고, 무엇보다 내가 쓴 무언가를 보고 그 누구도 위로받고 기분좋아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투덜대고 우울한 이야기뿐인데. 난 어쩌다 이만큼의 사람이 된걸까.


글을 쓰다가 8월이 되어버렸다. 올해도 다섯달밖에 남지 않은건가. 작년 이맘때는 난 적어도 미래에 펼쳐질 일들을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조그맣고 형편없는 사람이 된 것엔 더이상 미래에 기대되는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이 크다. 출근을 하면서도 이 직장을 어떻게 평생 다녀야 하는 건지 걱정이고, 그렇다고 다른것을 준비하고 해낼만큼의 체력은 없다. 고작 하루하루 투덜대면서 내일 눈을 떠 출근하는 걸 걱정하고, 회사 내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점점 내가 사랑하는 내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분이다. 


일기를 쓰지 않는 몇달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막내라는 이유로 설움을 겪으면서도 한마디도 맞서지 못해 밤새 눈물을 펑펑 흘리고, 그러면서도 다음날의 출근이 걱정돼 얼음팩을 눈 위에 올리고 잔 날이 있었다. 동료가 날 오해해서 갈등을 빚은 날도 있었다. 비타민도 챙겨 먹지 않는 주제에 숙취해소 약을 가방에 상비해두고 죽어라 술을 마시고 다니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엉망진창이었던거다.


예쁜 것이 보고싶다. 예컨대, 제주도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고 있고싶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내음을 맡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 좀 나아질까. 직장 권태기는 이렇게도 빨리 찾아오는데, 사람들은 이 지루한 일을 어떻게 평생 하고 사는걸까. 1년도 다니지 않았는데도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한데, 우리 아빠는 어떻게 평생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우리를 키운거지. 내 젊음과 청춘의 대부분을 쏟을만큼 가치있는 일일까. 아니, 이 직업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하면 좀 나아질까. 그것도 잘 모르겠고.


난 머릿속이 복잡하고 답이 안나올 때 일기를 쓴다. 일기가 끝날 때 쯤이면 얼마만큼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물론 이번엔 아닌것 같다. 예전엔 기분 좋은 이야기들만 일기로 남기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갑갑하고 답없는 상황을 굳이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을테다. 그치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나고, 나는 답없이 갑갑해 하는 나 또한 사랑한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7월, 허연


아무튼 7월이 다 가고, 8월이 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름을 지나고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올해의 여름을 좀더 힘차게 보내고 싶다. 오늘도 퇴근하며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난 씩씩하다. 난 씩씩한 사람이야. 오늘은 월요일에 불과하고 나는 4일을 더 씩씩하게 출근해야 하니까, 이제 자야만 하겠다.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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