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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21. 2019

칙칙해지지 마, 무슨일이 생겨도

보건교사 안은영

처음 읽은 정세랑의 소설. 양평에 글램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카페에 앉아 한 권을 쭉 읽었다. 아주 귀여운 판타지(?) 소설. 머물렀던 카페는 식물이 가득하고 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장소였는데, 어쩐지 이 책을 읽기에 너무 어울리는 장소였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엔 야경이 소원처럼, 사랑처럼, 약속처럼 빛났다. 언젠가는 소원을 훔치는 쪽이 아니라 비는 쪽이 되고 싶다고, 은영이 차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가로등 아래 김강선’. 키가 30센티 더 자란 중학교 동창 김강선이 그림자가 사라진 채 안은영을 찾아온 이야기였다. 강선은 문제만 생기는 학교를 그만두면 안되냐고 은영에게 말한다. 은영도 알고있다. ‘저승으로 가는 통로 위에 세워졌나 싶게 매번 나빠지는 오래된 학교에서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떠나는 게 맞다는 것을. 그치만 아직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나쁜일들은 언제나 생겨’라고 강선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마주한다. 그리고 강선이 말한다.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그림자마저 사라진 강선이 은영에게 한 이 말은, 책을 덮고 난 후 한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매일 칙칙해지고만 있던 일상이었다. 그 이후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머릿속으로 주문처럼 외운다. 칙칙해지지 마, 칙칙해지지 마, 정말 주문이라도 된 양 이말을 자꾸 되뇌면 이상하게 밝은 기운이 난다. 내겐 이 주문이 은영의 장난감 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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