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메리카 아니야
어릴 적에 살았던 나라는 중남미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은 중남미 지도를 보여주며 강조했다. 우리는 북미도 아니고 남미도 아니고 ‘중’ 남미야. 알겠지? 그리고 미국 애들은 맨날 자기들이 “We live in America”라고 하는데 그거 틀렸어. 아메리카는 말이야, 북미 중남미 남미를 다 포함한 대륙이야. 미국 애들은 진짜 웃긴단 말이지.
그래서인가, 중남미 사람들은 남미 취급당하면 기분 나빠했다. 북미와 남미 사이에 껴 있는 작은 나라들 치고는 자존심이 꽤 컸다. 이는 마치 남한인데 북한 취급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정정하듯 말이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영어 철자를 묻는다. 당연하다. 그중에 꼭 한 번씩 나오는 당골 질문이 있다. 선생님! 미국을 영어로 뭐라고 해요?
그걸 듣고 있던 한 학생이 대신 ”아메리카“잖아! 그것도 모르냐?라고 말하면, 나는 내가 어렸을 때 늘 들었던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설명해 준다. 아메리카 대륙을 칠판에 그리면서까지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몇 년을 반복하니까 이제 학생들은 미국을 아메리카라고 하지 않게 됐다. 아무리 길어도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혹은 The USA라고 적는다. 무척이나 뿌듯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이 처음 중남미로 이민하기로 결정됐을 때, 엄마는 하루는 미국이라고 했다가 다른 날은 멕시코라고 했다가, 중남미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냥 근처 큰 나라를 언급하셨다. 비행기 타고 내릴 때만 해도 나는 디즈니랜드가 있는 미국에 도착할 줄 알았다.
인식이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처음 이민 갔을 때 한국이 아프리카냐? 고 물어보는 현지인들이 꽤 있었다. 아시아인들은 전부 중국인 취급 당하기도 했고. 아니 대한민국을 모른다고?
지구 반대편에 있고, 심지어 나라도 작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다. 지금은 남미나 중남미에서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티브이에 k-drama나 k-pop이 나올 정도다. 작은 땅덩어리보다 더 큰 문화의 힘 덕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인식시키려면 본인만의 문화가 필요한 것 같다. 문화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 행동은 결국 그 사람의 생각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의 핵은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즉 본인만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