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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Sep 23. 2021

기록의 쓸모

문학을 하고 싶지만 사업도 해야하는 사람의 고민

남편 사업을 돕겠다고 결심한 것이 1 . 더불어  혼자 사생활과 글쓰기로 10년간 꾸며온 온라인 공간을 남편 사업용으로 사용할 것인가  것인가 고민도 1년이었다. 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싶지만, 재능은 없었고, 당장 아이들과 먹고사는 일은 중요했다.


돕는 것이 아닌 본격적으로 남편 사업을 같이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블로그의 기록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다. 개인 일상으로 가득한 블로그인데, 사업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홍보용 키워드와 노출을 감안해야 했다. 블로그는 내 글쓰기 연습장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을 담고, 일상을 담는 곳이었고, 글감을 위한 메모장이었다. 홍보용 글은 정보를 주어야 했다. 키워드가 적당히 반복되어야 하고, AI알고리즘에 적합한 글쓰기를 해야 했다.


문학적 글쓰기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부터 해결하자 싶었다. 긴 고민 끝에 블로그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사업을 하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편과 나는 홍보와 마케팅에 목말랐다. 무조건 돈을 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른 샘에 펌프질 하듯 간간히 블로그에 홍보글을 올리긴 했지만, 경쟁사가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홍보용 글에 내 글은 순식간에 밀리기 일쑤였다. 결국 내 블로그의 체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력갱생!


연휴 동안 5개의 글을 발행하고 노출 순위를 살폈다. 사업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 분야와 관련된 것들과 관련된 키워드들을 모조리 검색해서 제목을 만들고 문장을 만들었다. 어떤 것은 알고리즘을 통과했고, 어떤 것은 알고리즘을 통과하지 못했다.


블로그 기록을 유지해 온 것이 10년째인데, 10년간 진화한 건 나뿐만 아니었던 것 같다. 알고리즘도 꽤나 진화해서 내 글이 이 키워드에 적합한 글인가 아닌가를 꽤 잘 파악해서 걸러냈다. 많이 똑똑했다.


문득, 이런 문장과 이런 글을 소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했다. 당연히 그 제품이 필요한 사람이겠지.


기록을 하며 생각했다. 여태까지 온라인에 개인 일상을 적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였다. 메모 차원의 기록을 하고, 칼럼을 쓸 때 글감을 얻었다. 때때로 삶에 지칠 때 지난 기록을 뒤지며 힘을 얻기도 했고, 반대로 지독히도 힘든 경험들이 녹아든 기록을 보며 지금 행복하다고 자위하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몇몇 독자와 함께였다.


홍보용 글은 나보다는 타인에게 방점을 찍는다. 고객들이 소비할만한 글,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찾아야 한다. 나를 위한 기록보다 훨씬 힘들고 정조준이 어려웠다. 나도 나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을 분석한단 말인가. 타인의 행위를 분석하기 위해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도구와 방법이 제시되어 있었다. 키워드 월간 검색량, 문서 발행수에서부터 연관검색어까지. 나를 위한 분석 도구로 MBTI를 활용하듯 연관 키워드 검색은 홍보용 글쓰기의 필수 같은 것이었다.


연휴 동안 올린 키워드 노출로 방문수도 늘었고, 한동안 정체되었던 팔로워 수도 늘었다. 그러나 홍보를 위한 글쓰기의 단점은 알고리즘이 어느 날 나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성장과 비전을 세우고 맞지 않는 사람을 내보내듯, 알고리즘도 자신의 진화와 방향을 같이 하지 않으면 버릴 것이다.


내가 알고리즘을 버리는 방법도 있다. 사실, 그 방법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굳이 알고리즘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찾아주고, 내 글을 소비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내 글이 좋아야 하는 것이겠지. 많은 대중이 굳이 나를 검색해서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지 않는 한, 나는 알고리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이 몹시 불편하지만, 먹고사니즘 앞에서 당분간 이 선택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선택한 이상, 불편함은 버리고 당분간 즐기면서 쓸 예정이다.


알고리즘에 맞추어 쓰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중간 경계 어디쯤에서 매일 고민하며 기록의 쓸모를 찾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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