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문득 예전 회사 다닐 때의 일이 생각나더니 갑자기 짜증이 올라왔다. 뜬금없는 일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과거의 일이 생각나면서 짜증에 몸서리쳤을까.
짜증 나는 사건들은 대부분 상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아랫사람이 아무리 불편하게 해도 상사에게 받은 모욕감이 생각보다 더 길고 오래가나 보다.
어떤 상사는 내 얼굴에 대놓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재수없냐"고도 했고,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장사 한두 번 해?"라고도 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장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회의실에서 내 면전에 회의록을 집어던지고 나간 사람도 있다.
나름 대기업이라고 하는 곳이었고, 화이트칼라가 대부분인 곳에서 화가 나면 사람들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많이 경험하고 느꼈다. 물론, 그들은 화내는 순간에는 그런 말을 던지고도 임원 앞에서는 누구보다 순한 양이었으며,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구보다 훌륭한 리더 모습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랑 합이 맞지 않았을 뿐.
사람들이 퇴사 후, 나의 일상을 묻는 질문은 대부분 이런 것이다.
"미련 남지 않아요?"
"후회하지 않아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월급이 그립지 않아요?"
그런데, 진심 미련이 1도 없다. 미련이 없다는 데에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지금 받는 월급은 반도 안되게 줄고, 복지도 없고, 대기업이라는 네임밸류도 없지만, 지금이 좋다. 내 사업이고, 우리 사업이니까.
물론 어려움은 있다. 진상고객이 있고, 경쟁사는 매일 치고 들어오고, 신규 제품 출시는 늦어지고, 돈은 부족하고 광고는 해야겠고 등등.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은 일의 어려움이다. 일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는 아마도 혼자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딱 협력이 필요할 경우만 만나서 해결한다. 나는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젊은 시절에는 몰랐다. 몸의 체력도, 마음의 체력도 좋았으니까 그냥 버텼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내 안에서 어떤 느낌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현실의 삶이 그걸 자꾸 덮어야 했다. 돈이 필요했고, 아이들과 먹고살아야 했고, 버티는 시간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모욕을 당해도 울고 와서 다시 일했고, 밤새 울어도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출근했다. 그렇게 버티다 아이들이 12살, 10살이 되는 해에 퇴사를 했다.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버틴 시간들이 지겹도록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다.
멈출 수 없는 트랙 위에서 내려올 수 있던 용기는 작지만 먹고 살 돈은 있다는 것, 굶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 월급이 반, 그 이하로 줄어들어도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후에 결정한 일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그 기억이 왜 올라왔을까?
아마도, 지금이 좋아서,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더 이상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내 안의 어떤 것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나한테 재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임원을 갈망하다 변방(?)으로 좌천되었고, 장사 한두 번 하느냐고 면박을 주던 사람은 면팀장(팀장에서 팀원으로)이 되었다. 그들이 잘 안되어서 복수의 감정이 올라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래 봤자 너도 나도 직장인인데...라는 생각. 일은 힘들 수 있어도 사람 모욕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권위는 말로 세우는 것이 아니니까.
운전하면서 떠오른 생각으로 한번 더 명확해졌다.
나의 퇴사는...
참말로 잘 한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