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록을 남기는 SNS는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이 세 곳이다. 그중에서 블로그 팔로워 수가 가장 많다. 처음 블로그에 기록을 남길 당시의 나는, 워킹맘이었고 어디에든 기록을 남겨야 다음날 겨우 출근할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감정의 창고였고, 나쁜 말로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블로그에 한 껏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내 안에서 감정들이 정리가 되었다. 흘려보내야 할 감정, 보관해야 할 감정, 다른 곳에 써먹어야 할 감정 등. 나 스스로 정리를 위해서 글이 쌓였고, 그 글에 반응해주는 이웃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블로그로 돈을 벌 궁리를 한다거나, 수익화를 생각하고 운영한 것이 아니었다. 간간히 주는 광고비는 몇 달에 한 번씩 커피 한잔 혹은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좋았다. 나에게 블로그는 기록을 쌓는 곳이었는데 치킨까지 주니까.
블로그를 운영한 지 10년이다. 그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노출되는 로직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인에 노출되다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았고, 애써 올린 글이 검색조차 안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변화 동안 어떤 사람은 로직의 변화에 맞추어 블로그의 형태를 바꾸어가며 적응해 나갔고, 돈을 더 많이 주는 유튜브로 옮겨가기도 했다. 나처럼 로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내 갈 길 간다'라는 사람은 아는 사람만 아는 블로그가 되었다. 내가 여행하는 곳,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의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노출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나에게 블로그는 여전히 감정을 정리하는 곳이었고, 일상을 공유하며 기록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퇴사 후 남편 일을 돕게 되면서 소위 말하는 로직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애써 만든 제품을 사람들에게 홍보하려면 SNS를 활용해야 하는데, 내 SNS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남편은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았고, 돈 주고 다른 블로그를 활용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제품 자체가 여자들에게 적합한 상품이 아니었던지라, 대다수의 SNS 유저가 여성인 곳에서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회사 다닐 때는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회사 밖으로 나오니 밖에서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일은 필요했다.
알고리즘은 전문가를 좋아했다. 나는 내 삶의 전문가인데, 알고리즘은 인정하지 않았다.
육아 전문가이면 육아정보를 올려야 하고, 여행 전문가이면 여행정보를 주로 올려야 했다. 나처럼 회사 다니면서 이것도 관심 있고, 저것도 관심 있는 잡식 블로거는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거나 혹은 유명한 작가라면 알고리즘에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찾아와 줄 테니. 한때는 그걸 소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는 종종 글쓰기를 지치게 하므로,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그래야 글을 오랫동안, 즐겁게 쓸 수 있으니까.
결국, 주기적으로 내 SNS를 통해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형태로 글을 썼다. 얼마 전에는 인플루언서 분야도 육아에서 리빙 분야로 변경했다. 관심분야도 인테리어로 변경했다. 알고리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글의 형태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에 잘 맞춘다고 해서 꼭 노출이 되는 건 아니었다. 상당히 복잡해서 발행하고도 될까 말까 반신반의하면서 올리곤 했다. 그 과정에서 이웃 삭제당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난 감정을 담는 곳이 필요한 인간이라, 내 일상 글을 하나, 둘 올리면 내가 노출했던 글은 뒤로 밀렸다. 알고리즘에게 밉보인 것이다.
알고리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감정을 담되 정보를 담아야 하고, 감정을 담되 키워드를 맞추어 써야 한다. 그것도 관련 분야에서만... 나라는 사람은 좀 입체적인데, 사업 홍보만 할 수도 없는데, 어째야 하나 고민이 앞섰다. 당장 먹고사니즘도 해결해야 육아도, 내가 좋아하는 글도 마음 편히 할 수 있으니까.
주말에 홍보글을 올리고, 고민하다 오늘도 블로그에는 글을 올리지 못했다. 아마, 오늘내일 일상 글을 쓰면 또 노출이 안 되겠지? 그런 마음. 대신, 구독자 수도 적고, 소통도 다소 적지만, 브런치를 좀 더 활용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도 알고리즘이 담당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감정을 정리하는데 키워드에 맞추어 글을 올리라고 강요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느끼기에는!
이렇게 쓰고 보니 블로그는 이제 회사처럼 규칙과 틀에 맞추어 보여야 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고,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이 회사 사람 모르게 일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곳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일상글을 쓰지 않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알고리즘에게 잘보이기 위해, 알고리즘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눈치보며 쓰게 될 것 같다.
미래엔 알고리즘이 연결망으로 다수의 SNS을 연결하며, 모든 인간을 규칙과 틀에 얽매이도록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다시 인간이 갇혀버리는 관계. 미래에 어떤 SNS의 흐름이 다시 대세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런 관계 속에서도 나의 감정과 작은 일상들은 자유를 찾아 끊임없이 갈망할 것이다.
알고리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딴짓을 하는...
어쩌면 지금 이후의 N 잡러는 SNS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예상 혹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