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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무개 May 25. 2024

1. 비 오는 날의 동대문 (1)

동대문 표류기

내키는 대로 자다 보면 언제나 12시간은 족히 자버립니다.


오후 2시가 넘어갈 즈음 눈을 떴을 때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잔잔한 빗소리가 제가 살고 있는 고시원 단칸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냄새가 났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꿉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비 오는 날 특유의 습한 냄새가 좋습니다. 평소보다 숨 쉬는 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숨통이 트인다'라는 느낌을 비가 오는 날이면 받습니다.


필자는 어째 조금은 음침한 냄새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렸을 땐 아파트 지하 주차장 냄새가 그렇게 좋았거든요...


철없던 시절 단지 내 친구들과 그곳에서 인라인스케이트며 자전거며, S 보드(아시려나요..?)며 신나게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끈한 에폭시 코팅 위로 탈것이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 볼을 스치는 차고 음습한 바람이 아직 생생합니다.


당연히...


지금 와서는 그 당시 어른이었던 아파트 주민분들께 죄송스럽고, 또 멋쩍습니다.


누가 더 빠른지 주차장 끝에서 끝으로 경주하기도 하고, 깡통 차기, 경찰과 도둑 등 놀이에 몰입하다 보면 기둥 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차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성가셔하셨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뛰놀다 보면 주차된 차에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불안하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당시 주민분들은 별다른 말 없이 천천히 빠져나가거나, 간혹 한 소리 하실 때도 "위험하니까 위에서 놀아라~" 하고, 점잖게 말씀하시고 지나가셨습니다.


2000년대 당시 시대상이었는지, 그 아파트 단지 특유의 분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제가 살던 곳은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아파트 4개 동으로 이루어진 작은 단지에 주변이 논으로 둘러싸인 섬 같은 곳이었고, 많은 주민이 이웃사촌처럼 알고 지내는 곳이어서 아마 더 유한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유년과 소년 시절을 회상할 때면 다 커버린 성인의 시선으로 보게 됩니다. 참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도 했습니다. 많은 분께 알게 모르게 배려받고, 이해받았습니다. 감사한 추억입니다. 서른을 목전에 둔 지금, 저 역시 그와 같은 어른 흉내를 내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철없고 푼수데기인 채로요.


여전히(그리고 사회초년생이라 더욱) 부끄러운 짓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필자는 좋아하는 비도 오겠다 이전부터 가고 싶었던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부랴부랴 샤워하고, 보조배터리와 지갑만 달랑 넣은 백팩을 메고 고시원을 나섭니다.


전철에 올라서 핸드폰만 뚫어져라 봅니다. 한강을 건너기 위해 전철이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맞은편 자리에 다른 승객분이 앉아있었거든요.


이상한 곳에서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이라 고개를 들자면 무엇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다음번에는 앉을자리가 많아도 문가에 서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서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주말이고, 주거지역도 유흥지역도 아니어선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혼자서 쫄래쫄래 돌아다니기에 맞춤입니다.


중앙아시아거리 골목길

중앙아시아풍 식당과 카페가 밀집한 거리로 가기 위해 걷다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을 마주합니다. 사진을 몇 방 찍고 있는데, 멋진 점퍼를 걸친 중년 남성분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그 앞으로 지나갑니다. 비가 꽤 내리고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으신 듯합니다.


그 모습이 왜인지 멋있게 느껴져서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한 번 더 눌렀습니다.


이른 저녁 겸 점심을 먹기 위해 골목을 빠져나와서 식당을 찾아보려 했는데, 미처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필자는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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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걸려있는 중앙아시아거리 약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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