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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궁금할 때 '국제현대미술관' 어떤가요?

#12 국제현대미술관 박찬갑

by 향기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갑작스런 질문과 마주 했을 때 'Who am I?' 대답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실존의 의미를 찾고 싶을 때 떠나보세요.


강원도 영월에 있는 국제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 대표 조각가 박찬갑이 운영하는 개인 미술관이다.


'국제&현대' 이름부터 거창한 미술관을 보고 싶어 영월로 향했다. 입구는 소박했고 정원이 이어져 야외 전시 작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동강변에 자리 잡은 국제현대미술관은 도·농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야외조각공원에는 국제조각 심포지엄에서 조각가들의 작품을 현장에서 완성 후 설치한 것으로 17개국 10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세월의 흔적을 얹고 조금씩 탈색과 변색되어 있었다. 실내 전시실에는 70여 개국 소장품 3,000여 점이 상설 교환 전시된다고 한다. 야외 전시를 둘러보고 실내로 향하려는데 저 멀리서 작업 중이던 작가님을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젊은이들이 입는 통 좁은 청바지를 입으셨는데 80이 넘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고글과 방독마스크를 쓰고 돌을 갈고 계셨다. 야외 미술 작품 관리는 부실했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넓은 미술관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작가님은 우리를 실내 전시장으로 안내하셨다. 관람객이 적어서 인지 매표도 하지 않고 들어가는 입구에 통이 있어 거기에 넣게 되어있다.



아래 글처럼 박찬갑 조각가의 키워드는 평화,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이다.


Who am I ?

나는 누구인가? -박찬갑

파란 하는 노란 듯 붉은 듯
낙엽이 춤 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사랑의 씨앗이며 사랑으로 왔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쁘고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사랑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한가?

돌 사람 돌 사람
돌 사람 사이로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 시리즈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의 화합을 강조한다. 또한, 자연과 인간, 사회의 관계, 인간 삶의 원형 등 근본적인 질문과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조각 작품의 주인공은 돌 사람.


얼굴에 뚫린 구멍 하나와 가슴 쪽에 손을 모은 듯한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님에게 구멍의 의미와 가슴에 있는 형태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하나의 구멍 뚫린 인물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인간이 하늘과 소통하며, 사랑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세상에 베푸는 존재임을 상징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작품의 '의미와 해석'은 관람자의 몫으로 돌리셨다.

나는 누구인가 · 박찬갑

구멍은 하늘로 열린 창이자 소통의 통로로, 비움과 겸손, 그리고 하늘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모은 손은 기도와 같은 자세로, 사랑의 씨앗이 가슴에서 발아해 타인에게 전달되는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이 모습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으로, '나는 사랑의 씨앗이며 사랑으로부터 왔다가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박찬갑 작가님의 부드러운 인상에서 그의 인품과 철학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긴 작업 끝에 쉼이 필요하셨는지, 아님 요즘은 찾아오는 관람객이 적어서인지 하던 일을 멈추시고 실내 작품들을 정성껏 오랜 시간 동안 소개해 주셨다.


큰 전시를 앞두고 나가야 할 작품들이 전시대를 벗어나 이쪽저쪽에 무더기로 모여있어 좀 산만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깨알 같은 작가님 설명으로 이해의 깊이는 커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본 적이 있는가?


미술관에 다녀와 작가님이 늘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드는 철학적 요소인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내게 질문해 보았다.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묻는 가장 깊은 철학적·실존적 물음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철학, 문학, 종교, 심리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하는 주체, 즉 자아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니체는 타인의 가치가 아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존재를 인간으로 보았다.

"너 자신이 되어라."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진정한 나’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소리를 내며, 그걸 듣고 따라가는 것이 삶의 진실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젊음의 혈기로 온 생각이 나에게 집중된 시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문장에 꽂혀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싱클레어의 마음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마주 했었다.


은퇴 후 제2막의 인생을 시작하는 나는 다시 그 물음 앞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철학적 사유를 넘어서, 니체의 말처럼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지를 알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려면 부화하는 새처럼 알을 깨고 나오려는 투쟁이 필요하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된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말 중 하나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나답게 살 걸.”이라고 한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질문하고, 용기 있게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동안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나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정작 나를 놓친 순간들이 많았는데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은 내 삶이 향하던 대상들 속에서 빠져나와 나에게로 이끌어 중심을 잡는 축이 되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인가?' 대한 물음에 답은 ‘정답’이 아니라 ‘여정’이 아닐까?

어쩌면

조각가 박찬갑의 시처럼 나는 사랑의 씨앗이며 사랑으로 왔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그런 여정일 수도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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