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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대화하는 '안도 타다오' 미술관 어떤가요?

#11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by 향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늘 무거운가요? 한 작품을 하루 종일 바라봐도 좋은 곳이 있습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에서 월터 드 마리아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느긋하게 만나보세요. 너무 단순해서 생각이 멈추고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몇 년 전부터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대형 카페나 건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봤을 땐 인테리어도 없어 대충 지은 것 같기도 하고, 짓다가 포기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정에는 냉난방이나 전선이 오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이젠 치장하려 애쓰지 않은, 만들다만 것 같은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노출 콘크리트로 된 카페에 가면 층고가 높고 시원한 무채색의 개방감이 좋아 보인다. 이러한 맨살 그대로의 노출 콘크리트로 자신의 철학을 건축에 담아낸 대표적 인물은 안도 타다오이다.


나오시마에 가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프로젝트. 안도 타다오의 주요 작품이 밀집되어 있다. 지중(지추) 미술관, 미술관과 호텔이 결합된 복합 문화 공간인 베네세 하우스, 안도 타다오 자신의 철학을 담은 미술관인 안도 뮤지움이 있다.


지중미술관은 지하 3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대부분 건물이 지하에 묻혀 있다. 안도 타다오의 이 건축물에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세 작가의 작품이 영구 설치되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권투선수로 활동하다 건축가로 전향한 안도 타다오~

건축을 책과 설계도면 등 독학으로 공부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는 권투에서 길러진 집요함과 철근 콘크리트를 다룰 정도의 탁월한 실무능력, 콘크리트 표면을 ‘건축의 피부’라 여기며 완벽을 기하는 꼼꼼한 성격, 자기 철학에 맞지 않으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으로도 유명하다.



건축의 품격을 높여준 그의 고집 센 철학은 무엇일까?


첫 번째 그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했다.


“건축은 자연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지하의 어두움을 조명에 의존하기보다 빛이 천장이나 틈 사이로 들어오게 하여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였다. 그가 추구한 자연과의 조화로 햇빛의 방향과 계절에 따라 작품과 공간의 이미지가 달라져 하루 종일 있어도, 어느 계절에 와도 시시각각 변화 있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둘째. 그는 공간을 사유를 위한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건축은 인간에게 사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안도 타다오의 공간은 무채색의 고요함과 단정함을 추구한다. 혼자 생각하기 좋은 멈춤의 공간이다. 건축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에 그의 작품은 명상하고 집중하기 좋은 종교시설이나 미술관이 많다.

지추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은 사유의 그릇은 월터 드 마리아의 'Time/Timeless/No Time(시간/영원/시간 없음)'이다. 입구가 동쪽이기에 일출에서 일몰 사이의 작품의 변화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느린 여행을 하는 외국 여행객들이 계단에 앉아 오래도록 공간의 변화를 섬세하게 감지하며 멍 때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 곁에 앉았다. 이제부터 자연과 대화의 시간이다. 점차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공간에서는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직경 2.2m의 구와 27개의 금박을 입힌 목재 조각이 전부이다. 고요하고 심심한 볼거리이다. 나무계단 위로 올라갈수록 빛에 따라 동그란 주인공은 시시각각 변하며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검고 동그란 구에 드리워진 하늘의 표정과 내려앉는 햇빛의 흔적이 도드라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눈으로 쫓아가며 생각을 덜어내고 마음을 도닥였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생각들을 비워내고 있을까?' 그들과 오래도록 그 공간 안에 머물며 마음이 전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갈길 바쁜 우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야 했다.



세 번째 그는 빛(light)을 훌륭한 건축 재료로 이용했고,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을 사랑했다.


“빛은 공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재료이다.”
“나는 콘크리트를 자연처럼 만들고 싶었다. 빛과 그림자가 부딪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빛과 노출 콘크리트의 부드러운 질감을 살려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공간은 빛 그 자체를 예술로 제시하는 제임스 터렐의 Open space들이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내려앉는 그림자와 하늘에서 펼쳐지는 변화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부드러운 침묵 속에서 생각을 비울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노출 콘크리트의 질감과 빛이 만나는 순간의 대비를 중시한 그는 콘크리트는 차가운 재료지만,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남아 있으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해 거칠고 차갑게 보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를 정교하게 다듬어 ‘부드러운 침묵’으로 표현하였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쉼이 필요할 때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의 대화가 몇 가지 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이 자연과의 대화인 것처럼.


수덕사에 가면 일엽스님을 기리고자 만든 원통보전이 나온다. 원통보전 앞마당에 오래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수덕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느티나무 옆 원두막에 앉아 말없이 명상하는 시간을 보낸다. 머릿속을 비우면 시선이 유도하는 곳으로 마음도 따라간다. 바람 느슨한 날 고목들은 단풍 든 나뭇잎들의 조잘거림을 음악 삼아 우아한 자태로 춤을 추고 있다. 느린 춤 선과 겹겹 세월과 연륜이 묻어나는 몸놀림이 고혹적이다. 불평과 불안으로 출렁이던 내 마음속에도 고요가 찾아든다. 자연이 주는 평온함이 치유이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번뇌로 힘들었던 나혜석도 이곳에서 평온을 얻고 마음 치료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또 하나의 자연과 대화하기 좋은 명소는 실미도가 바라다 보이는 소나무 숲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할 때였다.


복잡한 일, 해야 할 일 다 접어두고 펼쳐든 것은 하루 종일 뒹굴뒹굴 음악 듣기와 책 읽기였다. 할 일을 비우니 텐트 앞에 보이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그 나무를 하루 종일 바라보며 2박 3일을 보냈다.


새벽녘, 대낮, 해 질 녘, 저녁, 나무는 다른 모습으로 서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진 모습의 나무는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내 인생 같기도 하다. 저절로 한 나무에 꽂혀 온마음을 열어두니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점점 잠잠해진다. '자연'이라는 의사를 만났더니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걱정이 어느덧 가벼워졌다.


몸을 정신없이 움직여 자연 속에서 마음을 비우기 좋은 곳이 있다. 교사시절 감정노동자인 교원들을 대상으로 힐링프로그램 템플스테이가 1박 2일간 전등사에서 있었다.


종교를 떠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참선하는 법. 새벽 4시 일어나 예불하기, 108배하기, 발우공양, 스님과 차담나누기, 삼랑성포행 등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꽉 찬 프로그램이었다.


자연과 함께 마음 비우기, 나를 내려놓는 연습, 참는 연습을 배운다. 그래야 정말 행복해진단다. '그럼 비우고 내려놓고 참아봐야지.' 주문을 외운다.


누워서 구름과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지는 곳이 있다.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숲 속 중간중간 1인용 침대의자에 누우면 시야가 좁아진다. 보이는 것은 오직 세 평 남짓 하늘뿐이다. 시끄럽던 세상에서 툭! 떨어져 나왔더니 이제부터는 하늘과 나뭇잎에게만 집중된다.


햇살은 은은하게 조각나 꽃잎처럼 흘러내린다. 엄마 품처럼 따스한 햇살은 포근한 이불이다. 얼굴을 쓰다듬는 바람은 간질간질 감미로운 자장가다. 초록잎들이 만들어 준 하늘 창에서 세로토닌이 별처럼 쏟아진다. 이 행복호르몬이 구겨졌던 마음을 다림질한다. 불안했던 마음도 지그시 눌러준다. 어느새 눈이 감긴다. 잠이 살살 온다.


사람과의 대화가 버거운 날은 자연과 느긋한 대화를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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