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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어려울 때 '이우환미술관' 어때요?

#09 나오시마&부산 이우환미술관

by 향기나
때로는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성급한 마음이 들 때,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추려는 욕심이 커질 때, 그 사람이 내 방식대로 반응하지 않아 서운하고 조급해질 때 이우환의 철학이 담긴 <관계항>을 만나러 떠나보세요.


이우환 미술관은 나오시마와 부산 그리고 프랑스 세 군데 있다. 일본 나가사키 현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 위치한 미술관은 이우환과 안도 타다오 두 거장의 협업으로 2010년에 만들어졌다.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


또 하나 부산 해운대 APEC로에 위치한 부산시립미술관 별관 ‘이우환 공간’ 은 2015년 개관했으며, 이우환 작가가 입지 선정부터 건축·조명·전시 설치에 이르기까지 전체 기획에 직접 참여한 미술관이다.


부산 이우환 미술관


2022년 고흐가 사랑한 프랑스 아를에 세번째 이우환 미술관이 안도타다오와의 협작으로 만들어졌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


아를의 이우환미술관ㆍ출처 중앙일보



철학을 전공한 현대미술가 이우환은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했다.


'무(無) 공(空)은 단지 없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여백'이라는 생각을 그의 작품에 녹여냈다.



그는 말했다.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우리는 서로를 억지로 연결하지 않는다
“나는 사물을 다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사이의 관계를 만든다.”
“예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 없는 대화이다.”
— 이우환


그의 예술을 느낄 수 있으려면 '관계 속에 있는 항(項)' 즉, 어떤 관계 안에 있는 존재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물체는 혼자서는 의미가 없고,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바위)이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가 쇠붙이를 만나면 어떤 항(項)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처럼.


'관계항'에 의하면 인간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가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깨질 수 있으므로 인간관계에서도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이우환의 <관계항>을 보노라면 인간관계에서는 침묵의 거리, 관계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무 가까워도 부담스러워지고, 너무 멀어져도 소원해진다. 관계란 고정된 것이 아닌 균형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때로는 그 사람을 나의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는 욕망 때문에 관계를 망친다는 것을.



'수관기피'라는 말이 있다. 일부 수종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현상으로, 각 나무들의 윗부분이 서로 닿지 않고 일정 공간을 남겨둔다.


그러면 주변 나무 아래까지 충분히 햇볕을 받아 함께 자랄 수 있다. 나무들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 상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가족 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부모의 사랑에 대해 말했다.


출생 후 만 3세까지는 무조건적인 사랑 필요하다. 부모가 전적으로 헌신과 책임감을 다해 돌봐주며, 아이가 필요할 때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사랑이다. 그래야 아이가 안전함을 느끼며 세상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한다. 밀착된 간격이 필요한 시기다.


두 번째 사랑은 만 3세 이후 사춘기 자녀가 될 때까지로 지켜봐 주는 사랑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부모가 옆에서 기다려 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스로 일어서도록 지나친 간섭을 피해야 한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지는 시기다.


세 번째 사랑은 냉철한 사랑이다. 법륜스님은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냉철한 사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절대 관여하지 않는' 것,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자녀가 자기 인생을 선택하도록 놓아주는 사랑이다. 자립과 책임감을 스스로 갖게 하며, 진정한 어른으로 존립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두는 일'이라고.

“사물을 가공하지 않는다. 그저 놓는다.” 그는 조형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이 본래 가진 성질을 존중한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꾸미지 않고, 대신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두는 일’ 그것이 그의 예술적 태도다.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자주 그 사람을 나에게 맞추려고 한다. 변화시키려 하고, 끌어당기려 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는 개입이 아닌 존중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변형하지 않고,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놓아두는 것’이다.


<관계항>은 나에게 관계의 본질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침묵의 거리, 관계의 방식, 사랑의 간격, 존중의 태도를.




좋아하는 시에서도 인간 사이엔 간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출처ㆍ네이버


가까이서 간섭하는 사랑보다 멀리서 응원하는 사랑도 아름답고 좋다.



'적당한 거리'라는 책도 있다.




'오늘은 핸드폰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할까?'


'커피와 빵 하고는? 남편과는? 자식과는? 자연과는? 살림과는? 운동하고는?' 어떤 간격이 좋을까?


모든 것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날, 이우환 작가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마음에 담아보세요.

<미술관내 작품은 촬영 불가하여 야외 사진만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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