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세종에 사는 딸이 육아도우미로 S.O.S를 보내왔다.
열이 끓는 아기와 가족 모두 감기가 걸려 힘든 모양이다. 딸아이가 힘들면 딸의 힘듦이 화가되어 아이들에게 번질까 봐 필요하면 언제든 엄마를 부르라고 당부해 두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나들이처럼 손주들을 만나러 간다.
결혼 전, 아이들에게 무관심해 눈길 안 주던 딸이라
'결혼은 할까?', '아이는 낳으려고 할까?' 걱정도 있었는데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느라 잠도 못 자고 밥도 서서 먹는 힘든 육아임에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고, 예뻐라." 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난다.
'제 내 딸 맞아?'
게다가 아이를 더 낳고 싶다는 딸의 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딸을 보며
'초보 엄마시절의 나는 어땠나?' 생각해 본다. 직장 다니느라 미루어진 나를 기다리는 산더미 같은 가사들이 저녁시간에 몰려있어 버거웠다. 당연히 아이를 차분히 바라봐주고 예뻐해 줄 시간이 없었다. 그저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키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내 삶을 돌이켜볼 때마다 제일 큰 아쉬움이다.
'바쁨에도 불구하고 더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
그럼 이제라도
'다 큰 자식이지만 어떻게 사랑해줘야 할까?'가 고민이다.
지난 일요일 후배 선생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직장 다닐 때는 직원 모두의 경조사에 참석해야 해서 버거웠던 일이 이제는 즐거운 설렘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자녀의 결혼이 끝나가고 있다 보니 어쩌다 있는 결혼식이 옛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좋다.
예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한 선생님이 속내를 꺼낸다.
딸이 얼마 전 아이를 낳았는데 아기가 보고 싶어 가겠다고 했더니
"엄마, 나한테 허락받았어?" 하면서 오라 소리를 안 해 너무 속이 상했다는 거였다. 딸의 말에 상처를 받아 2주일째 연락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선배 할머니들이 초보 할머니에게
"아니 아직 그거 몰랐어요? 딸 집에 맘대로 가면 안 되죠. 딸도 사위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나는 그래서 오라 하기 전에는 절대로 안 가요."
"아~ 나는 아들 밖에 없어서 며느리집이라 못 가겠다 했더니 딸도 그렇군요."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한참을 요즘 자식들에 대한 이런저런 섭섭했던 이야기들이 오간 후
그제야 초보할머니는
"요즘 다 그렇군요. 나는 내 딸만 그런 줄 알고 너무 야속해서 눈물이 다 났어요. 모두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속이 좀 풀렸어요."
그녀는 묵은 쳇증을 벗어던진 듯 표정이 환해졌다.
'모두 비슷한 경험으로 어른이 되고 있구나.'
애지중지하던 자식과의 거리 두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멀어지면 섭섭하다 하고 가까워지면 귀찮아지는 것이 인간관계이거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식과의 적정거리는 얼마일까?
자식에게 향하던 그칠 줄 모르던 집요했던 몰입을 내게로 돌려 내 행복에 집중하는 순간부터 가족 간 평온의 시작이 아닐까?
그것이 다 큰 자식들에 대한 진짜 사랑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창밖에 시선이 오래 머문 즈음 내릴역이 가까워졌다는 방송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