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에 해무가 끼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세상이 해무로 가리어져 아득해졌다. 해무의 저편은 여백처리 되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슴푸레 파리하게 빛나는 불빛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행할 리가 없는 생각이었다. 문득 그 와중에 이 생각이 저장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안개가 끼는 어느 날은 관념을 밀어내고 무작정 안갯속을 걸어보리라. 시간이란 늘 와서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안갯속을 걸어서 여백처리 되는 그 세계로 걸어가 해무에 묻혀버리는 거야. 신기루처럼 해무가 걷히고 여백이 사라진다 해도 여백처리 된 그 세계가 사라질 리는 없을 테니. 상상이 실재하는 세상과 만나는 그 여백을 관념의 세계에 가두어 둘 필요는 없을 거야. 저녁 내내 저 혼자 흐르는 음악이 feelings까지 왔다네. 이제 음악 들어야 해. 이내 time in a bottle로 넘어가고 있다네.
*time in a bottle/ 짐 크로스의 노래. 1972년 발매된 3집에 수록된 곡, '병 속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