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란도 Oct 26. 2024

과거로의 미래




아침놀이 걷혀진다 문 득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스치는 생각들.     

모두 각자의 불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현재 사회에 대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불만과 내팽개쳐진 서운함이 잠재하고 있다. 서운함에 둘러싸인 울컥함은 늘 서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어디서라도 조금만 날카로운 가시나 송곳이 스치기만 해도 쏟아질 거 같은 눈물을 다만 아직 억제하고 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폭포 같은 울음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울지 못하고 설컹설컹 대충 되씹어서 울음을 삼킨다. 쏟아 낼 만한 곳도 받아 낼 만한 것도, 대상도 마땅한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타자화 되어버린 자기라는 곳에서.     


나의 불만을 직시한다. 이 불만의 근원은 무엇이며 끝은 어디인가? 불만은 그 뿌리가 어딘지 모르게 부표를 닮아 있다. 서럽게 억제된 불만은 현재가 막연하기 때문이다. 매달려 철렁철렁 소리라도 내어야 할 서러운 풍경은 울리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울리지 않는다. 소리가 나려면 얼마나 바람이 세차게 더 불어야 한다는 말인가. 소리 나는 종이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정교하게 조건이 맞아야 한다. 어디를 쳐야 종은 울리나.     


부표처럼 떠 있는 불만을 대면하자마자 객관화된 불만은 저만치서 멀뚱하게 쭈뼛 서 있다. 어쩌면 너와 나는 굳이 겹쳐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부표 같은 불만에서 오는 서러움이라는 것 ㅡ 이제 지금 이 순간을 부여잡노니 ㅡ 불만은 곧 힘으로 화 하리라. 불만의 근거가 부표라면 불안의 근거도 부표일 것이다. 곧 사그라진다. 불안의 근원은 미래다. 막연한 미래가 현재의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현재는 과거를 산출한 수축으로 생겨나는 지속이며, 현재의 기준은 과거와의 낙차관계로만 바로 서게 된다. 그리고 그 낙차는 미래이기도 하다. 매 순간 현재의 부족분을 미래와의 낙차로서만 극복해 가는 것이다. 과거는 늘 미래였다. 미래 아니었던 과거는 없었다. 현재 아닌 과거도 없었다. 현재가 있기에 순간의 어떤 기준점에 의해 과거와 미래로 시간이 매 순간 분할되는 것이다. 그 분할되는 형태가 필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필름을 압축하여 하나의 대표 이미지로써 과거라는 기억이 만들어진다. 불만 또는 불안은 시간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목을 조이는 것도, 자유를 주는 것도 시간이니까 말이다.     

이전 09화 전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