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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n 20. 2024

귀족적인 딜꽃

니체의 아침놀, 198장 ~ 200장 옮겨 쓰기

#니체의_아침놀과_딜꽃


* 아침놀의 이 부분을 옮겨 쓰기 한 이유는 순전히 '딜꽃' 때문이다. 딜꽃을 보고 있으면 그냥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딜과 딜꽃은 기품 있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우아하고 관조적이다, 바람이 살랑 불어 흔들리면 여백이 있는 꽃모양은 어떤 먼먼 기억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딜꽃이 귀족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웃 텃밭 분들도, 오며 가며 보는 사람들도 모두 이 꽃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느낌을 받는가 보다. 사진으로 찍어도 그 느낌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햇살 좋은 한낮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가. 날이 더워 빛 좋은 시간대는 피하게 된다. 해가 길어 저녁 7시가 되어도 아직 훤하다. 괜히 저녁 무렵이 길어지고 그러다 금세 저녁 시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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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침놀> 제3권 198장 p215


자신의 민족에게 품격을 부여한다. ⸺ 위대하고 내면적인 많은 경험을 갖고 정신적인 눈과 함께 그러한 경험들에 의거하면서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 이것이 문화인들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문화인들이 자신의 민족에게 품격을 부여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귀족’이 이러한 일을 했다. 지금까지 귀족이 대체로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에 속했던(그들은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이상은 못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사제, 교사, 그들의 자손들이 이러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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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침놀> 제3권 199장 p215~217


우리는 더 고귀하다. ⸺ 충성, 관대함, 자신의 명예에 대한 염려, 이 세 가지가 결합된 하나의 정신을 우리는 귀족적이고 고귀하며 고결하다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정신 덕분에 그리스인을 능가한다.


이 미덕들이 지향했던 낡은 대상에 대한 존경이 사라졌다(그리고 이는 정당하다)고 느껴져 이러한 덕들을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라도 그것들을 버리지 말자.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우리에게 계승된 귀중한 충동이 새로운 대상들에 적용되도록 노력하자.


고귀함에 대해 여전히 기사도적이고 봉건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가장 고귀한 그리스인들의 정신조차 보잘것없고 고상하지 못하게 느껴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려면 오디세우스가 굴욕적인 상황에 처해 내뱉은 저 자기 위안의 말을 상기하면 된다.


“친애하는 나의 영혼이여! 부디 견뎌내게나! 그대는 이제까지 훨씬 더 비참한 것도 견뎌왔다!”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신화적인 전형이 실제로 나타난 예로서, 저 아테네의 장교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라. 그는 참모부 전체의 면전에서 다른 장교에게 몽둥이로 위협을 받았을 때, 이러한 치욕을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한테서 털어내었다.


“자, 때려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말하는 것도 들어라!” [이 사람은 고전 시대의 저 기민한 오디세우스였던 테미스토클레스였고, 그야말로 이 치욕의 순간에 저 위로慰勞의 시구를 자신의 ‘친애하는 영혼’에게 읊어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전승된 기사도적 모험성과 희생정신에 감명을 받아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는 이유로 삶과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오늘날의 결투에서 보듯이 삶과 죽음을 명예로운 경기에 걸 기회를 찾는 것, 혹은 악명을 획득하는 것이 명성과 힘의 감정과 양립할 때에도, 악명을 획득하기보다는 선한 이름(명예)의 유지를 높게 평가하는 것, 혹은 신분적인 편견과 신앙조항이 전제 군주가 되는 것을 금할 경우에 그것들을 충실히 따르는 것,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인들과 거리가 멀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모든 그리스 귀족들을 규정했던 전혀 고상하지 않은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심한 질투심 때문에 그들은 동료 귀족들이 자신과 대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그들은 호랑이처럼 자신의 획득물, 즉 폭력적인 지배를 향해 돌진할 용의가 있었다. 이 경우, 거짓말, 살인, 배반,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팔아먹는 것 등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사람들이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극히 어려운 것으로 여기며 거의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그리스인들에게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의 ‘성자’라는 말에 비교할 수 있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가장 유덕한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정신 나간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때, 오만과 쾌락을 위해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전제 군주처럼, 철저히 방약무인傍若無人하고 악마적인 소행을 서슴지 않는 사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밀하고 자유분방하게 이러한 행복을 공상하는 인간들 사이에는 국가에 대한 존경심이 깊이 뿌리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고귀한 그리스인들의 경우처럼 권력욕이 더 이상 맹목적으로 날뛰지 않는 인간들에게는 국가 개념에 대한 우상 숭배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이는 그리스인들이 국가에 대한 이러한 우상 숭배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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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침놀> 제3권 200장 p217


 

빈곤을 견딘다는 것. ⸺ 귀족 출신의 커다란 장점은 출신 때문에 빈곤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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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침놀> 제3권 200장 p217~219


귀족의 미래. ⸺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거동에는 힘에 대한 의식이 그들의 사지四肢 안에서 끊임없이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표현된다. 따라서 귀족적인 습관을 가진 인간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완전히 탈진한 것처럼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편안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예를 들어 기차로 여행할 때 의자에 등을 기대더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궁정에서 몇 시간씩 서 있어도 피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집을 편안하게 정돈하지 않고 더 덩치가 큰(또는 더 키가 큰) 존재의 처소인 것처럼 광대하고 장중하게 만든다.


 

그는 도전적인 말에 대해서도 침착과 정신의 쾌활함을 잃지 않고 대답한다. 그는 서민들처럼 기가 질리거나 압도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숨이 막히지 않는다. 그는 항상 강한 육체적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외관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곤경에 처해서도 쾌활함과 친절함을 끊임없이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영혼과 정신이 위험과 기습을 견뎌낼 수 있다는 인상이 유지되기를 원한다.


 

고귀한 문화는, 열정적이고 자존심 강한 말로 하여금 일부러 스페인풍의 보조步調로 가게 하면서 희열을 맛보는 기수를 꼭 닮았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고귀한 문화는 힘을 호흡한다. 그리고 매우 자주 이 문화의 관습들이 단지 힘의 감정을 외관만을 요구할지라도, 우월감은 실제로 이러한 유희가 고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과 고귀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상에 반응하는 모습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대된다.


 

우월감에 입각한 고귀한 문화가 갖는 이 의심할 여지없는 행복은 현재 훨씬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기 시작하고 있다. 모든 자유정신들이 노력한 덕택에, 귀족으로 태어나 교육받은 사람이 인식의 교단에 들어가 그곳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정신적인 영감을 받고 더 높은 기사의 의무를 배우며, 바로 현재 도래하려는 시대와 달리 일찍이 어떤 시대도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기 앞에 내걸 수 없었던 승리를 거둔 저 지혜를 올려다보는 것이 허용되어 있고, 그것은 더 이상 치욕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날이 갈수록 정치에 종사하는 것이 더욱더 천박한 것으로 보인다면 도대체 귀족은 장차 무엇에 종사해야 하는가?








#아침놀 #니체 #딜꽃 #귀족적 #자유정신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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