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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Oct 26. 2024

작두는 무당만 타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드러내어 표현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존재는 칼끝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시인은

그래서 언제나 작두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작두를 타고 있었다

특히나 요즘은 어느 공간에서라도 존재함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으면

존재의 당위성이 희미해진다

그 공간에서 다시 일어서야 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가 모인 곳에서 부대끼다 보면

존재함의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작두를 타다가 칼끝에 발을 베인 자들의 비명 소리이다

비명 소리로 가득한 곳은 곳곳의 공간들이기도 하다


나도 존재함의 비명 소리를 수차례 질렀다

그 비명 소리가 점점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끝에 이르러서는

칼끝에서의 정교함을 알아가게 되었다

에너지가 모이면 속도가 빨라진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가 맞지만

방향과 속도는 서로 배척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

방향이 앞서면, 속도는 곧 따른다.

한 묶음이다

방향이 드러나기만 하면 속도는 자동으로 붙는다

방향 안에 속도는 이미 내장되어 있는 것과 같다     

에너지가 모여 있으면

밀도가 높아진다

의사결정이 빠르게 일어난다

방향설정은 빨라진다

방향성이 순식간에 서로에게 전달된다

방향성이 빠르게 드러난다는 말은

깨달음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과 같다   

  

어쩌면,

방향성을 잡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속도 때문일 수도 있다

속도를 내야 할 필요성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에너지가 모이면 속도가 빨라진다.라는 명제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라는 말의 본질일 수도 있다

앞뒤를 살피라는 말과 같다     

역사적 사례로 보자면

붓다의 500 제자는 모두 깨달았다

왜? 에너지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느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칼끝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복제는 역사 이래 곳곳에서 재현되었다

선불교가 그랬고 유교가 그랬고

차 문화가 그랬고 도자기 문화가 그랬고

인상주의 화풍도 그랬으며

모든 주의와 이념들도 그랬다     

현재는 SNS에서 그러한 부분이 발견된다

이건 개인들의 드러냄과 표현에서

그 수준의 향상이 상향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것과 같다


빠르게 구조가 복제되고 있다

에너지가 모여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배울 필요가 없이 구조를 그저 복제해 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색을 입힌다

자기 스타일을 찾아서 드러내기

이것이 깨달음의 구조이다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서퍼처럼

칼날 위에서 발바닥을 베이지 않고 춤추는 무녀처럼

모두, 드러낸다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칼끝에서 춤을 신명 나게 춘다

이 드러냄이 빠르게 전파된다

방향성이 빠르게 드러나는 것은

곧 전달하고자 하는 것의 속도 때문이다

속도가 필요한 이유는 전달하고자 하는 그 무엇 때문이다

속도가 필요한 본질적인 이유는

전파의 의도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어야 대화가 되고

그다음 진도를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필요한 이유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계획이 있을 때뿐이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만 속도가 필요하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싶거나 연애를 하고 싶을 때는 속도가 필요하다

계속 지지부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사랑이 없거나 또는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니까     


속도에 대한 이해는

방향성에 대한 이해의 전제가 있어야 속도를 자기것화 하여 사용할 수 있다  무작정 내는 속도는 제자리 돌다 죽으므로(그리고 이런 속도는 지속성이 없다)  붓다가 먼저 방향성을 잡고 나자 500 제자에게 빠르게 깨달음의 구조가 복제된 것이어서 이는 깨달음의 구조를 모두 공유한 것과 같다  빠르게 깨달음의 구조가 복제된 것은 그다음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변화시킬 계획 불국토라 하여 의미 확장에 오해가 있어 일부에서는 거부감이 있긴 하지만  풀어 보면 ‘인류를 변화시킨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최초의 생각에 이미 변화하고자(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과 같다고 여긴다.  속도가 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코스와 같은 것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는 저절로 방향을 따라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속도는 또한 흐름이기도 할 수 있다  속도에 대해 이제 너무 색안경 끼고 보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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