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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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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Nov 10. 2024

늦가을의 배추텃밭은 보물처럼 다가온다

2024_배추텃밭/ 농작물 서리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달이 떴다

산책 삼아 텃밭을 경유한다

스마트 폰 플래시를 켜고 우리텃밭을 살펴본다

결구된 배추를 살포시 꾹꾹이를 해본다

단단하게 여물고 있다

가지가 얼마나 컸나 살펴본다

달빛보다 환한 빛이 갑자기 번쩍한다

텃밭대장님 플래시는 정말 밝다

나는 순간 나도 스마트폰 플래시로 비춘다

아, 내 것은 이제 소용없다

플래시를 껐다


반달이 늦가을 밤하늘에 곱게 떠 있다

밤에 텃밭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도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침묵은 참으로 풍부하게 다가온다

나를 둘러싸는 것 같은 그 느낌을 받으려고 밤 산책한다


텃밭대장님과 배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혹시 배추를 묶어주는 게 필요한가 싶어서, 오히려, 배추 안 묶어 줘도 되지요라고 물었다.

김장배추는 묶어주는 거 아니라고 하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공기도 통하고 태양빛을 속까지 더 받는 것이 좋다

배추 겉 잎들도 이제 스스로 서서 결구되는 방향으로 오므라들고 있다.

텃밭대장님은 현수막을 보았냐고 묻는다

나는 박농민에게 대충 들었다

하지만 현수막을 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배추를 들여다보느라...

자꾸만 농작물에 손대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있다

이를테면 텃밭 민심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손이다


텃밭에서 배추와 무가 자라는 시간은 사람들이 그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쓴 것이다

지금은 텃밭에 산책 나가기도 조심스러운 때이다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 동안 배추와 무를 가꾸었고, 지금은 정말 탱글탱글하게 커 가고 있다

오늘 낮에 텃밭에서 텃밭 농작물에 손을 댄 그 어떤 사람은 현장에서 걸렸다

이번에 진짜 걸리면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것을 그 손은 몰랐을 것이다

텃밭대장님은 그 사람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현수막을 붙였다고 한다

텃밭 농작물이 자꾸 손을 타면 그 원성과 하소연이 텃밭대장님한테 온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딱 현장을 덮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텃밭을 플래시 들고 한 바퀴 돌고 계셨는가 보다


나는 이렇게 텃밭을 바라보며 말한다

" 지금 시기의 텃밭은 보물을 대로변에 펼쳐놓고 있는 것과 같아요 "

텃밭대장님은 플래시로 사방을 돌아가며 비추시며 말한다

" 그렇죠, 지금은 더구나 배추 수확기가 다가오니까, 배추와 무를 도둑맞으면 사람들의 상실감이 너무 큽니다 "


광장에 자기 보물을 펼쳐 놓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

하루에 한 번은 들어다 보아야 안심이 되는 그 마음, 그게 바로 지금 텃밭 심리이다


지금 이야말로 이러한 배추 텃밭 시즌에서는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자두나무(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때이다.


우리 배추는 잘 있나 보고 싶어서 왔다

보고 또 봐도 괜히 텃밭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거의 6일 만에 나와보는지라 배추가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마음에 별 동요가 없는 이유도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화도 빈자리가 휑하게 드러나면 금세 흔들린다

그렇지만 견물생심이라고 그 탐스럽게 자라는 배추와 무를 보면 갖고 싶은 마음도 텃밭대장님과 나는 이해한다

아마 누구라도 텃밭을 보고 있으면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현수막을 붙이고 신고를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텃밭과 그 주변을 산책하면 정말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산책을 하는데 그 모두가 눈치를 보고 사는 것보다는

습관성 도벽을 물리치는 게 낫다

산책하며 눈으로만 감상하고 그 공간을 오히려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삶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여름에는 수박을 누군가 정기적으로 따 가고, 고추도 따 가고 배추도 뽑아가고 무도 뽑아가고...


'농작물 서리는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다'

텃밭 부산물 처리장에 가정집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비닐봉지 마저 같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골라내야 한다

냄새도 난다

그것 방지하려는 사람들의 애씀이 있었다

자신은 알뜰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행위가  실은 알뜰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민폐란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시대의 삶의 알뜰함은 오히려 행위의 세련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세련됨은 절제된 심플함에서 나온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부물을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들은 꼭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사는 것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은 아니다

걸리기만 해 봐! 하는 상황과

잘 자란 농작물을 가져가고 싶은 욕망은 동시적이고 같이 일어난다.

시즌은 자기 자신에게만 시즌은 아닌 것이다




* 3년여 동안 텃밭을 하면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조금 민망한 일이기는 하지만, 3년여 만에 오늘 저녁 텃밭을 둘러보니, 한 번쯤은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적어 놓는다.



텃밭대장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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