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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Sep 15. 2023

산책길에서 행방불명된 이름들

작은 것들의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다

나무가 찢어질 정도로 열린다는 게 이런 거였다

대추나무 정말 무거워서 가지가 찢어질 거 같다

감나무 가지 대단하다

저 무거운 감을 저리도 많이 달고 있는데

찢어지지 않았다


손톱만 한 병아리색꽃

가까이 보아야 예쁜 하늘빛깔꽃

송알송알 톡톡 터질 거 같은 오렌지색꽃

예전에는 이름을 알았을 거 같은 꽃들


이름이 부제 하다

맴맴 돌다 다시 사그라든다

그저 보기만 하고 이름은 어디로

행방불명되었을까!

기억을 뒤져 보는 것보다

다시 이름에 관심을 두어 보는 것이

나을까

대추나무 감나무는 잊지 않

풀숲에 작디작게 군락진 풀꽃들은 흐릿하다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여기는 것 역시

착각이 아니었을까

맴맴도는 기억이 의심스럽다

나보다 작은 미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특별한 시간 투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시세계는 부재하고

그 부재는 자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경으로 존재하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보다 오래되었다

어떤 것보다 작은 것들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풀꽃은 배경의 세계이다

흐릿한 채로 기억에서 멀어져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 남는다.

저 작은 풀꽃은 나보다 더 늙었을 것이고

우리보다 더 늙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토록 작아서 귀여움을 만들까

그것이

바로

풀꽃의 방식일 것이다

흐릿하게 존재하여 잊히는 방식으로

오래 사는 것이다

부재하는 것이 오래 생존하는 방법이다

풀꽃의 나이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인간보다 감나무보다

대추나무보다

벼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미시의 세계는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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