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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Sep 21. 2016

그 해 3월

3.11 동일본대지진



변함없는 하루의 시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픈 준비로 청소를 하고 많은 손님들을 마주하고 하루종일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폐점 시간 전, 친해진 일본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핑 도는 듯한 감각과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피곤해서인가 넘겼는데 레스토랑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등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무슨일인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친구들의 「大丈夫?(괜찮아?)」라는 말에 이상함을 느끼게 됐다.

몇 번인가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의자에 앉아 어지럼증이 멈출 때까지 앉아 있다 마무리를 하고 퇴근을 했다.



아이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모두와 함께 입구에 모여 우리는 차를 타고 가스토(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떠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귀가가 늦어졌다.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갑작스럽게 앞이 안 보일만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더울만큼 화창했던 날씨가 무서울만큼 눈이 내리고 있어서 우리는 당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차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만큼 많은 눈이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근처의 게임센터에서 눈발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자 거짓말처럼 눈이 멎어들었고, 우리는 무사히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나도 열두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3시쯤 굉장한 굉음과 내 침대로 뛰어들어온 룸메이트 동생에 의해 잠이 깼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잠이 깨고나서도 무슨일인가 가만히 있었다. 옆의 이층 침대에서 물건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이 쓰러지고 선반의 물건들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지진이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일단은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나가보니 모두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같이 옷을 걸치고 물을 들고 기숙사 앞의 공터로 모였다. 모두가 핸드폰으로 지진 속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6도 이상의 큰 지진이었다. 그렇게 우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땅은 몇 번이나 흔들렸고 그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일본 친구들은 본인들도 근심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지진 경험이 없는 날 걱정해주었다.



아침이 되자 당연히 스키장은 휴업을 하게 되었다. 아스팔트의 길은 뒤틀렸고, 방으로 돌아가니 물건들이 전부 다 쓰러져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배낭에 물과 스낵바 초콜릿등을 넣었다. 물이 공급되지 않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씻는 것도 곤욕스러웠다. 우리는 리조트에서 가장 지반이 튼튼하다는 온천이 있는 건물에서 모두 함께 모여서 비상용 식량으로 오니기리(삼각김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점심을 오니기리와 미소시루(된장국) 샐러드로 간단히 해결하고 모두 한 곳에 모여 잠을 잤다.

하지만 여진으로 몇 번이나 창문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진 속보를 보기 위해 틀어놓은 뉴스에선 끊임없는 피해 영상이 흘러나왔다. 지진의 영향으로 발생된 쓰나미로 인해 삶의 터전과 더불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참혹했다.


지진으로 인해 전화 연결조차 원활하지 않았고 나는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조차 하지 못한 채 이틀을 보냈다. 이틀째 우리는 다같이 지진이 잠잠해진 틈을 타 씻기 위해 온천에 다녀왔다. 온천을 하고 모두 커피 우유를 마시며 우스갯소리로 우리 이게 마지막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그 날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고 하루를 보낸 다음 날 리조트의 인사 담당분께서 우리를 불러 모두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일본에 있는 많은 유학생들이 귀국하고 있는 상황이라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도 없고, 또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서 도쿄까지 가야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그 분께 당장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씀을 드리니, 지진의 영향으로 아마 스키장이 무너져서 산사태까지 일어나면 기숙사도 무너지게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위험하니 신칸센이 복구되는대로 가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계약 기간은 채우지 못했지만 이것으로 계약 만료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원망스러웠고, 그들의 냉정함에 절망했다.

집안 형편이 좋았다면 당장이라도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라도 한국에 돌아가고싶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루카가 나에게 기다리라며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 지진 때문에 여기에 더이상 있을 수 없어서 돌아갈거야. 근데 여기에 한국에서 온 친구가 있을 곳이 없어서 그러는데 데려가도 돼? 이 친구 두고 혼자 갈 수가 없어."


라고.



하루카는 전화를 끊고 치바에 있은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단 차에 짐을 싣게 돼서 함께 가는 건 어려우니 짐을

정리하고 내일 바로 오면 바로 머물 수 있도록 집을 정리해두겠다고.



너무나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 외에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하고 싶을만큼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하루카 덕분에 나는 비행기 티켓을 구할 때까지 있을 곳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같이 요코하마와 치바에 사는 일본 친구들과 함께 신칸센을 타고 치바로 가게 되었다.


도쿄역에서 요코하마에 사는 레이쨩과는 헤어졌고, 치바에 살았으나 내가 가는 곳과 다른 노선에 살던 기무라군이 나에게 혼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 타는 열차였다. 알 수가 없었다.

민폐라는 걸 알았으나, 이미 심적으로 너무 불안했던 나는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기무라군은 흔쾌히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나를 마중나온 하루카와 하루카 친구인 마이쨩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M에게 메세지가 왔다.






東京行くから待ってね (도쿄 갈테니까 기다려)



그리고 3일 후, 거짓말처럼 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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