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위해 이곳으로 왔잖아
내가 이 곳 라다크 레로 온 이유는 단 하나다.
미친듯한 영화광은 아니지만, 종종 인도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편인데, ‘세얼간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호수 “판공초” 를 가기 위해서이다.
오천미터나 되는 곳에서 숙박을 해야하나, 캠핑을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여행자거리에 있는 장비대여점을 발견하고는 들어가 텐트와 침낭, 그리고 패딩을 운 좋게 빌렸다.
판공초로 떠나는 로컬버스는 이틀에 한번 꼴로 있는데 사실 처음 가던 날은 눈이 많이 와서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돌아왔다가 그 다음 운행 때 가게 되었는데 판공초로 가는 길은 산길을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가는 수준이라, 단 한순간도 졸 수가 없었다.
하늘과 점점 가까워 질 수록 눈보라도 가끔 쳤고, 얼음장같은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절벽으로 굴러 떨어진 차량도 보였다.
아찔한 곡예 운전의 끝에 저 멀리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보연이도 좋은지 한껏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 우리는 신이 났다.
하늘이랑 곧 닿을 것 같은 호수가 내 앞에 있다.
호수 위에 떠있는 뭉게구름처럼 내 마음도 뭉글뭉글하다. 그 불안했던 여덟시간의 마음을 난 또 이렇게 자연으로 보상을 받는다.
흙먼지를 뒤집어썼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씻지 않아도 좋다고 호들갑을 떨며 호수가 잘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는 오후내내 호숫가를 걷기도 하고 텐트에서 책도 읽고 보연이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꼭 바다같다' 바람으로 인해 파도로 밀려들어오는 판공초. 그리고 눈이 잔뜩 쌓여버린 설산들.
다시 여행자의 삶을 시작한지 한달째,
모든게 완벽하지 않지만 그 어떤 순간으로도 지금을 만날 수 없음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 때문에 나는 모든 게 처음 같다.
근처 숙소에 들어가 짜이를 시키고, 사온 인도맛컵라면을 먹기 위해 뜨거운 물을 달라고 부탁했다.
무심히 라디오를 듣던 주인은 뜨거운 물과 짜이, 카레가 섞인 밥을 한접시나 가져다 주었고 우리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밤은 추웠지만 때때로 구름이, 때때로 별이, 때때로 눈보라가, 때때로 비가 하늘을 움직였다.
해발 오천미터의 바람이 텐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밤새 잠을 설쳤지만, 그것마저도 여행이고 내 삶이라-
완벽하지 않은 순간도 이제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