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에 대해서 의견이 흐릿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대체 뭐 하나 분명한 게 없다. 아, 나의 고양이를 몹시 사랑한다는 점만은 아주 분명하지. 여하튼 그런 내가 일관된 선호와 애정을 보여온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두 가지 측면에서 내 삶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첫 번째로는, 내가 평생 경험하지 못할 삶들을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흔한 얘기다. 두 번째로는 시간에 휩쓸려 사라진 나의 내밀한 감정과 감각들을, 타인이 쓴 활자의 형태로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구절을 소설에서 만날 때면, 나의 털끝만큼이라도 무한한 세계의 일부로서 남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뭐랄까, 나야 죽어 없어지겠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어느 소설의 일부로서 남아있는 한, 나의 전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달까.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사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내 꿈이기도 하고. 이런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인 김연수가 <우리가 보낸 순간>의 '소설' 편에서 만났다.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쓰지 말고,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사랑했던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 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형식적인 것들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잊지 못할 음식을 드시고, 그날의 기온과 눈에 띈 일들을 일기 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의 인생은 그런 것들로 형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밖으로 나가서 좋아하는 사람의 언 손도 녹여주고, 기나긴 겨울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서로에게 속삭여보고, 이제는 연락이 뜸한 옛 친구에게 서운하고 보고싶었다고 투정도 부리면서, 그렇게 조금이라도 소설 같은 시간을 살아야 할 텐데. 이렇게 주말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읽는 소설 한 귀퉁이에서 내 생각 혹은 느낌과 비슷한 구절을 어쩌다가 발견하는 식으로 억지로 나의 삶을 확인하려 하는 건, 너무 슬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