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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May 07. 2024

요가, 오롯이 '나'만 기준이 되는

타인이 벅찬 회피형에게 요가를 추천하는 이유

 같은 공간에서 수련하는 사람들과 에너지를 공유하는 경험이 요가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는 하지만, 요가는 무척 개인적인 운동이다. 타인과 호흡을 맞추는 단체 혹은 커플 운동도 아니며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혼자서도 충분히 수련하고 즐길 수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인간관계에서 에너지 쓰기를 꺼려하는 나 같은 회피형 인간에게 요가가 매우 잘 맞는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예전 글에서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만이 요가를 타인의 존재가 버거운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요가는 수련하는 데에 타인이 필요 없는 것을 넘어, 아예 타인을 의식하거나 신경 쓰지 말 것을 적극 권장하기 때문에 타인을 마주하는 데에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드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하다. 구체적으로 아래 세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본인의 골반 너비만큼만 벌리시면 됩니다. 
남들보다 좁거나 넓을 수 있어요. 본인만의 너비를 확인해 보세요. 

 

첫째, 요가 아사나(Asana, 동작)에서 모든 기준은 자기 자신의 '몸'이다. 어떤 아사나를 취하건 간에 두 발의 간격, 매트를 짚는 두 손 사이의 너비, 다리를 쭉 폈을 때에 발의 위치 등에서 기준점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두 발의 간격은 나의 골반 너비랑 같도록, 두 팔은 나의 어깨너비만큼만, 쭉 뻗은 오른손의 수직 아래쪽에 오른발이 위치하도록 다리를 벌릴 것 등등.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대략 30cm 등 절대 수치를 알려주시는 강사님들도 계시지만, 그 수치 역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인의 주먹 2개 반 정도면 골반 너비랑 비슷할 거라는 식으로 결국 수련자 본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는 티칭이 가장 효과적인 듯하다. 


이처럼 요가 매트 위에서 좋은 아사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몸에 맞는지 여부다. 같이 수련 중인 다른 모든 사람들이 1m만큼 다리를 벌리고 서 있더라도 나는 더 넓게 1.2m를 벌려도 된다. 그게 올바른 방법이다. 남을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의 타고난 몸과 조건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 가장 안정적인 아사나를 취하고 안전한 수련을 할 수 있다. 앞뒤좌우에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아니, 그래야만 하는 운동이 요가다. 


'전사 자세 1'이라고도 불리는 비라바드라사나 1. 양팔의 간격은 본인의 어깨너비만큼을 유지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시면 됩니다.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둘째, 요가는 남들이 다다른 특정 '수준'에 도달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위 인용문은 요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자주 들었을 말 중 하나일 거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나도 수련하면서 강사님들께 매번 듣는 말이고, 요가를 처음 접한 친구들이 좋은 점으로 꼽는 게 저 말에 담겨 있다. 


요가는 다른 사람을 쫓아가느라 무리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옆 매트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얼마나 유연하건얼마나 단단한 코어를 가지고 오래 버티건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계속 계속 주의를 준다. 남들이 어떻게 하건 말건 중요한 건 나의 속도와 가동 범위다. 남들 따라 하느라고 굳이 무리하다가 부상당하는 것에 대한 염려도 염려지만, 애써 남을 쫓아가려다가 잘 되지 않았을 때에 실망하거나 자책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요가를 수련하는 목적과 정반대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회피가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변명을 좀 해보자면 이렇다. 내 감정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사회적 압력을 신경 쓰면서 학습한 것도 있다. 내가 지금 서운하기는 한데 이걸 얘기하면 엄마가 실망할 수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야지. 이번에는 내가 저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동생이 울고 싸워야 될 수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고, 다음에는 그냥 이 놀이 하지 말자고 해야겠다 등등. 이렇게 남들 신경 쓰느라 애초에 갈등 벌어질 만한 상황까지 가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했고, 잃을 게 많아지는 나이가 되자 미지의 갈등 상황은 더 두려워지고, 그래서 계속 계속 깊은 관계를 피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남들 신경 쓰기'를 내려놓으라고 쉼 없이 이야기해 주는 곳이 바로 요가 수련장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회피형 인간들에게 요가를 추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들 때는 쉬어 가세요. 아기 자세로. 


아무리 본인의 몸 상태나 호흡에 맞추어 수련해도 된다고 강사님들이 말씀해 주시더라도 불굴의 한국인들은 대체로 잘 쉬지 않는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특정 아사나를 취하고 있는데 혼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도 상당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는 하다. 달리기라면 대열에서 벗어나 벤치 등에 앉아서 쉬면 되고, 수영할 때는 레인 끝에서 물안경을 벗고 멈춰 있으면 휴식 중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데, 요가는 중간에 수련장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혼자 냅다 누워버리기도 민망하다. (물론 누워도 된다. 강사님을 포함해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진 않는다.) 


그럴 때, 즉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잠깐 멈추고 싶지만 어떻게 그 멈춤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할 때에 취하기 좋은 아사나가 있다. 실제로 많은 강사님들이 이 아사나를 '솔루션'처럼 얘기해 주신다. 바로 아기 자세인 '발라아사나'다. 

아기 자세, 발라아사나

아기 자세는 송장 자세인 '사바아사나'와 함께 휴식을 위한 자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아기가 엄마 자궁 속에 편안하게 있을 때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양 뒤꿈치 위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양팔은 편안하게 매트 앞쪽으로 쭉 뻗는다. 그다음에 양 어깨 사이에 머리를 툭 떨어뜨려놓고 이마를 바닥에 댄 채 호흡하면서 휴식하는 자세다. 


수련 중간에 아기 자세로 휴식하면 일단 시선이 매트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속도로 수련 중인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시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시야를 차단하고 나면 자기 자신의 호흡과 현재 몸 상태에 집중하는 게 훨씬 쉬워진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서 준비가 되었을 때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다른 사람들의 리듬에 섞여 들어가면 된다. 



이렇게 요가는 수련할 때에 자기 자신의 몸, 속도, 상태 등이 기준이 되는 운동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결국 자기 자신을 타인과 격리(!)하는 것을 선택하는 회피형 인간들이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놓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고(thinking)'도 훈련과 습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어려운 순간에 취하기 좋은 자세(아기 자세)마저 알려주니, 요가는 정말이지 회피형 인간에게 최고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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