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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y Park Oct 01. 2023

달리기 힘들 때는 앞이 아니라 위를 향해 뛰어보자

인생의 에너지와 근력이 약해졌을 때 멈추지 않고 버티는 방법

몇 년 전부터 달리기 동호회 모임에 참여해 오고 있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자기관리에 철저하거나 매일 꾸준히 달리기에 집착할 정도의 의지력을 보유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부터 단체 구기 종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고 즐겨왔다. 하지만,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즐겼던 것은 체력 단련을 위해서나 체지방을 낮추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단지 운동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데서 오는 기쁨을 누리기 위한 측면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하는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공이나 셔틀콕 등을 주고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운동들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사회인 야구를 비롯해 단체로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대부분 사라졌고, 재택 위주로 근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근육이 차츰 손실 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 비용이 크게 들어가지 않고 복잡한 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였다. 다만, 혼자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의지와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느슨한 관계로 이어진 달리기 동호회 참여를 통해 외적 동기를 불어 넣으려고 노력했다. 


여러 가지 관계로 이어진 20여 명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는 개별적으로 운동한 결과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단체로 달리는 번개 모임도 운영이 되곤 한다. 서로에게 운동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달리기에 대한 정보들을 같이 나누고 멤버들이 건강하고 활기 찬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한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일종의 '느슨하게 이어진 커뮤니티'인 셈이다.


(지금까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 


코로나 시국을 버텨 오던 지난 겨울부터 전반적인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 여름에 처음으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생을 했고, 이어진 겨울에는 업무상 큰 규모의 사업을 수주하고 단기간 내에 수행까지 총괄해야 했다. 당시 회사가 이전에 수행해 본 경험이 없던 새로운 사업이었기에 실무적인 측면에서 불확실성 큰 사업이었고, 많지 않은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장해 놓고 하나하나 실무적인 내용들을 챙겨야 했다.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실패하면 안된다는 책임감을 너무 크게 느꼈는지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매일 아침마다 그날 해야 하는 업무들이 문제 없이 잘 진행이 될 지 두려운 마음이 가득 찬 상태로 출근을 해야 했다. 겨울 내내 개인적으로 운동을 할 심적,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달리기가 잘 안되기 시작했다.

한 동안 운동을 못하다가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나섰는데 얼마 가지 못해 달리기를 멈추고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보폭이 좁아지고 무릎이 올라가지 않으면서 발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듯 뛰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허벅지 근육과 고관절은 내 몸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을 견뎌내기 힘들어했다. 마음은 이전처럼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상체만 앞으로 쏠리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당연히 달리는 속도가 전보다 훨씬 느려졌고, 건강한 사람이 빨리 걷는 것과 속도 차이가 별로 나지도 않았다. 쉬지 않고 1~2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물론 인생을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들이 당연히 발생한다. 하지만, 외부 조건의 제약으로 인해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과 내 몸 하나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체감되는 느낌은 차이가 컸다. 장애가 있거나 노령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제 나의 신체 능력이 운동을 마음껏 즐겼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아직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은 인생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달리기를 다시 배우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단 내 몸의 현재 상태(As-Is)를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몸의 현재 상태에 맞는 달리기를 다시 배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 걷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걸으면서 내 몸의 상태를 민감하게 살피려고 노력했다. 걷기부터 시작해서 워밍업을 하고 몸 상태가 괜찮으면 조금씩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4~5번 정도 집 근처의 불광천을 따라 왕복 6~7km 정도 되는 거리를 걷다가 뛰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뛰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갔다. 처음에는 몇 백 미터만 뛰어도 힘들어서 포기를 했다. 그러다가 1~2km 정도를 뛰게 되었고, 최근에는 3km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

이처럼 걷기부터 시작하여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고, 조금씩 몸의 한계를 넘어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에 달리기 동호회 멤버들과 같이 달리던 수준의 속도는 회복되지 않았다. 대신 일정 정도의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나만의 페이스를 찾게 되었다. 


몸 상태가 이전과 같지 않은데 과거에 달리던 속도를 생각하며 빨리 뛰려고 하면 상체가 앞으로 쏠리면서 자세가 무너지고, 발이 따라오지 못하니 발바닥이 지면에 끌리듯 터벅터벅 뛰게 된다. 이렇게 달리면 지속가능하게 오래 달릴 수 없다. 과감하게 보폭과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그 움직임에 맞게 호흡도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중요했던 점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버렸다는 것이다. 속도를 포기하니 무리해서 발을 앞으로 내딛을 필요가 없었다. 대신 지면이 끌어당기는 중력을 거슬러 위로 뛰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 몸의 무게를 지탱하는 허벅지 근육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 들이려 노력했다. 위로 뛰려고 하다보면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몸은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뛰기 힘들 정도의 한계 상황이 와서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느려지더라도 팔을 휘젓는 것을 멈추지 않고 위를 향해 발을 떼면 어찌 되었든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한번에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 갔다.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인생의 에너지와 근력이 약해진다.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다. 다만, 그 불치병에 직면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서로 다를 뿐. 우리가 빨리 뛰든 느리게 뛰든 이 불치병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다. 다만, 이 종착지를 향해 가면서 인생의 에너지와 근력이 점점 사그라질 때 이전처럼 빨리 달리지 못하는 자신을 아쉬워 하지는 말자. 


또한, 이전처럼 빠르게 뛰지 못한다고 걸음을 멈추고 성장하기를 포기하지도 말자. 달라진 몸 상태와 여건에 맞게 느리더라도 꾸준히 달려갈 수 있는 나만의 페이스를 찾기 위해 노력해보자. 그리고, 앞을 향해 달리기 보다 위를 향해 달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느리더라도 우리의 지속가능한 달리기는 우리 인생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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