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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Jun 25. 2023

한국어를 탐험하는 일, 계속해보겠습니다.

『나와 당신의 한국어』 에필로그

오래전 겨울. 나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긴 여행을 떠났었다. 입사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회사는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꿈꾸던 일로 돈까지 벌 수 있었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정해진 점심시간에 모두 비슷한 식당에 가서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빠듯한 마감에 맞춰 일하는 일상, 쳇바퀴 돌듯 굴러가는 삶이 나를 힘들게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나는 그 원인을 내가 선택한 적 없이 태어나버린 나라, ‘한국’에서 찾았다. 이 나라에서 당연시되는 모든 삶의 방식이 내게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아주 먼 나라로 영영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떠난 지 일 년쯤 되자 나는 슬슬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한국이 내 생각보다 훨씬 살 만한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그토록 옥죄던 한국의 당연한 것들 이면에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가 당연히 누리고 있던 것들도 있었다. 나는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어디든 비자 없이 갈 수 있었지만 세상에는 그런 여권을 가진 사람이 소수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매일 당연히 누리는 수압 좋은 깨끗한 물과 24시간 가동되는 전기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란 걸, 아프면 예약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있고 밤늦도록 다녀도 안전한 길거리가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는 걸 세계 곳곳을 다니며 깨달았다. 한국을 벗어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내게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생각만으로도 삶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의 매 순간을 낯설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와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외국인 학생들의 시선을 통해 나도 그들처럼 하루하루 한국을 탐험하듯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때 나는 서른이었다. 이 분야의 어떤 경력도 없던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이 업계가 이미 포화상태인 점과 열악한 처우를 걱정하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몇몇 기관을 거쳐 지금 한 곳에서 10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인인 내게 당연한 모국어인 한국말을 외국인에게 당연하지 않게 가르쳐야 하는 일, 역사 정치 경제적으로 갈등 관계여도 서로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매개로 한 교실에서 어울려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내게는 여전히 즐거운 일이다. 특히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열정적으로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계속해서 즐겁게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10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해서, 이것을 기념하고 싶었다. 혼자 글을 쓰는 것보다 나와 동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료들과 함께하면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사람들을 모았고, 흔쾌히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준 18명의 선생님과 함께 지난 1년간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만남 없이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글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이 책은 단단히 완성되었다. 이 책을 펼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지난 1년간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 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함께해 주셔서 든든한 마음으로 이 책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한국어를 탐험하는 일, 우리 계속해 봅시다. 이 책으로 언제나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2023년 3월, 홍지 드림





책 『나와 당신의 한국어』는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한국어 탐험가'들이 전하는 '한국말과 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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