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Cool head)이 애정(warm heart)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며, 현장이며, 숲입니다. - 신영복 <담론>중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달리기를 하자'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문장이다. 달리기이건 수영이건 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주입식으로라도) 살아왔던 삶의 가치관과는 꽤나 멀게 느껴진다.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달리기를 해야하는 지 잠시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어보자.
(소설가의 일 中)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인생의 문장 중 하나가 "이번 시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다. 스포츠 용품회사의 신입사원 기타노 유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본 만화 『좋은 사람』에섬 만난 문장이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그게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사람인지라 나도 유지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하코네 역전마라톤에 참가한 대학 육상부 선수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달리기라면 나보다 더 잘 달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만화 주인공처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겠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스톱워치를 누르고 아무 방향으로나 달려간다.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걷는다. 줄곧 힘들면 줄곧 걷는다. 그렇게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십오 분이 지나면,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한다. 돌아올 때는 걷든 뛰든 내 마음대로 한다.
그리고 정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달렸다. 처음에는 거의 걸었으니까. 일단 십오 분만 밖에서 보낸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자 이전에 이를 악물고 달렸던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가 집들의 생김새며, 담 너머로 무성한 가지를 내민 나무며, 처음으로 들어가본 골목길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펼쳐진 풍경 같은 것들. 눈만 새로 뜬 게 아니라 귀와 코도 열렸다. 새소리도 들렸고, 흙냄새도 났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바닥과 흙바닥을 디디는 느낌은 제각각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을 폭풍이 몰아치거나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그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산을 들고 하릴없이 걸으며 빗방울을 머금은 꽃잎을 들여다보거나 두터운 외투를 입고 막 내린 눈에 발자국을 찍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는 그 어떤 날에도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됐다.
가장 느리게 달릴 때 매일 달릴 수 있고, 매일 달릴 때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달리기 이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마라톤잡지인 『러너스 월드』의 편집장이었떤 조 헨더슨이 주장한 LSD (오랫동안Long 느리게Slow 멀리까지Distance) 훈련법이다. 그는 PTA 방식의 달리기에 반대했다. PTA란 'Pain, Torture, Agony'. 즉 그 모든 심리적 육체적 괴로움과 고통에 맞서는 달리기,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 승리'로서의 달리기를 뜻한다. 인간 승리, 다 좋다. 일 년에 한 번 정도라면 이를 악물고라도 해보겠다. 하지만 고문당하기 선수도 아니고, 인간 승리를, 그 괴로운 일을 매일 할 수는 없지 않겠나? 매일 달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의문이다.
반면에 LSD는 오직 즐거움을 위해서 달리는 연습을 뜻한다. 조 헨더슨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LSD는 단순한 훈련법이 아니다. 그건 운동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달리기란 재미있다고 말할 것이다. 서로 경쟁해서 승리했을 때 뿐만 아니라 달리기의 과정 전체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라는 문장의 서술어인 '달리기' 대신에 '세상에서 가장 느린 OOO'으로 고쳐써도 무방할 듯 하다. 가장 느린 독서, 가장 느린 다이어트, 가장 느린 걷기, 가장 느린 악기 연주.... 그리고 가장 느린 글쓰기까지. 내가 하릴없이 남의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LSD훈련법'의 실천의 일환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판을 느리게 두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날은 긴 호흡의 단편을 끄적인다면 어떤 날은 단 몇 줄의 소회만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다양한 패턴의 글쓰기의 감정이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부채감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기실 '느리다'라는 단어가 가진 인식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과 위로감이 오히려 반복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실패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해 자칫 주저 앉으려고 하는 의지를 계속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최선을 다하지 말자. 아니 최선이라는 말을 생각하지 말자. 그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서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계속 느리게 무엇인가를 하다보면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OOO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