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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바람 Dec 19. 2023

사소한 괴로움이 덮치다!

모든 건 다 생각하기 나름~!

-프롤로그-

지난주 브런치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고 벌써 눈치를 채셨겠지만 왼쪽 손목 골절 부상을 입는 바람에 일상이 많이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물론 브런치 생각을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일상을 회복하면서도 오른손의 독수리 타법만으로는 타이핑도 어렵고 오타도 쏟아지는 통에 글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독자님과 작가님들께 송구한 마음에 변명만 한 소절 주절거려 봤습니다.ㅠㅠ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동료들과 탁구를 치고 있었다. 상대방과 꽤 빠른 속도로 랠리가 오가고 있었고 나름 스매싱과 드라이브를 주고받으며 한껏 흥이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치기 좋은 공이 떠오는 게 보였다. 스매싱을 치기에 참 맛있어 보이는 공이었다. 순간 무게중심을 왼쪽 다리로 옮기며 라켓을 잡은 오른쪽 손에 힘을 싣고 날아오를 준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두고 오른팔을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정말로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축이었던 왼발이 바닥에 미끄러지며 왼쪽 방향으로 몸이 공중에 떴고 이내 중력에 의해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뇌가 위기임을 직감할 새도 없이 왼팔을 뻗었고 육중한 이 몸뚱아리의 무게를 왼쪽 손목 하나로 지탱하며 떨어졌다…….


골절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뚱아리에 대한 창피함을 느끼기도 전에 손목으로 통증이 거세게 밀려왔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손목을 부여잡았다. 탁구장에 있던 동료들이 깜짝 놀라 몰려들었고 괜찮으냐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네왔지만 나는 그런 걱정보다는 뒤늦게 밀려온 창피함에 이내 일어섰다. 다행히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살펴본 의사는 바로 '골절이네요.'라며 손목 부분의 골절 부위를 가리켜 보였다. 그리곤 곧 깁스를 해주더니 4주 정도 걸릴 거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찌릿하고 밀려오던 손목의 통증은 팔꿈치부터 손바닥의 절반까지 점령한 석고 무더기에 서서히 묻혀 갔다.


고통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손목의 찌릿한 고통마저 가둬버린 깁스 덕에 불편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통증이 없는 건 다행이었다. 일상이 여러모로 불편해졌지만 다행히도 다른 데 다친 곳은 없어 정상적으로 출퇴근도 했다. 깁스를 한 지 둘째날 저녁, 골절의 고통은 새카맣게 잊은 채 테이블 위에 깁스 팔을 올려놓고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단단히 동여맨 깁스의 중간 부분에서 미세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가려움이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오른손이 왼팔을 향해, 정확히는 가려운 부분을 향해 뻗어 나아갔다. 그러나 이내 갈 곳 잃은 손이 되고 말았다. 석고와 붕대로 쌓은 성벽을 뚫고 들어갈 도리가 없었다. 가려움은 그런 지경에 처한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석고 안에 은신한 채 더욱더 살살 내 왼팔을 놀려 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오른손과 내 머리는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짜증 지수만 높여갔다. 골절의 고통은 온 데 간 데 없고 가려움의 고통이 나를 지배해 버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사소한 고통이 나를 완전히 덮쳐 지배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TV에서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가려움은 까맣게 잊고 TV에 몰입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프로그램이 다 끝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이후로도 그런 패턴은 계속되었다. 직장에서의 근무시간이나 식사시간, 재밌는 프로그램에 집중할 때에는 가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괜히 깁스한 팔에 신경이 가 있을 때에만 그 녀석은 자꾸 나를 괴롭히러 찾아왔다.


인식의 문제이다.

분명 신기한 일이었으나 이내 그 원인을 알아챘다. 인식의 문제였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 주는 자극에 너무 집착하는 순간 그 사소함이  거대한 고통이 되어 나를 덮쳐 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큰 고통은 잊은 채 사소한 괴로움에 내 정신과 영혼을 모두 빼앗겨 버린 것이었다. 그저 쇠젓가락 하나 들고 와서 손과 석고 사이의 틈으로 쑤셔 넣고 가려움이 신나게 놀고 있는 부분을 찾아 살살 달래주면 그만일 텐데, 그게 뭐라고 그리 짜증까지 났는지 어느 순간 실소가 입가에 머금어졌다.


세상사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더니…… 

손목 골절 탓에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깁스를 하게 되면서, 하룻밤 내내 이어진 손목의 고통이 있었고, 한 팔을 못 쓰게 되면서 여러 불편함이 생겼다. 날은 추운데 깁스한 팔에 옷이 잘 들아가지 않아 낑낑 대고, 어찌어찌 옷을 늘려가며 낑겨 넣었는데 깁스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왼손의 다섯 손가락은 그대로 추위로 노출되어 너무너무 시리고, 씻기 어려운 불편함이야 기본이고, 아침에 면도를 하려는데 면도 거품을 내지 못해 쩔쩔맸고, 생수병 뚜껑을 딸 수가 없어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식사 후 식판을 겨우 들고 퇴식구로 갔으나 식판 위 수저와 국그릇을 들 손이 없어 쩔쩔 매고, 그 좋아하는 드립 커피는 우여곡절 끝에 내렸으나 설거지를 할 수가 없어 동료에게 부탁해야 하고,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오롯이 타이핑을 해낼 수가 없어 글조차 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린 건 저녁시간마다 찾아온 그 사소한 가려움이었다니…! 그 사소한 괴로움을 그야말로 사소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렸으면 별다른 괴로움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세상사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는 말이 새삼 새로이 느껴졌다.




반대로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다르게도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사소한 행복들에 집중한다면 최소한 일상에 행복감이 가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을 다치고 오른손을 안 다친 것, 아마 본능적으로 막은 것이겠지만 머리나 허리를 다치지 않은 것, 그나마 땀샘이 폭발하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다쳐 가려움이 덜한 것, 그래서 이렇게 다시 멀쩡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주변에 선한 이들이 많아 나의 불편을 나눠주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소소한 행복이 되어 나의 이 불편한 일상을 행복감과 감사함으로 채워주고 있다.


이 글 하나 완성하는 데 며칠이 걸리면 어때?

이렇게 완성해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다행(多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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