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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8]대륙의 끝,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의 끝에 다다르다.

by 돌바람

볼더스 비치의 펭귄들을 아쉽게 남겨두고 오후 3시에 우리는 우버 택시를 타고 희망봉으로 출발했다. 어쩌면 남아공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 희망봉을 만난다는 사실은 이번 남아공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설레기도 했고 가장 기다려졌던 순간이었다. 두 대의 택시가 우리 일행을 나눠 태우고 한참을 달렸다. 희망봉까지 가는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아마도 고속도로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30여분이 지났을 무렵 앞에 검문소같은 것이 나타났고 기사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아마도 이 도로의 통행료이자 국가에서 지정한 보호구역을 들어가는 입장료가 포함된 돈인 듯 했다. 사전 조사에 없었던 일이라 버벅되긴 했지만 톨게이트에 쓰여있는 안내문을 보고 그런가보다 했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또 20~30분 여를 달려 케이프 포인트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진입하면서 택시 기사는 자동차 유리창을 모두 닫으라고 했다. 원숭이가 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유리창을 올리고 밖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꽤 많은 수의 원숭이들이 자동차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며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다. 가방 등을 잘 챙기고 내리려는데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한번 더 우리를 붙잡았다. 우버 영업이었다. 기다려줄테니 이따가 자기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냥 태워줘서 고맙다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며 그냥 기사와 빠이~를 선언하고 돌려 보냈다.

룩 아웃 포인트(Look out Point) 등대 전망대로 가는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넓은 주차장 한 쪽으로는 안내소와 카페가 있었고 바다를 끼고 능선을 따라 작은 길이 나 있는데 그곳을 향해 가면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중앙에 서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룩 아웃 포인트(Look out Point) 등대 전망대로 갈 수 있다. 길 오른쪽으로는 희망봉(Cape of good hope)로 가는 또 다른 길이 연결되어 있다. 우선 우리는 등대 전망대로 향했다. 희망봉은 전망대를 다녀온 후에 가볼 요량이었다. 우리를 먼저 맞이한 것은 거의 폭풍 수준에 이르는 세찬 바람이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대륙의 끝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생각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었다. 자료집을 준비하며 사전에 조사한 내용에도 바람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는데 그걸 너무 간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옛날 뱃사람들이 아마도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바람이 잦아지는 걸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이곳의 바람은 거의 폭풍 수준의 매우 빠르고 세찬 바람이었다.

희망봉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웨스턴케이프 주 남서안에 있는 곶으로 케이프타운 남쪽 48km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희망봉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최남서단(最南西端)이다. 최남단 지역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적도 이남 아프리카 해안의 남동풍이 희망봉에서부터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1488년 희망봉을 돌아 항해한 것은 포르투갈에 의한 극동 항로 개척에서 심리적으로,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남대서양의 그레이트 케이프들(great capes) 중 하나로서, 희망봉은 오랫동은 선원들에게 있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The Cape라고 불리었다. 희망봉은 범선(클리퍼)이 극동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할 때 이용하는 항해로(클리퍼 루트) 상의 중요한 이정표이다. 희망봉이라는 말은 또한 1652년 개설된 네덜란드 식민지 케이프 콜로니(Cape Colony)를 가리키기도 했으며,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the Union of South Africa)이 결성되기 직전에는 케이프 주(Cape Province)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이곳이 바로 희망봉이다~! 바다쪽으로 뻗은 곶(Cape)이 거센 파도를 받고 있다.


거센 바람을 뚫고 20여분을 오르는 동안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은 세찬 바람과 합작하여 사람의 정신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사실 거리로만 보면 1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정도였지만 주변 풍광과 이를 빛내주는 맑은 날씨에 자꾸만 걸음이 멈추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오른쪽으로 희망의 곶(Cape of good hope)이 보였다. 거센 바람만큼이나 몰아치는 성난 파도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렇게 파도는 새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걸어 가는 내내 각도를 조금씩 달리 하며 우리의 눈을 유혹하고 있었고 나무가 없어 시야가 트인 곳마다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각자 나름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특히나 선비님은 지그시 먼 곳을 바라보며 풍경에 어울리는 모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주었다.

선비님은 난간에 걸터 앉아 지긋하게 Cape of good hope를 내려다 보는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넓지 않은 오솔길을 걸어 등대를 향한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갈수록 오르쪽으로 보이는 시야는 점점 더 트여 시원하게 희망봉 풍경을 보여주었다. 특히 등대에 이르는 마지막 계단 부근에서는 풍경 포인트마다 작은 돌벽을 세워 군사 요새와 같은 모양을 갖춰 사람들을 유혹했고 군데군데 드러나는 바위에 올라서면 시원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일행들은 몇몇씩 모여 다니며 그런 포인트들마다 사진을 찍으며 한껏 이곳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 속에 드러나는 우리 일행들의 표정에서 희망봉이라는 이름이 주는 설렘과 뿌듯함이 고스란히 묻어 났다.

주변에 있 일행들을 끌어모아 등대 전망대에 오르는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다들 희망봉이라는 지명이 주는 설렘에 취해 있었다.

주차장에서 내려 20여분을 걸어 등대 전망대에 드디어 올랐다. 세찬 바람은 이곳에서 절정에 이른다. 모자를 잡고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 날아가 버리는 것은 물론이다. 등대를 끼고 돌아 앞으로 나서면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그 바다가 우리의 눈 앞에 펼쳐졌다. 오른쪽은 대서양, 왼쪽은 인도양이리라 싶었다. 그러나 두 바다는 물리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그저 그렇게 넓은 바다였고, 바다도 바람도 그저 사람들의 의식으로 그어놓은 그 구분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었다.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미묘하게 다를 뿐 전체적으로 푸르른 색이 마음을 시원하게도 평온하게도 만들어 주었다. 다만, 바람은 절대로 우릴 평온하게 두지 않았다. 이곳 전망대에는 이곳에서 세계의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가 서 있다. 이미 명물이 되어 많이 알려진 곳이다. 단단한 나무기둥에 단단한 철제 표지판이 단단하게 묶여 있다. 그런데 몇몇은 날아가고 없다. 바람에 부러지고 날아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바람이 세다. 한때 서울을 나타내는 표지도 있었으나 어느 바람에 언제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요 도시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 남아있는 것이 한두개밖에 없다.


시선을 돌려 왼쪽 바다를 살펴보니 머얼리 바다를 향해 뻗은 대륙의 끝자락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 희망봉과 언뜻 비슷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사실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인용글에서 나와 있듯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저기 보이는 방향으로 약 150km쯤 더 남쪽으로 내려온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이곳에서 그곳까지 보일리는 만무했지만 저 풍경들을 따라 조금더 멀리 가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이 풍경은 고요하고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옆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세찬 바람과는 대조적이었다.

등대 전망대의 좌측(동쪽) 풍경. 아스라이 멀어지는 대륙과 바다의 경계선이 평온하게 보인다.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면 멀리 희망봉과 그 줄기의 끝인 곶이 보인다. 세찬 바람과 함께 밀려드는 거센 파도가 곶의 끝 절벽에도, 그 옆으로 펼쳐진 백사장에도 하얀 포말을 그리며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육지로 올라서고 싶은 끝없는 욕망이라도 지닌 듯 파도는 하염없이 만들어지고 하염없이 부서지고를 반복하였다. 욕망의 크기가 큰 만큼 더 크게 부서지는 듯~ 등대 아래 가까운 곳으로는 벽돌로 쌓은 성벽같은 관람 포인트들이 요새처럼 서서 마치 그 파도들을 감시하듯 자리잡고 있었다.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이지만 현장에서의 느낌은 바다와의 전투를 준비하는 경건함과 비장함도 느껴지는 듯했다. 비장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사람을 날려보낼 만큼의 세찬 바람에 꼿꼿이 서서 버티면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대단한 그 무엇이었다. 대륙의 남단에서 저 먼 바다를 질주하는 그 옛날의 범선이 보일 듯한 느낌이 들었고, 희망봉이라는 이름이 주는 설렘이 가장 극대화되던 순간이었다.

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희망봉 풍경.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 전투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등대 전망대를 내려오며 그 여운을 각자 즐기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일행들과 다시 주차장 쪽으로 길을 잡고 내려왔다. 희망봉의 끝자락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있어 거기까지 갔다 와보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면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언가 주차장 쪽 분위기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숫자,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의 숫자가 아까와는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줄어 있었다. 심지어 물 한 병을 사려고 카페에 들어가려 했더니 영업이 끝났다며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우버 택시 앱을 켰더니 그 많던 우버 택시가 거의 다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한 두 대 남아있었는데 콜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예약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희망봉 아래 해변까지 갔다 올까 하는 사이에 우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콜을 해도 콜을 받는 택시가 없었다. 뒤늦게서야 우버 택시 기사들이 기다려주겠다며 영업을 계속 걸어왔던 것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저 그 지나칠 정도의 조심성 때문에 그들을 매몰차게 보내버렸던 것이었다. 이제 케이프타운 숙소까지 돌아갈 방법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차로 가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교통편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망연자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

되돌아갈 교통편이 없음을 알고 우리 일행은 순간 망연자실해졌다. 여행 중 가장 심각한 표정들을 했던 순간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현지인의 도움을 얻아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이미 사람의 숫자도 확연히 줄었거니와 그들도 대부분 여행자들이었다. 주차장 맞은 편에 있는 관리사무소(?)도 찾아가 보고 했었다. 그 순간 분주히 마감 준비를 하는 기념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총무님을 비롯한 감독님 등 몇몇이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인원이 10명이나 되어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기념품 가게 직원이 이리저리 연락을 해보더니 차를 불러줄 수 있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결국 승합차 한 대가 올 것이고 그 차를 몰고 오는 이는 '조지'라는 사람이니 확인하고 타라는 것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긴장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어 일행들은 주차장 주변 이곳저곳에 걸터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언제 그 승합차가 올지 모르니 희망봉 해변을 다녀오겠다는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되었고 주차장 주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의 일행 뒤에서 딴청을 피우며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는 비비 원숭이.

교통편이 사라져 멘붕이 온 그 순간부터 기다림의 시간까지 자칫 힘이 빠지고 무료해질 시간에 우리 일행을 긴장하게 만든 일은 또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면서부터 우리의 눈에 인상깊게 남았던 원숭이들이다. 이곳이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에 서식하는 비비원숭이들도 보호 대상으로 지정이되었고, 그들(?)은 이곳을 드나느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달려들어 먹을 것을 빼앗아 달아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가방털이를 하곤 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관리사무소와 기념품 가게를 오가던 중에 갑작스런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는데, 그 바람 때문에 모자가 날렸고 이걸 따라가던 열혈님을 본 원숭이 한 녀석이 갑자기 무슨 위협(?)을 느꼈는지 열혈님에게 달려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놀라 소리를 내자 녀석은 더 달려들더니 열혈님과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원숭이는 열혈님의 엉덩이를 한 대 때리고 도망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반전님이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이 녀석들이 낚아채서 달음박질을 하는 바람에 추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일행 말고 다른 여행자들을 노리는 일도 있었다. 여자분들끼리 여행을 온 듯했는데 이분들이 가방을 여는 순간 원숭이가 달려들어 그 가방을 가로채고 절벽 쪽 숲으로 달아나서 가방 속에 든 것들을 쏟아내고 물어뜯고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우리 멤버들도 쫓아가서 원숭이들을 달아나게 하고 그 여행객들의 여권과 지갑을 함께 찾아주는 일도 있었다.

원숭이가 들고 달아난 가방과 그 속의 물건들을 찾기 위해 우리 일행도 함께 수색(?)을 도왔다.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우버 택시기사가 원숭이 녀석들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정말 원숭이들은 순식간에 이런 저런 사건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덕분에 어쩌면 침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꺄르르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밝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사실 불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게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하여튼 조금은 밝아진 표정들을 되찾은 우리는 George가 도착할 때까지 희망봉의 남은 여운을 사진으로 남기며 즐기고 있었다.

다시 밝은 표정을 되찾은 우리는 케이프 포인트 간판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남기며 남은 여운을 만끽했다.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조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중간에 몇몇 차량이 오긴 했지만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태우는 차량들이었다. 우리 말고 또다른 낙오자(?)들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심지어 이곳의 직원들도 모두 떠난 후라 슬슬 고요함이 찾아오기 시작할 즈음, 하얀색 승합차가 주차장 입구 저쪽에서부터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리곤 한 사람이 차문을 열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조지였다. 주차장 한 구석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한 걸음에 그를 향해 다가섰고 뜨거운 함성으로 그를 맞이했다. 열혈님은 연신 "I love George~!!"를 외쳐 댔다. 한명씩 차량에 탑승을 하는데 우리 일행 말고도 두 명이 더 차에 탔다. 중국인 여자와 서양인 남자 커플이었다. 이들도 아마 우리와 같은 처지가 아닌가 했다. 이들은 기차로 여기까지 왔다가 우리와 함께 케이프타운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 일행과 이 커플 등 총 12명을 태운 승합차는 빠른 속도로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후 6시 2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드디어 우리는 희망봉 관광지구를 탈출(?)했다.

열렬한 환호와 함께 우리는 조지(George)를 환영했고 그는 유쾌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의 구세주 조지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알럽 조지를 외치며 격하게 환영하는 우리들만큼이나 조지도 매우 유쾌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고 시원한 농담을 해가며 즐거운 귀갓길(?)을 만들어 주었다. 돌아가는 길은 해안도로가 아닌 산길을 잡았다. 아마도 희망봉으로 이르는 전용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다녔던 도로가 아닐까 싶다. 중간에 톨게이트도 없었다. 한 20여분을 희망봉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말하며 웃고 떠들고, 도 우리와 합승한 커플들과 이 얘기 저 얘길르 하다보니 차창 밖으로 타조농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타조를 보며 환호를 하자 드라이버가 타조 구경을 시켜주려는 듯 차를 길가에 세워 주었다. 그 순간 미니버스 맨 뒤에서 날아오는 열혈님의 멘트. “알럽 조지~~!!” 승합차 안에 또한번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조지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타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지 케이프 타운의 워터프론트 지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젯밤 일몰을 보러 다녀온 배신자들(?)이 미안했는지 시그널 힐에 내려서 일몰을 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했다. 날씨는 어제만큼이나 좋아 예쁜 일몰 풍경이 오늘도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조지에게 우리를 거기로 데려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조지는 의외로(?) 거절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 어려움이 많다며 원래의 목적지인 워터프론트에 내려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자의 마음 아닌가... 결국 우리는 워터프론트에 내렸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안도감이 컸다. 어쩌면 아직도 거기서 발을 동동 구르며 원숭이와 전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 않나. 워터프론트의 모습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버스킹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노을빛이 어둠으로 가라앉으며 관람차의 야경은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워터프론트에서 쌀국수 등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왔다. 필요한 물품을 사러 몇 명은 Pick n Pay에 들렀다. 나도 미리 생각해 두었던 루이보스 차(남아공이 이 차의 원산지라고 한다)를 이곳에서 많이 구입했다.

워터프론트의 저녁 풍경은 여전했다. 버스커 공연도 계속 되었고 노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관람차가 밝게 빛났다.


밤 9시가 거의 다 된 시각. 개인적으로 장을 보고 온 나, 작가님, 반전님, 유쾌님이 숙소에 도착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마지막 밤 파티가 열렸다. 그동안 마셔보려고 사두었던 현지 맥주에, 오늘 산 와인, 첫날 담가둔 막걸리 등이 있어 풍성하게 파티가 열렸다. 따가운 햇빛에 그대로 돌아다닌 탓에 얼굴이 탔다. 열혈님이 준비해 온 마스크 팩을 하나씩 하고 술을 취향별로 한 잔씩 했다. 직진님이 첫날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담가둔 막걸리는 뽀얀 색을 빛내며 제법 막걸리다운 맛을 내었다. 아프리카에서 막걸리를 담가 마시게 될 줄이야~ 이날 들렀던 와이너리에서 구입한 와인도 마셔보았다. 알콜도수보다는 향긋한 포도향이 진하게 나는 맛이었다. 안주는 마트에서 구입한 이곳의 과일들과 과자 종류, 건어물 등으로 채웠다. 그러나 최고의 안주는 3일동안 있었던 각종 에피소드들이었다. 특히 이날 있었던 교통편 실종 사건과 원숭이 사건이 폭소를 이끌어내며 맛있는 안주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도저히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파티 분위기에 도사님이 내일 일찍 숙소 체크아웃 해야해니 11시에 모두 자리를 마무리하는 종례(?)를 하겠다고 담임 선생님 역할로 나섰는데 그렇게 쉽게 마무리될 파티가 아니었다. 결국 12시가 가까워져서야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프리카 산 막걸리(재료:한국산)를 나누는 술꾼 3인방(왼쪽), 이날 구입한 Groot Constantia 와인(오른쪽).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여행지 남아공에서의 여행을 마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3일.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첫 여행지로서 아프리카 본연의 찐한 모습을 볼 수는 없는 나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곳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잘 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갑작스런 만남보다 서서히 그 분위기에 물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아프리카라는 느낌보다는 유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이 곳은 분명 아프리카 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발생했던 유럽 이주민과 이곳 토착민 사이의 아픈 역사도 있었다. 그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종 차별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노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심장에 더 와닿기 때문이다.

열 명의 멤버가 각자 역할을 나누어 준비를 했고 우리끼리 이 여행을 꾸려가는 것이 힘들지만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여행의 첫 나라부터 몸소 느끼고 있었다. 폭풍우(?)를 뚫고 오른 테이블마운틴 등산의 고단하고 아찔했던 기억, 1월의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어서 다녔던 다크 투어, 여유를 느끼며 즐겼던 식물원 산책과 뒤이어 발생한 휴대폰 분실 소동, 땡여름 바위 위에서 놀던 펭귄과의 만남, 희망봉에서의 가슴 벅찬 감동에 이어 그 감동을 바사삭 부숴버릴 뻔 했던 교통편 실종 사건과 그 와중에 시끌벅적하게 만들어준 원숭이들과의 추격전 등 알차면서도 짜릿한 스릴이 있었던 여행지였다. 물론 우리끼리 선택하며 만든 일정이고 우리 스스로 꾸려갔던 3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자유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첫날 담가두었던 막걸리가 마지막 날 밤 적절히 익어 숙성되었듯 우리의 여행도 서서히 이곳 아프리카에 맞게 숙성되고 있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사막을 만나러 나미비아로 이동한다.

햇살에 빛나던 희망봉의 모습이 아직도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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