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나를 만드실 때, 무엇을 많이 넣어 주시고, 무엇을 적게 넣어 주셨을까요?'
어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신께서 자기에게는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다 주셨다는 어린이의 대답에 감탄을 하며 생각해보았다.
힘차게 달려들어 시작하는 열정은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밀고 나가는 힘 부족한 나. 아마도 신은 날 창조하실 때 '꾸준함'을 잊으셨던 것은 아닐지… 원하는 목표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죽기 살기로 매달려 열심히 하지만, 반대로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누구에게 보이는 일도 아니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이력서에 한 줄 보탬이라도 되는 일이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서일까? 그저 내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가꿔온 취미 하나 없는 게.
사실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꾸준함이 부족하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치고 나가는 힘! 내가 가진 그 장점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거기에 각종 과제물.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목표물을 정해줬고, 난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단거리 선수처럼 온힘을 다해 내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세 달 바짝 매달리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일들이 전부였다. 덕분에 '야무진 애, 똑 부러지는 애'라는 소리도 꽤 들었고,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더랬다.
하나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보니 더 이상 삶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렇게 한 두 방에 쉽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직장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다지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괜찮은 동료라는 평판을 얻는 일은 장기전 중의 장기전. 진지한 연애와 행복한 결혼 생활도 한 두 달 바짝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하늘이 샛노래지도록 힘을 주면 어찌 되었든 24시간 내에 끝나는 출산과 달리, 그 핏덩이를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면 적어도 20년은 달려야하는 법.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결승선은 잘 보이지 않았고, 노력에 대한 보상은 자판기처럼 바로 뚝딱뚝딱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계획이 불가능한 생활(남편 직장을 따라 지난 10년간 4개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을 오래 하면서 내 마음은 중심 잃은 부표마냥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불안함에 뭐라도 해보자며 이것저것 덤벼들어 열심히 해 봤지만,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 성취감에 이내 지치고 좌절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꾸준함'은 마음 곳간에서 야금야금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는 불안함이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짜증과 우울이라는 이자까지 붙어서.
긴 인생을 충만하게 살려면 장거리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빨리가 아니라 꾸준히 나아가는 지구력이 중요하다는 사실.
내게 부족한 것도 바로 그것이라는 마음 찌릿한 사실도.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수많은 낮밤 끝에 인정하게 되었다.
꾸준함을 키우는 데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기에 또 달려들었다. 가끔 내킬 때나 쓰던 글은 즐거웠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쓰려니 역시나 쉽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을 한 건지. 글쓰기를 통해 꾸준함을 기를 수 있는 게 아니라, 꾸준함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더 맞지 않을까? 한 문장 뽑아내는 데 몇십 분, 그래 놓고는 싹 지우고 다시 시작.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시간만 허비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머리를 쥐어짜며 겨우 겨우 글 한 편을 완성해도 내게 남는 건 한 입에 털으면 끝나는 밤톨만 한 자기만족뿐. 봐주는 이도 없는 글을 얼마나, 언제까지, 어떻게 써야 할지 까마득했다. 뿌연 안갯속에서라도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계속 쓰면 내 안에서 꾸준함이 자라기는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만할까?
<편집부에서 온 편지>
-헤르만 헤세-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맡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흔들리는 나를 위로한 것은 이 시를 쓴 쉰몇 살의 헤르만 헤세. 거듭된 거절 속에서도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램프에게 읽어주는 그를 상상해본다. 낙담하되 멈추지 않았고, 좌절스럽더라도 하루하루 묵묵히 버티던 시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에게도 질기도록 고되고 외로운 나날이 있었다니. 말없이 보내주는 빛 만으로 족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의 말은 나에게도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나도 그냥 써야겠다. 혼자만을 위한 글을 써서 작은 화분에게도 읽어주고, 따뜻한 찻잔에도 읽어줘야지. 그걸로도 괜찮지 않냐며, 그만두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아가고 있는 거 아니냐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그렇게 뚜벅뚜벅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나도 어디에라도 닿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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