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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탁구대회를 다녀와서

이런 날 저런 날

by 머피



토요일 아침 5시 50분에 깼다.



일어나 씻고 집 나서는 시각 6시 5분. 단체전 일행 만난 시각 6시 20분.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밀양 배드민턴체육관에 도착한 시각 7시 30분. 돗자리에 가방 내려두고 무릎보호대 차고 라켓과 수건을 챙겨 해당 테이블에 도착한 시각 7시 55분.


예선시작 5분 전.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있는데 옆테이블에 혼자 있던 분이 와서 몸 풀자고 하여 랠리 시작. 내심 계속 안 왔으면 했는데 8시가 되니 세 명 모두 도착. 일단 젠장, 실망한 마음을 다잡고 오더지 순서대로 김해 김선수와 인사하고 게임 시작. 김해 김선수는 넉 달 전 오픈대회에서 만나 내가 3대 0으로 깨진 이력이 있다. 덕분에 예탈 했었다. 슬펐다. 그런 김선수는 게임시작 때부터 입가에 미소가 번져났다. 생글생글 웃는 상이다. 원래 웃는 상인가? 헌데 이빨이 보이도록 웃는다. 왜 저리 웃을까? 이건 내 자격지심일까. 아주 여유롭게 보인다. 먼젓번 나와의 일전을 기억하겠지? 아주 쉽게 보겠지? 그때 예탈시켰으니 오늘도 예탈 시켜주리라 생각하겠지? 넉 달 동안 변한 게 있을까? 크게 없다. 똑같이 탁구치고 똑같이 운동하고. 세상에 패한 상대에게 또다시 패한다는 거만큼 슬픈 게 있을까. 공 줍다가 설핏 심판 보는 분 라켓을 봤는데 롱핌플이다. 대략 난감. 난 핌플에 약하다. 큰일이다. 지금 상대는 한번 진 상대고 다음 상대는 핌플이라니. 예탈의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김 선수의 호쾌한 드라이브가 멋지게 꽂힌다. 그래 이런 거였지. 백 쪽에서 낮은 자세 큰 동작으로 퍼올리는 민볼 드라이브. 공은 크고 힘차게 날아와 나의 백 라인 모서리에 꽂히고 바운드가 높게 멀리 날아가는 드라이브. 싫다. 너무 싫어. 수비하기도 힘들고 막기가 벅차. 1세트 9대 6으로 끌려가는 순간. 내가 친 공이 오른쪽 라인 끝에 맞고 굴절돼 떨어졌다. 공을 주워온 김선수는 에지가 아니라는 표정. 내가 에지라고 하니 아니라고 했다. 심판은 못 봤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웃이라고 인정해 버렸다. 하다못해 노플레이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강자를 상대로 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에지나 네트가 유난히 많이 나와서 실랑이가 벌어질 조짐만 보여도 나는 전부 양보하고 상대편 쪽으로 인정했다. 어차피 탁구는 멘털게임. 마음을 비워야 이긴다. 이기려고 하면 지고 지려고 비우면 이긴다. 갑자기 놀라운 반전. 이때부터였다. 10대 10 듀스를 만들고 역전했다. 비결은 상회전 서브였다. 드라이브가 좋은 김선수에게 커트서브를 주지 않았다. 상회전 서브를 주니 김선수가 흔들렸다. 어쩌다 보니 3대 0으로 게임 끝. 나는 넉 달 전 당한 스코어 그대로 돌려주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정말 기뻤다.


심판석에 있던 창원 어르신 강 선수.


말 그대로 어르신이다. 뒷면은 롱핌플. 정말 집중하고 집중하는데 너무 많이 네트가 나왔고 네트 에지로 실점을 많이 했다. 이기다가 잡히고 이기다가 잡히고 결국 3대 2로 패했다. 뒤에 벤치 쪽에서 강 선수의 지인들이 응원하는데 모두 어르신들이다. 어쩌면 그들의 응원소리에 기죽어서 졌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큰 점수차로 이기다가도 강 선수가 득점할 때마다 그들은 크게 기뻐하며 소리 질렀다. 그 소리에 냉정을 잃고 과감히 공격하지 못한 탓도 크다. 테이블 가까이 붙어서 살짝살짝 랠리해야 하는데 그걸 이기겠다고 냅다 때리고만 있었으니 어찌 실수를 않겠는가 싶다. 게임 후 나는 일어나는 김해 김선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심판석에 앉았다. 내가 창원 강선수를 이겨줬으면 김선수는 강선수만 꺾으면 예선통과인데, 졌으니 복잡하게 되었다.


김선수가 1세트를 따고 2세트에서 강선수와 에지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선수가 때린 공이 에지였는데 강선수가 못 봤다고 했다. 뒤에서 강선수의 지인들이 모두 아웃이라고 외쳤다. 나는 에지인지 아웃인지 정확히 보지 못했다. 심판석 위 너무 높다란 점수판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두 분 얼굴을 보며 노플레이 하자고 했다. 김선수가 자신이 선 각도에서는 테이블 사이드에 맞을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대승적으로 노플레이에 동의하였다. 그때부터였다. 김선수의 멘털이 흔들렸고 성의 없는 플레이가 나왔다. 2세트에서 11대 1로 김선수가 패했다. 나는 김선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제 3대 1로 이겨도 서로 동률이라고. 그러나 게임은 3대 2 김선수가 승. 김선수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강선수에게 졌기 때문에 본인이 예탈이라고. 미안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오더지에 나는 3, 2가 적혔고 강선수도 3, 2가 적혔다. 강선수가 오더지를 작성하여 제출했는데 잠시 후 안내방송이 나왔다. 강선수와 김선수 그리고 나를 호출했다. 본부석에 가니 순위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내가 1위, 강선수가 2위라고 정정되었다. 강선수가 자신이 1위라고 말하였으나 나와의 승부가 5세트까지 갔기에 세트스코어로 내가 1위였다. 강선수 왈, 내가 3대 0으로 이긴 거 아니었어?라고 했는데 곁에 있던 그의 어르신 지인들이 5세트까지 간 게 맞다고 증언해 주었다. 엉? 그런가? 하는 강선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떨뜨름하면서도 모호한 미소. 본부석 사람의 이어지는 말. 예탈 한 김선수는 괜히 불렀네, 안 와도 되는데 라고 했다.


본선 1회전은 부전승.


본선 2회전.

창원의 박 선수.

이 선수에게도 작년에 예선에서 패해 예탈 했었다. 예탈은 늘 쓰라린 기억으로 남는다. 박선수는 서브가 좋았다. 횡회전과 상회전 서브를 커트 서브모션으로 넣었다. 리시브가 조금이라도 뜨면 그대로 스매싱이나 제끼는 드라이브를 때렸다. 말 그대로 한방 스타일. 나는 두 세트를 먼저 이기다가 두 세트를 잡혀 5세트 박빙에서 겨우겨우 승리했다. 게임이 끝나고 박선수가 축하한다며 인사해 주었다. 역시 그는 먼젓번 예선을 기억하지 못했다. 진 자만 기억하고 이긴 자는 기억 못 하는 더러운 승부의 현실.


본선 3회전.

창원의 강선수.

나는 2대 0으로 끌려가다 따라잡아 5세트 8대 7로 앞서게 되었다. 강선수가 때린 공이 네트에 박혀 아웃되었는데 본인의 라켓을 보여주며 땀이 묻었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심판을 잠시 보다가 "인정~"이라고 크게 외쳤다. 강선수가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래서일까. 8대 10으로 역전되고 나는 게임포인트까지 쫓기게 되었다. 그러다 꾸역꾸역 듀스로 만들고 12대 10으로 승리.


본선 4회전.

진주의 허선수.

우리는 같은 팀, 아침에 같은 차로 온 동료. 나는 게임 전 승부를 양보할까 하다가 1세트 후 양보했다. 니가 토너먼트에 올라가,라고 말하니 허선수가 게임이 재미있다며 계속 승부하자고 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쫙 비운 상태. 평소 구장에서는 승률이 반반이었는데 어쩐 일로 내가 3대 1로 승.


본선 5회전.

김해의 펜홀더 이선수.

과거에 두 번 만났다. 두 번 다 3대 2 스코어로 이겼었다.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서브가 까다로운 스타일. 입상을 코앞에 두고 우리는 승부했다. 1세트 승, 스코어는 내가 앞서는데 내용에서 밀렸다. 2세트 패, 앞서다가 뒤집혔다. 3, 4세트는 옥신각신했다. 밖에 비가 흩날리기 시작했고 많은 인파의 땀과 호흡 때문에 습도가 높았다. 평범한 쇼트가 네트에 걸렸고 드라이브가 미끄러졌다. 겨우겨우 승, 나는 크게 숙여 인사했고 이 선수도 내 손을 맞잡아주며 축하한다고 잘 쳤다고 인사해 주었다. 감사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상했구나. 드디어 개인전에서 마침내 입상했구나. 6부가 되고 나서 공식 오픈대회 개인전에서 입상하기는 처음이다. 그간 1년 8개월은 지난 거 같다. 암흑기 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이대로도 좋았다. 개인전 입상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쾌거.


본선 6회전.

김해의 김선수.

6회전은 우리 단체전이 시작된 터라 뒤로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시작되었다. 5회전 끝나고 두어 시간은 지난 거 같았다. 그 사이 우리 구장 사람들이 톡이나 전화로 궁금하다며 어찌 됐냐고 소식을 알려달라 아우성이었다. 경남탁구협회 홈페이지에 내가 4강에 오르고 한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서다. 단체전 1회전에서 우리 팀은 복식까지 간 끝에 겨우 앞서고 있는데 이러다 단체전 2회전까지 영향을 줄까 싶어 얼른 끝내고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준결승을 치르러 갔다. 그전에 토너먼트 저쪽 라인의 선수가 나를 찾더니, 개인전 공동우승으로 하자고 간곡히 부탁해 왔다. 그래서 난 얼마든지 그러라 답했고 마음을 싹 비운 상태로 게임을 치렀다. 김 선수는 서브가 세다고 들었다. 게임에 들어가려 하니 그전에 김선수와 일전을 치른 진주 코치님이 귀띔해 주었다. 그 조언을 듣고 무슨 서브가 올까 두려워 1세트를 그냥 헌납하다시피 졌다. 2세트도 지고 이대로 삼빵 당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안 왔으면 하는데 진주 선수들과 우리 팀 사람들이 몰려와 응원하기 시작했다. 보는 눈이 많다. 그런데 삼대 영으로 깨지면? 나는 사력을 다해 한 세트 만회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정신 차려보니 3대 1로 패. 나의 개인전 성적은 3위로 확정되었다. 그래도 응원하던 분들이 잘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다행히 단체전 1회전은 통과. 나는 의자에 쓰러져있다가 정신 차려 상장과 상품을 양손에 올려 쥐고 기념촬영을 했다.




단체전 1회전은 부전승


단체전 2회전.

양산 마운틴. 양산에서도 소문난 강팀이다. 이 팀의 최선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들으니, 작정하고 꾸려진 팀이라 했다. 고수들로만 짜였다고 한다. 나는 2번으로 나가 5부 롱핌플 선수에게 3대 0으로 패했다. 그러나 우리 팀 1, 4번 선수가 승리해 복식까지 가 통과~


단체전 3회전.

김해 이응룡클럽. 4부만 네 명. 이게 말이 돼? 작년까지는 2부 단체전에 4부는 한 명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규정이 바뀌어 숫자에 제한이 없어졌다. 기다렸다는 듯 4부만 네 명인 팀이라니. 게다가 이름도 유명한 이응룡클럽. 겁났다. 정말 승리에 대한 기대는 1도 없었다. 나는 또 롱핌플 선수를 만났다. 아 이놈의 뽕밭. 롱 선수는 라켓 핸들링으로 돌려가며 교란작전을 썼다. 핌플 면에 공을 맞추는지 평면에 맞추는지 헤아려야 했다. 긴 랠리 끝에 한점, 한점 모아서 승리했다. 3대 0 승. 우리 팀은 정선수와 나, 허선수가 승리해 복식 없이 승리했다.


단체전 4회전.

밀양 미리벌클럽. 밀양 홈팀이다. 선수 얼굴만 봐도 강하게 생겼다. 홈팀답게 주변에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4부 펜홀더 신선수를 만났다. 이 팀은 4부가 한 명이고 5부 둘, 6부 1명이다. 그중 나만 딱 4부를 만난 거다. 초반 스코어 5대 0으로 앞서는데 신선수의 드라이브 한 방을 맞으니, 도저히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내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한 점 딸 때마다 몇 없는 진주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응원해 준다. 저들은 모른다. 저 선수가 얼마나 센지. 드라이브가 양쪽 끝 모서리에 박히는데 따라갈 수가 없다. 그저 뒤돌아 공 주으러 다녀올 뿐. 1세트를 이기고 2세트는 잡히고 3세트도 잡혔다. 그러다 4세트를 잡고 5세트가 되었다. 주변을 보니 오른쪽 우리 팀 정선수와 왼쪽 허선수도 5세트에 접어들었다. 세 테이블이 나란히 5세트 접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 홈팀 밀양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엄청났다. 그에 반해 십여 명 남짓 진주사람들은 질세라 있는 힘껏 큰 소리로 힘내라 응원하며 맞섰다. 나는 끌려갔다. 끌려가다 10대 10 듀스가 되고, 상대 신선수도 양쪽 테이블을 번갈아 보며 테이블에서 자주 벗어났다. 내가 서브 넣으려 하면 손들어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내 심정도 마찬가지. 정말 간절히 승리하고 싶지만 버겁고 버거운 게임. 내가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5세트 종반이 되었는데도 확실히 넣을만한 서브가 떠오르지 않는 걸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서브를 넣을까. 백서브 커트를 넣고 돌아오는 커트볼을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로 꽂았다. 딱 이 장면 하나만 떠오른다. 듀스에서 우리는 결코 한방으로 때리지 못하고 슬며시 최선을 다해 상대 테이블로 연결, 연결만 하며 실수하지 않고 실수하기만을 바랐다. 제발 실수해 달라. 나는 절대 실수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과감해지지 못해서 그저 넘길 뿐. 이런 플레이가 오래도록 흐르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대로는 안돼. 임팩트다! 하면서 연결 중 아주 살짝 임팩트를 넣어 쇼트를 보내고 때렸다. 그것이 주효. 12대 10으로 기적 같은 승리. 나는 전신에 짜릿한 전류를 느끼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두 번이나 날렸다. 그리고 응원단과 일제히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달려가 상대 신선수와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응원단 쪽으로 달려가 두 번째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환호의 아우성에 나보다 조금 먼저 승리한 허선수가 동참했고 아직 게임 중인 정선수에게도 기운이 날아가라 소리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정선수도 기나긴 듀스 끝에 승리했고 우리 진주의 초보선수 넷은 얼싸안고 제자리를 뛰었다. 4강 입상. 3위 확보. 대단한 순간이었다. 2부 단체전은 4~6부가 참여하는데 우리처럼 6부만 넷인 팀은 없었다. 거기다 우리는 6부에서도 크게 두각을 내지 못하던 차에 합심하여 이뤄낸 성과였다.


이후 결승에서는 깨끗이 패하고 3위라는 성적이 확정되었다. 나는 개인전 3위, 단체적 3위로 입상 2관왕이 되었다. 승점도 개인전에서 5.4 단체전에서 1.2 합계 6.6이 되었다. 일단 승점이 있는 남자가 되었다. 거기다 3.4점만 따면 승급이다. 우리 구장 6부 중에서도 승점 1위를 달리게 되었다. 놀라웠다. 뭔가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왜케 좋은 결과가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서브 동작을 단순화하고 단순한 모션에서 구질 변화를 주었다. 리시브를 무조건 돌아서지 않고 가운데서 좀 더 편하게 받으려고 했다. 돌아서면 상대 회전을 잘 볼 수도 있지만 역으로 탈 수도 있다. 빠른 공 스피드에 밀리기 때문이다. 가운데서 돌아서지 않으면 빠른 공 대처가 가능하다. 다만 선제 잡기가 불리해진다.


대회가 끝나고 벌써 보름 정도가 지났다. 대회 직후 써놓은 기록을 바탕 삼아 오늘에야 마무리한다. 아직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본다. 그러면 뭐가 나아졌을까? 어떤 이유로 결과가 나왔나? 그저 하나하나 기록하자면,


자세를 낮추려 매 순간마다 상기한다는 점. 과감하게 걸어야 하는 공은 망설이지 않고 임팩트 넣어 때린다는 점. 끝까지 포기 않고 따라가 받아내는 점. 꾸역승을 반복하니 자신감이 상승한다는 점. 못하는 초보에서 잘하는 초보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점. 달라진 위상에 스윙이 좀 더 호쾌해졌다는 점. 호쾌한 플레이에 게임이 재미있어졌다는 점. 뭐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보름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타 구장 사람들도 만날 때면 축하해 주었다. 내가 치는 탁구, 격변의 시기, 임하는 자세 모든 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다행이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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