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에너지와 설렘을 회복할 세 가지 생각들
오랜 지인과 몇 년 만에 한국 온 것을 핑계 삼아 연락해 보니 참 많은 삶의 굴곡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도 쓰고 블로그도 쓰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힘을 주고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형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글을 쓰고 나누는 것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 저편에서 형은 몇 년 전에 하나의 글을 썼고 난 몇 년 후에 그 글을 읽었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형과 내가 소통했달까. 형과 내가 커넥 되었고, 두 영혼이 교감했고 그 결과 난 독자로서 새 힘을 얻고 마음 한편이 더 자라났다. 그래 뭐가 됐든 글을 좀 더 써봐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냥 일상의 정리나 생각의 단편이라도.
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읽고 있다. 자기 개발서나 마음치유 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읽게 되지 않지만 이 책은 식상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게 인사이트를 주는 부분이 있어서 좋다. 그중에서도 아래 포인트가 좋았다.
"백 살 시대에 우리 삶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하자면 마흔은 아직 오전 10시도 되기 전이다. 과거의 마흔과 지금의 마흔은 전혀 다르다. 사회 진출도 늦어졌고 평균 수명도 길어졌다. 마흔에 뭔가를 이루지 못해서 조급하다면 안심하시라 - 그건 너무나 당연하고 마흔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시기가 아니라 기반을 다지는 시기라는 걸. 오십 대 이후 은퇴를 생각하며 그전에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구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마흔에 기반을 닦고 50대에 거기에 기둥을 더해 60대에 활짝 꽃 피우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 마흔을 잘 살면 아이들도 독립하고 마음도 훨씬 더 성숙하고 덜 분주한 60대에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래, 사십 대에 커리어도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완성형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돈도 은퇴할 만큼 벌어놔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다 보면 답도 안 나오고 마음만 계속 분주해지는 것 같다. 김미경 선생님 말처럼 스스로에게 다시 주문을 걸어본다. 나는 아직 많이 젊고 내 인생은 여전히 오전이라고. 오후에 신나게 일하고 달려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걸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라고.
사십 대의 주변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꽤나 보편적으로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삶이 별로 재미가 없고 설레는 것도 없다고. 가장 재밌는 건 넷플릭스 정도? 연애, 결혼, 취업, 출산과 같은 다양한 변화와 도전을 맞닥뜨린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지루할 수 있는 일상이 내 삶을 가득 채운, 일도 가정도 사랑도 육아도 취미활동조차도 권태기가 찾아오는. 사업이나 이런 쪽으로 에너지를 엄청 내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경우의 수로 본다면 충분히 그러지 못한 자신을 주위사람과 비교하면서, 젊었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면서, 큰 설렘 없이 수동적으로 닥친 의무들을 하나씩 Todo 리스트에서 지워가며 사는 삶이 더 많아 보였다. 남의 이야기할 것도 없다. 나 또한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정신없이 일상에 치이다가 핸드폰 소셜미디어나 넷플릭스로 머리를 식히고 멍하게 만들며 살고 있으니까.
사업이 너무 잘되면 좋겠고 돈도 많이 벌리면 좋겠고 내 삶과 내 가족에 늘 승리와 성공, 성취만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이 어찌 그리 만만할까. 그럼 나와 우리의 사십 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이 지치기 쉽고 권태롭기 쉬운 일상에서 설렘을 유지하며 에너지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MBA 신입생 환영회를 다녀왔다.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접고 MBA로 새로운 도전을 하러 나가는 후배들, 그 젊은 후배들의 꿈과 패기와 삶을 접하니 마음이 많이 뭉클했다. 각자 삶의 이야기도 너무나 도전이 되고 울림이 있고. 아 맞아 - 나도 이렇게 패기 있게 내 삶을 이야기하며 도움도 구하고 도전하던 시기가 있었지...
교회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면서도 같은 걸 느낀다. 어떤 친구는 래퍼를 꿈꾸며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있다. 어떤 친구는 미국 디자인 스쿨 진학을 준비하면서 본인의 열정으로 인스타그램/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각자 저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꿈꾸면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그냥 보는 것 자체로 즐겁다. 이들의 삶에서 뻗어 나오는 에너지가 상쾌하고 신선하고 재밌고 즐겁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나마 멘토링/코칭 같은 것을 하는 그룹도 있다. 그들이 얼마나 나를 기다릴지 모르지만 난 기다린다 - 퇴근하고 애재우고 지쳐서 컴퓨터를 키지만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으로 잠못이룰때가 많다. 무엇엔가에 절실한 젊은 친구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코칭해 가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돕고 보는 것. 그건 나이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큰 특권이고 삶에 에너지와 활력을 주는 비타민 같은 일이다.
몇 년 전부터 기업의 대표직을 하는 형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형이 의외의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 일만 하고 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일과 삶을 구분하면서도 기업 대표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형이 진짜 삶을 잘 누리며 충실히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난 영화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시간만 되면 한편씩 영화 봐. 늦게 일어나는 것 좋아해서 늘 늦게 일어나고. 주말엔 그리고 일 안 해. 나이 들면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꼭 나 자신한테 챙겨주며 살고 있어. 남 눈치도 안 보고. 그러니까 이래저래 삶의 즐거움을 더 챙길 수도 있고 누릴 수 있는 것 같더라고"
그러고 보면 내게도 이런 것들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능하면 반신욕 하며 성경을 읽거나, 운동하기. 금요일밤을 너무나 기다리게 만드는 팬텀싱어 챙겨보기. 한 번씩 즐기는 넷플릭스 쇼와, 갈수록 재밌어지는 소설 읽기. 한 번씩 내게 도움요청 오는 사람들 만나서 성심성의껏 도움주기. 지인들과 나누는 소소한 차 한잔/밥 한 끼/커피 한잔. 아이들과 아내와의 시간. 이런 것들.
갈수록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짐을 씌우고 굴레를 씌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정도는 이뤄야지. 적어도 누구 만났을 때 이런 모습은 보여줘야지. 적어도 내가 글 쓸 때는 이 정도 글은 써야지. 이런 생각들이 많아지니 몸도 마음도 삶도 무거워진다. 일상의 사소함도 즐기지 못하고 설렘이 되지 못한다. 봄철의 좋은 날씨와 늘 당연하게 접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이 다시 설렘이 될 수 있게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일상의 기쁨을 만끽해 봐야겠다.
젊었을 때는 도전과 실패가 무섭지 않았다. 뭔가를 만들어가고 부딪히기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글을 하나 써도 졸작이 될까 두렵고, 새로운 일을 해도 내공이 없는 게 들통날까 봐 망설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점점 더 주저하게 되고 악순환으로 가기도 한다.
커리어에서 몰입해서 만들어가면서 그게 돈도 되고 커리어도 당장 성장시키면 제일 좋겠지만, 꼭 그 길만이 답은 아니리라. 주위에 보면 골프에 미치는 사람도 있고, 목수나 인테리어 일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사진에 엄청 몰입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무어든 어떠리. 내 마음을 쏟고 거기에 몰입하면서 만들어가고 성장해 가면 그것 자체로 삶의 활력과 설렘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난 무엇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취미도 아니고, 골프나 새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기도 그렇고. 지금으로선 이렇게 읽고 쓰면서 생각을 더 나누고 교감하는 사람과 영역을 키워나가 보고 싶다. 창작하고 사색하며 교감하는 활동에 더 몰입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