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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Jan 17. 2020

블랙독이라서 싫다고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여섯 번째 만남 : 강혜영 님(上)

"맞벌이라 바빠서 아이 하나 돌보기도 힘든데 어떻게 하려고? 동물도 아이 키우는 거랑 마찬가지야. 죽을 때까지 평생 케어하고 책임져야 되는데 결국 누나가 다 키워야 된다니까!"


그가 반려견을 입양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제일 말렸던 사람은 바로 수의사인 남동생이었다. 잘 알기 때문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대였다.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 없었던 건 그 말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을 위한 조언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변의 상황들도 그랬다. 치과 의사로서나 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기에도 분주했다. 아직 어린 아들은 그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했고, 비염이 있는 남편도 반려견 입양을 반대했다.

가족의 반대와 현실적인 어려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지금 당장 반려견을 입양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일단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가족 모두가 찬성할 때까지 반려견 입양을 보류했다.


오늘 만나실 분은,
수원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강혜영 님입니다. 일하는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인 그는 반려견의 보호자까지 1인 4역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

시간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육아에 대한 부담이 한결 줄어서 예전만큼 많은 품이 들지는 않았다. 그즈음 되니 아들도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문득 이제는 반려동물을 키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조촐하게 세 식구가 가족회의를 했다. 아들이 좋아해서인지 이번엔 남편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비염을 우려해 털이 잘 안 빠진다고 알려져 있는 ‘푸들’을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개를 키워본 적이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입양하기에 앞서서 관련 책들을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마치 출산 전에 육아 공부를 하듯이. 그렇게 반려견의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입양을 위해 알아보던 중, 그는 개인 활동가가 인터넷에 올린 입양 홍보 게시물을 통해 까미를 만나게 되었다.



추정 연령 4살의 블랙 푸들 '까미'는 보호소 내 안락사 1순위였다.
털 빠짐이 적은 편이라 실내견으로 꾸준한 인기가 있는 품종견이었지만, 검은색 푸들을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검은색 털을 갖고 태어났을 뿐인데…….
이를 딱하게 여긴 개인 활동가의 도움으로 안락사 직전에 목숨을 건졌지만 '사진빨'이 잘 받지 않는 탓에 보호소 밖을 나와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쩌면 까미는 보호소 밖을 나온 뒤에도 세상이 만들어놓은 '블랙독 증후군'이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까미의 사연을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블랙독 증후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만큼 검은색 유기견을 입양하려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혹시 내 앞에 앉아있는 그 또한 블랙독 증후군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까미를 입양하기로 한 이유를 묻자 그는 1초의 공백도 없이 답했다.


흰색이나 갈색 개들은 제가 아니어도
데려갈 사람이 많을 테니까.



“사람들이 검은 개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더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어요. 흰색이나 갈색 개들은 제가 아니어도 데려갈 사람이 많을 테니까. 산책 다닐 때도 보면 흰 개가 정말 많더라고요.  어쩌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봐주면 검은 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좀 아쉬워요.”


기대 이상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블랙독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되었던 안락사 1순위의 블랙 푸들 까미는, 이렇게 똑같은 이유로 그에게 입양되었다.



입양과 동시에 중성화 수술을 하고 정식으로 반려동물등록 인식 칩까지 넣은 까미는 집에 오자마자 똑똑하게 배변도 잘 가리고 산책도 잘했다.


하지만 입양한 후 초기에는 힘든 점도 많았다. 식탐이 너무 많아서 사람 음식을 먹어치우는가 하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문제였다.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집에 방문하면 수업하는 내내 계속 짖다가 선생님이 나가면 그제야 멈췄다.


수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아파트에 사는 이웃집에 피해를 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훈련사를 초빙해 초인종 훈련, 분리불안 훈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훈련은 같이 사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거라서 그 당시에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환경변화를 겪다 보면 개들도 스트레스받으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한 거랑 분리불안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유기견이 아닌 어떤 강아지도 생길 수 있는 문제인 거 같아요.”


까미의 문제행동들은 시간이 지나고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면서 점차 호전되었다. 그런데 입양 전에 그가 걱정했던 건 이러한 문제행동이나 반려견을 케어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가족회의를 해서 결정한 거긴 하지만 처음에는 남편이 입양을 반대했었으니까 내심 걱정이 되더라고요. 과연 가족으로서 얼마나 잘 받아들여줄까 하는…. 근데 막상 까미를 데려오고 나니까 오히려 남편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남편의 태도 변화가 흡족한 듯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까미가 두발로 서서 씩 웃을 때가 있는데, 외출했다가 들어왔을 때나 산책 가자고 할 때가 제일 귀여워요. 쓰다듬다 보면 배를 까면서 만져달라고 하고 씩 웃거든요. 그럴 때도 정말 사랑스럽고요. 똑똑하기도 하고요.”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자랑을 듣다 보니 그가 까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자식 자랑에는 끝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사랑스러운 '내 식구'가 되었으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커 보이게 마련이겠지만, 그는 바로 앞에서 까미를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덧붙였다.


“검은 아이는 이렇게 눈을 자세히 보게 되는데요. 눈이 참 깊고 예뻐요. 눈물 자국도 잘 안 보이고. 그런 부분들도 장점인 거 같고요. 털이 검다고 해서 못 생겨 보이고 그런 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어쩌면 사람들은 블랙독이라는 선입견에 갇혀서 진짜 매력을 못 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구절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누구나 풀꽃을 바라볼 수 있지만 시인의 시선은 분명 다르다. 어떤 대상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

그것은 따뜻한 마음의 창을 가진 이에게만 주어지는 행복일 테니.



글·그림 / 자유지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블랙독 증후군(black dog syndrome)

검은색 개의 입양을 기피하는 현상을 블랙독 증후군(black dog syndrome)이라고 한다. 영미권에서 'black dog'은 우울, 낙담과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실제로 검은색 털을 가진 개는 흰색 털을 가진 개에 비해서 입양률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블랙독 증후군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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