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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관광으로 완성한 리버풀 여행

스치듯 둘러본 리버풀 대성당과 안필드도 기억합니다

by 딱정벌레
앨버트 독 비틀즈 동상. 사진=딱정벌레

내가 쓰고 싶은 순서대로 여행 일지를 쓰다 보니 뒤죽박죽이다. 리버풀을 여행한 건 영국 여행 5일 차 되는 날이었다. 옥스퍼드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오전 9시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옥스퍼드에서 마라톤 대회 때문에 숙소 인근에 도로를 통제한다고 했다. 전날 체크인할 때 그걸 알려줬다. 대중교통 타려면 더 빨리 나가야 할 거라고. 게다가 마라톤 대회 때문에 옥스퍼드 숙소도 만석이었다. 방을 바꾸고 싶었는데 남은 방이 없었다.

외사촌 동생이 피곤했는지 늦게 일어났다. 많이 피곤해 보여서 나도 억지로 깨우지는 않았다. 버스 타고 기차역에는 못 가겠지만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걸어서 가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라는 거. 영국에선 비 오는 게 일상이었지만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까지 우산 쓴 채 걸어가려니 꽤 수고스러웠다. 돌아보면 그 길도 좋았다. 다리도 건너고 어떤 하천도 지나가고 걸어가며 마주한 비 오는 옥스퍼드 풍경도 운치 있었다. 그 와중에 또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영상을 찍었다.

걸어서 기차역 가는 길에 본 옥스퍼드 오리. 시진=딱정벌레

오전 9시 가까이 돼서 역에 도착했다. 원래 타려던 기차를 탔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기차에 좌석이 지정돼 있지 않았다. 우리도 패스를 끊어서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탔다. 옥스퍼드에서 리버풀은 멀었다. 기차 타고 4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기차도 한번 갈아타야 했다. 오전 9시께 기차를 타야 했던 것도 그렇게 최대한 빨리 가야 오후 1시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옥스퍼드나 브라이튼은 런던 근교라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옥스퍼드~리버풀, 맨체스터~에든버러 구간은 4시간 여 소요됐다.

기차 안에서 특별히 한 건 없었다. 음악 듣고, 이모와 카톡 주고받고, 책 읽고. 기차를 갈아탄 역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작은 역이었던 것 같다. 그 작은 역에도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매장 또한 아담했다. 기차를 갈아타고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 역에서 내렸다. 이 역을 리버풀의 심장 또는 중심이라고 한다. 거기서 버스를 탔으면 숙소에 금방 도착했을 텐데. 반대 방향으로 다른 열차를 또 타서 길을 잘못 들었다. 그만큼 시간도 1시간 정도 버렸고. 그래도 열차를 잘못 탔다는 걸 일찍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리버풀 라임 스트리트 역. 사진=딱정벌레

구글맵은 여행자의 구원자라고 해야 하나. 낯선 곳도 구글맵과 함께라면 문제없다. 배차시간도 다 나오고, 요즘은 증강현실 기능도 지원한다. 화살표로 길이 잘 표시돼서 그걸 따라가면 처음 가본 곳도 잘 찾아갈 수 있다. 전혀 계획에도 없던 정말 낯선 동네로 왔는데 숙소를 도착지로 설정, 무사히 목적지로 왔다. 버스를 탔는데 어느 방향에서 타야 할지 몰랐다. 고맙게도 어떤 기사님이 방향을 알려줬다. 머리가 희끗하고 나이도 지긋하며 안경을 꼈는데 친절히 설명해줬다. 긴 대화를 나눈 건 아닌데 현지서 만난 영국인은 대체로 친절했다.

우리 숙소는 주요 관광지와 가까웠다. 런던, 옥스퍼드, 맨체스터, 에든버러 다 그랬지만. 도심에 있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를 다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리버풀도 마찬가지. 앨버트 독과 가까웠는데 우리가 가려고 했던 영국 음악 박물관, 비틀즈 스토리, 캐번 클럽 다 걸어서 가면 됐다. 단 리버풀 대성당과 안필드는 버스를 타고 갔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옮긴 다음, 밖으로 걸어 나왔다. 숙소 앞에 바다가 있어서 항구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브라이튼도 갔지만 리버풀에 오니 진정한 항구도시에 있는 느낌.

영국 음악 박물관. 사진=딱정벌레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여 시간을 버린 터라 일정이 여유 있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관광을 시작할 때가 오후 3시 무렵이었으니까. 영국에서는 점심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아침은 호텔 조식을 무조건 먹었지만(마지막 날에는 일찍 나가느라 못 먹었다) 늘 시간이 빠듯해서 점심 건너뛰고 여행한 다음 저녁을 먹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열량이 장난 아니라서 살이 그리 빠지지는 않았다. 점심을 안 먹으니 보상심리로 저녁은 좀 더 잘 먹고 싶어 하고. 너무 바빠서 돈 쓸 시간도 없었다.

영국 음악 팬으로서 리버풀 관광은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축빠였으면, 리버풀 FC 팬이었다면 그 감흥이 더 배가 됐을 것. 리버풀에서는 여행 테마가 음악 여행이었다(맨체스터에서도 오아시스나 매드 체스터 열풍으로 테마 잡으면 충분히 음악 여행이 가능한데 하루밖에 못 있어서 그걸 못했다, 꼭 다시 간다). 비틀즈의 고장이기도 하고, 영국 음악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영국 대중음악 역사를 총망라했다. 이날 우리 첫 관광지도 영국 음악 박물관이었다.

보이 조지 홀로그램 공연. 사진=딱정벌레

영국에서는 무료 관람을 많이 했는데 영국 음악 박물관과 비틀스 스토리는 예외였다. 티켓 값도 좀 셌다. 가격이 가물가물한데 1만5000원쯤 됐던 것도 같다. 그러나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했다. 영국 음악 박물관이 특히 그렇다. 내가 영국 대중음악에 빠진 건 고등어 시절이었는데 여길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무척 울렁였다. 그 시절 즐겨 듣던 음악과 좋아했던 뮤지션의 역사를 총정리한 건 물론, 관련 물품도 전시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눈에 박제하고 싶을 정도였다.

박물관에서는 가끔씩 홀로그램 공연을 하는데 내가 들어갔을 때 컬처 클럽 멤버인 보이 조지의 홀로그램 공연이 펼쳐졌다. 그리 길게 하지는 않지만. 홀로그램 공연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좌우를 오가며 시스템을 구경하기도 하고. 보이 조지도 삶에 이런저런 굴곡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시절처럼 꽃미모를 뿌리지도 않고, 머리숱도 줄었지만 나이에 어울리게 자신을 잘 꾸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플라시보의 브라이언 몰코의 꽃청년 시절도 생각나네. 몰코 언니라고 불렀는데.

영국 음악 박물관 전시물. 3번 믹 재거가 입은 옷. 5번 데이빗 보위가 입은 옷. 6번 프레디 머큐리가 입은 기모노. 사진=딱정벌레

여기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영상은 촬영하면 안 됐다. 전시장은 어두웠고 주요 영국 뮤지션 사진이 상단 곳곳에 비치됐다. 비틀스 열풍이 일기 전부터 시대별로 영국 대중음악 역사와 관련 물품이 전시돼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퀸 공연에서 입었던 기모노도 있었고.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데 노엘 갤러거가 공연에서 연주한 유니온 잭 수퍼노바 기타를 봤다. 하. 이 기타 너무 멋있었는데. 이 기타는 말 그대로 영국 국기를 무늬로 넣은 기타였다. 영국이 좋은 건 아니고 영국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기타가 멋있었다.

오아시스뿐만 아니라 로비 윌리암스나 콜드 플레이가 투어에서 연주한 기타도 전시했다. 스파이스 걸스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데이빗 보위가 입은 옷도. 스파이스 걸스는 인형도 있었다. 개인 활동한 스파이스 멤버 중에서는 멜라니 C가 좋았다. 개인 활동하면서 발표한 곡 중 좋은 곡이 좀 있었다. 데이빗 보위 음악이나 그의 스타일 가운데서 좋아하는 게 있었지만 사람이 좋은 건 아니었다. 너무 놈팽이 스타일이라서? 그래도 Modern Love나 Let's Dance 들으면 신난다. 영화 '월플라워' OST였던 Heroes를 들으면 용기도 나고 Five Years 들으면 차분한 기분. 믹 제거와 함께 한 Dancing In The Street 뮤직 비디오에서 파자마 입고 휘청거리며 춤추는 모습은 사람을 홀리게 했다.

1번 스파이스 걸스가 입은 옷과 인형. 2번 노엘 갤러거가 연주한 유니온잭 수퍼노바 기타. 3번 라이브 에이드 티셔츠. 4번 로비 윌리암스나 투어서 연주한 기타. 사진=딱정벌레

박물관에 아쉬움은 있었다. 유명 뮤지션이 너무 많다 보니 빠진 이들도 있었다. 199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젼은 기념비적 사건이었고, 그 시대를 수놓은 뮤지션도 많았는데. 모르겠다. 영국에는 큰 인기가 없었고 한국에만 인기 있었던 건지(마이클 런즈 투 락처럼?) 모르겠지만 맨선은 여기서 빠져 있었다. 맨선 활동 시기가 짧고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등과 비교하면 마이너 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앨범도 많이 내고 탑 오브 더 팝에서도 공연하며 유명했는데 여기선 비중이 별로 없었다.

과거 역사가 너무 어마어마하다 보니 거기에 비하면 현대 음악은 의미가 부족해 보이기도 했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지만 대중문화에서도 점점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자존심은 세고. 뇌피셜이고 영국을 잘 알지 않아서 섣불리 말은 못 하겠다만. 전시도 흥분되지만 여기는 체험 코너도 많았다. 기타도 여러 대 갖다 놔서 연주할 수도 있고. 보컬 부스가 있어서 녹음도 할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는 그리 당기는 상품이 없었다. 솔직히 요즘은 이미지 파일만 있으면 개인이 컵이나 티셔츠는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1~2번은 앨버트 독 일대. 3번은 비틀즈 스토리 입구. 사진=딱정벌레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서둘러 비틀즈 스토리로 향했다. 걸어서 가는데 중간에 앨버트 독과 비틀즈 동상을 거쳐서 갔다. 리버풀 가면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곳. 비틀즈 스토리는 비틀즈 박물관이다.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했는데 신기하게도 여기는 한국어 안내가 준비돼 있었다. 에든버러 홀리루드 궁전 오디오 가이드에는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았는데. 직원은 아시아인이었는데 일본인 같기도 하고. 비틀즈 스토리도 입장료는 영국 음악 박물관처럼 좀 나갔던 것 같다.

여기서는 비틀즈 멤버별로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개인사를 전시했다.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처럼 비틀즈 역사에 중요한 인물 이야기도. 이들의 음악사에서 기념비적 공간이 여럿 있는데 이걸 세트로 만들었다. 캐번 클럽이나 비행기나 애비 로드 스튜디오 등. 비틀즈 영상도 많이 틀었다. 내 최애 멤버는 조지 해리슨인데 역시 그도 어린 시절 범상치 않았다. 옷도 입으라는 대로 안 입고 반항가 기질 발휘해서 마음대로 입고. 비틀즈 해체 이후 한참 지나서였나 그도 칼에 찔려서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1~3번 과거 비틀즈 기념품. 5번 오디오 가이드. 사진=딱정벌레

존 레논이 생전에 입은 재킷, 안경도 있었다. 전시 끝부분에는 존 레논의 Imagine 뮤직비디오 세트장을 재현한 곳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 앨범은 Magical Mystery Tour인데 이 앨범 재킷을 재현한 세트장도 있고. Strawberry Fields Forever 배경이 된 묘지도. Get Back 뮤직비디오를 찍은 옥상도. 감탄했던 건 1960년대 당시 나온 비틀즈 기념품이었는데 색칠공부하는 책도 있었다. 이름하야 컬러링북. 요즘 기념품 라인업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기념품이 있었다.

비틀즈 음악을 좋아한 건 중학생 때였다. 그때 비틀즈 베스트 앨범 '1'이라는 게 나왔다. 어머니 생신 선물로 사서 드렸는데 잘 안 들으셨다. 내가 대신 들었는데 그냥 좋았다. 그들의 음악과 인생에 더 매료된 건 2001년 조지 해리슨의 죽음 영향이 컸다. 라디오에서도 그를 추모하고. 그의 삶을 더 들여봤는데 인상 깊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히트곡을 엄청 많이 만들거나 튀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길을 가는 멤버. 라이브 에이드의 시효로 1970년대 '콘서트 포 방글라데시'를 꼽는데 그걸 기획한 이도 조지 해리슨이었다.

비틀즈 스토리에 전시한 세트장과 앨범 재킷. 사진=딱정벌레

화려한 사람에게도 관심이 있지만. 난 조용하고 우직하게 자기 개성을 살리며 할 일 하는 사람에게 더 시선이 간다. 그러다 가끔 놀라운 음악을 들려주고. 그가 Norwegian Wood에서 시타를 연주한 것도 그래서 좋다. 조지 해리슨의 아들 다니 해리슨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오아시스의 Wonderwall은 조지 해리슨의 첫 번째 솔로 앨범 제목에서 따왔고. 난 외모도 비틀즈 4명 중에서 조지 해리슨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Lady Madonna 뮤직 비디오에서 헤드폰 끼고 기타 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다만 그가 좋은 남자인지는 모르겠다. 인도 문화에 빠져서 첫 번째 부인 패티 보이드를 많이 외롭게 했으니까. 잘 모르지만 패트 보이드의 회고를 보면 조지 해리슨을 참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좋지만 사랑은 변한다. 변하는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잘 대처하면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 같다. 그건 어렵고 우리는 종종 넘어지며 실수한다. 아무튼 비틀즈 스토리 기념품 매장도 크게 사고 싶은 건 별로 없었다.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하나 샀고, 난 비틀즈 앨범 박스세트도 있어서 더 뭔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앨버트 독 관람차(위)와 저녁 풍경. 사진=딱정벌레

비틀즈 스토리를 나오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참고로 앨버트 독 근처에도 테이트 미술관이 었었다. 런던에도 있고 리버풀에도 있다고 들었는데 두 군데 다 안 가봤다. 계획에 없기도 했지만 가려고 해도 도무지 시간이 안 났을 것 같다. 리버풀 대성당과 안필드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기도 6시 지나면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길도 어둡고, 가로등도 딱히 켜져 있지 않았다. 타운 쪽은 번화가인데 여길 벗어나면 조용하다. 리버풀 대성당에 가는 길은 긴장되고 약간 무서웠다. 리버풀 대성당은 밖에서 건물만 구경했다.

안필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차이나타운을 지났다. 리버풀의 차이나타운도 꽤 큰 집단이라고 들었다. 이 지역 발전에 차이나타운이 많이 기여했다나. 어쨌든 길이 온통 어둡고 인적도 드물어서 저녁에 리버풀을 다니는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낯선 곳에 와서 더 경계심이 들기도 하고. 버스도 쾌적하지 않았다. 쓰레기가 많고 더러웠다. 안필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본 리버풀 사람들의 모습은 고되어 보였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채 장 본 비닐봉지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았다.

리버풀 대성당(왼쪽)과 차이나타운 입구. 사진=딱정벌레

경기가 있는 날이 아니라서 안필드 주변은 무척 조용했다.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갔는데 주변에 펍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에 어떤 모습이 감도 안 왔다. 안필드 문에는 역대 우승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그걸 보니 '아, 이 팀 우승 안 한지 꽤 오래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리버풀이 EPL에서 우승했다니. 난 EPL에 관심 없지만 주변에 리버풀 팬이 많아서 클롭 감독이나 수아레즈, 제라드 등 한때 이 팀의 상징 선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주워들은 지식으로 미팅 가서 아는 척하고. 덕분에 대화는 윤기 있어졌다("클롭 감독이 독일인이잖아요? 도르트문트에서 왔고.") 참고로 클롭 감독 슈트 빨은 정말 멋있다.

리버풀 대성당이나 안필드는 요식행위(?)로 관광을 위한 관광을 한 거라 속성으로 다 해치웠다. 길에 사람도 없고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빨리 숙소 근처로 돌아가고 싶었다. 길에서, 버스에서 본 리버풀 풍경도 깔끔해 보이지 않았고. 저녁은 숙소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우리가 이날 안 간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비틀즈가 예전에 공연했던 캐번 클럽이었다. 그 주변에서 저녁을 먹었다. 캐번 클럽이란 곳은 있지만 예전에 그 위치에 있지는 않다. 또 캐번 클럽 주변에는 캐번 레스토랑, 캐번 펍 이런 식으로 이름을 딴 유사 매장(?)이 많고. 캐번 스트리트에는 비틀즈가 공연한 동네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기념으로 찍었다. 거리에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앵벌이하는 사람도 있고.

1번 리버풀 FC 전용 구장인 안필드의 콥 바. 2~3번 안필드 주변. 사진=딱정벌레

영국에 오면 피시 앤 칩스를 먹어야 하는데. 여행한 지 5일이 될 동안 한 번도 안 먹었다. 외사촌 동생이 "그래도 항구도시에서 먹는 피시 앤 칩스가 맛있지 않겠냐"라고 해서 리버풀에서 드디어 먹었다. 각자 맥주 한잔씩 주문하고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9시. 기분 탓인지 피시 앤 칩스는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도 이걸 먹긴 했지만 현지에서 먹는 게 좀 더 실감 나긴 하다. 이 글을 이태원에 있는 브루독에서 피시 앤 칩스와 펑크 IPA를 먹으며 쓰고 싶었는데. 이태원이 아직 조심스럽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는데 안내하는 분이 할아버지였다. 말투를 들으니 존 레논 육성에서 듣던 그 말투라서 '아, 이게 리버풀 말투구나' 싶었다. 바닷 사람 특유의 호탕하고 시원한 말투? 맨체스터로 떠나는 이날 아침 날씨는 좋았다. 하늘이 맑고 푸르고 구름도 아름다웠다. 난 내가 좋아하는 Magical Mystery Tour를 들으며 리버풀을 떠날 준비를 했다. 라임 스트리트역까지 열차를 타고 가려고 역 직원에게 방향을 물었는데 고맙게도 엘리베이터까지 우리를 안내해주고 버튼도 눌러줬다. 오늘은 비틀즈의 Rubber Soul 앨범을 모노 버전 CD로 들으면서 글을 썼다.

1번 캐번 스트리트에 있는 존 레논 동상. 2번 캐번 스트리트. 3번 저녁으로 먹은 피시 앤 칩스.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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