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옥스퍼드에 가서 가장 좋았던 건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의 저녁 예배인 Choral Evensong에 참석한 일이었다. 평소 내 아침 루틴 중 하나는 출근길에 BBC 라디오 3에서 코럴 이븐 송을 들으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매일 그러지 못할 때도 있지만. 코럴 이븐 송에선 영국 교회, 성당의 저녁 예배를 중계한다. 말씀도 읽지만 주로 성가를 들려준다. 성가대의 청아한 합창을 들으면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도 생각나고. 그거 듣는다고 내 마음이 더 깨끗해지지 않겠지만. 산란한 정신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되찾는데 도움된다. 구원받은(?) 기분도 들고. 가끔 실패하기도 한다. 윤상의 '악몽'을 듣는 내 마음과 코럴 이븐 송을 듣는 내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쨋든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에서 코럴 이븐 송에 참석한 건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촬영지였고 옥스퍼드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외사촌 동생과 난 해리포터에 나온 식당, 예배당을 관광하려 했다. 그런데 오후 4시쯤 표가 매진됐다. 입장시간이 남아있는데 표가 매진된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별 수 없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매표소 관계자는 "오후 6시에 저녁 예배가 있다"며 "그때 오면 돈낼 필요없고 예배당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했다. 예배까지 두시간이 남아서 앨리스 인 네버랜드 매장과 바로 옆 중고서점을 구경했다. 이어서 브라질 음식점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은 뒤, 벤스쿠키 본점에서 쿠키 4개를 떨이로 샀다. 스타벅스에서 옥스퍼드 시티 머그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 맞춰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입구로 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대성당 예배 들어가기 전 입구. 사진=딱정벌레
6시가 가까워오면서 입장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언짢은 일이 있었다. 전통 복장을 한 경비원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들여보내면서 우리에게만 무표정한 얼굴로 "Can I help you?"라고 물었다. 별로 도와주고 싶어 보이는 표정도 아니었고. 난 당황스러워서 조건반사적으로 "What?"이라고 했다. 이어서 내가 (조금 빡친 표정으로) "Service"라고 하니 그제서야 "Uh, service"라며 들여 보내줬다. 괜한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것도 인종차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 선 사람들 중에 아시아인이 거의 없긴 했다. 나중에 외사촌 동생이 하는 말이 본인이 전자담배를 피운 걸 본 게 아닐까 싶다고. 난 속으로 '이자식이'라고 생각했다가. 동생은 냉담자가 된 지 좀 됐고, 난 개신교에다 예배 목적보다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구경 목적이 앞섰기에 할 말은 없었다. '저녁 예배 안내한 건 크라이스트처치 쪽이었으니 뭐 어때'라는 생각도 했고. 그나마 내가 지킨 예의는 안내된대로 예배당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었다. 흥미로웠던 건 예배당에 착석하니 별 제지없이 들어왔던 서양인들은 찍지 말라는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는 점. 예배 중 무릎 끓고 기도하는 시간에 대다수 사람들이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점. 찬송가 부를 때는 더 티가 났고. 근데 입장 당시 앵글로색슨은 날 제지하려 했고. 흠. 그날의 공기는 참 좋았다. 늘 라디오에서 듣던 코럴 이븐 송을 현장에서 직접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사진 따위 필요없었고. 그냥 내가 이 순간에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중간중간 말씀을 읽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했다. 그날엔 출애굽기와 사도행전 말씀을 읽었다. 왼쪽 옆에는 두 자매님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녀처럼 보였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배 내내 계속 훌쩍였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대성당 광장. 사진=딱정벌레
이날 코럴 이븐 송엔 특별 순서도 있었다. 성가대에 5명의 어린이들이 새로 임명받아서 메달을 받았다. 또 보조 오르간 연주자와 기타 찬양단 멤버들이 새로 임명돼서 박수를 받았다. 예배가 끝나고 나가는 길엔 신부님으로 보이는 분이 사람 한명 한명에게 고맙다고 악수를 했다. 언택트가 사회 규범인 요즘엔 감히 할 수 없는 일. 입장 당시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달까. 영국서 만난 사람들 대체로 친절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에든버러 스타벅스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은 약간 스크래치였다. 코럴 이븐 송 기억을 소환한 까닭은- 지난 3월말 여러가지 이유로 여기에 정신을 많이 의지했다. BBC 코럴 이븐 송에서 런던 템플 처치의 예배를 틀어줬다. 음악이 좋기도 했고. 힘이 많이 됐으며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됐다. 성가는 아니지만 Heart의 'Nothin' At All'도 그랬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나서도 내가 바라는 건 내 영혼이 평온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걸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뭐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뭔지 셈한다. 이건 피해야 할까, 견뎌야 할 건 뭘까. "잘했습니다. 계속하세요. 내 개인적 생각은 하셨으면 좋겠는데요. (중략) 어떤 요리사도 그 사람이 만드는 음식이 다 맛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날은 맛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날의 요리가 잘못된 거죠. 그날의 요리를 다시 개선하면 됩니다. 요리 한번 망친다고 이때까지 그 요리사의 명성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날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보고, 많이 대화한 날이었다. 이건 기억에 남는 대화 내용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