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중턱의 빨간 벌레
어제 간만에 등산을 했어요. 오랜만이기도 하고 자의(?)가 아닌 등상이었는지라 하기 싫은 마음을 한참 다독이고 나서야 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오르기는 싫지만 중간에 하산하고 싶지는 않은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산에 올랐으면 이왕이면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체력은 저질이지, 헤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지, 그렇게 순탄치 않은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언제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지 조금 걷다가 멈춰서서 위를 한 번 쳐다보고 또 다시 걷다가 멈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기를 반복했을텐데요. 어제는 좀 달랐습니다. 그냥 걷기에 집중하기로 했거든요.
돌부리에 넘어지진 않을지 길을 살피고 보폭은 적당한지 제 발과 앞 사람과의 거리도 체크했지요. 오래 걸어야 할테니 호흡에 집중하면서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내뱉는 것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그러다 땅 위에 난 이름 모를 식물의 입사귀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꼼지락거리며 사람의 발걸음을 피해 제 갈길을 가는 신기한 벌레도 발견했어요. 평소 같으면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질색했을 벌레지만 등산 중에 만나서였을까요? 괜스레 동지같이 느껴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힘내, 이 녀석아! 사람들 발 잘 피하고, 끝까지 살아 남아라!' 속으로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깨달은 것은 산을 오르는 게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꽤나 재미있다는 것이어었어요.
숨이 차고 언제 다다를지 몰라 조급하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고 걸으면서 때때로 만나는 주위의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니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던 이 여정에 즐거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먼저 갈게요"라며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고, 나보다 일찍이 출발했던 사람을 아주 가끔 내가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어요. 별관심은 가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에게 집중하기에도 바빴거든요.
나와 함께 이 길을 가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속도로 가지만 어딘가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제게 큰 위로도 되었습니다.
등산하면서 느낀 걸 우리 인생에 적용한다면 너무 오바하는 걸까요?
또 어딘가에서 힘들다며 주저 앉고 이번 생을 글렀다고 후생을 도모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위기의 순간에, 또는 지루한 여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꽤나 즐겁게 일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습니다.
어제 제가 느꼈던, 많은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뻔하디 뻔한 순간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치열하게 버텼을 월요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