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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Dec 15. 2023

그 사람이 달리 보이던 순간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온순한 성격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내가 들고 있던 짐을 낚아 채 들어 줄 때, 또 반대로 감정이 무딘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가족 영화를 보며 펑펑 울 때 말이에요.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현 남편 구 남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학교를 휴학하고 캐나다 밴쿠버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수중에 500만 원 뿐이었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머나먼 캐나다를 갔는지 지금으로썬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어쨌든 저는 살기 좋다는 캐나다, 그리고 그중에서 따뜻하다는 밴쿠버로 떠났지요. 영어 공부도 하고, 외국 살이도 하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집 계약을 하고 어학원을 등록하니 이제 정말 돈이 없더군요. 하루하루 조급한 마음으로 동네에 있는 가게를 방문해 이력서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한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친구도 사귀고 돈도 벌면서 잘 지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 날은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휴가도 냈고 아침부터 서둘러서 나갈 준비를 했죠. 남자친구가 오는 날이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사귄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불타오르는 시기, 한편으로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그 시기에 저는 캐나다로 훌쩍 떠나왔거든요. 제가 캐나다에 가면 꼭 한 번 놀러오겠다는 남자친구는 결국 추석 연휴를 맞아, 이 때가 아니라면 평생 안 올지도 모르는 캐나다 밴쿠버에 오는 것입니다.








밴쿠버 공항에서 남자친구와 눈물의 재회를 한 후 시내로 돌아와 미리 예약해 두었던 호텔로 갔습니다. 아주 저렴하지도, 아주 비싸지도 않았던 그 호텔은 시내 중심에 있어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였어요. 남자친구가 오기 한 달 전쯤 예약을 하고선 산책을 하다 두어번 들려 예약이 잘 되었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었어요. 나 하나 보자고 먼 길을 오는 남자친구가 머물 곳이니 만전을 기해야지요.








지하철역에서 내려 시내 구경을 하면서 호텔로 걸어갔습니다. 남자친구의 트렁크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냈는데 어서 짐을 내려 놓고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어요. 서둘러 그 호텔로 갔습니다.








아니 그런데 말이죠. 호텔에 도착해 리셉션 직원에게 제 이름을 말하자 그 직원이 하는 말이, 제 이름으로 예약이 안되어 있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분명 며칠 전에도 직접 와서 예약이 잘 되어 있는 걸 확인했었는데요.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습니다.








방을 다시 잡으려고 하니 제가 예전에 예약했던 가격으론 불가하다고 하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저는 리셉션에 모여있던 직원들에게 외쳤죠.








"I'll sue you!! (고소할거야!!)"








고소를 어떻게 하겠어요. 너무 화가난 나머지 제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표현하기 위해 저 말을 뱉었죠. 그런 저를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친구는 저를 말리며 "어차피 이곳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호텔을 찾아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와 남자친구는 일단 호텔 밖으로 나왔습니다.








호텔 밖으로 나왔어요. 남자친구의 무거운 트렁크도 여전히 함께였지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손쉽게 호텔을 예약하던 때가 아니라 저는 이제와서 어디 호텔로 가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일단 저 호텔 가보자."








건너편에 있는 호텔을 가리키며 남자친구가 말했어요. '저런 곳에 호텔이 있었네?' 의야해하며 남자친구와 함께 길을 건넜습니다.








로비가 꽤 깔끔한 호텔이었어요. 리셉션의 직원에게 오늘부터 5일간 묵을 방이 있는지 물었더니, 다행히 있다고 하더라고요. 가격을 물으니 제가 전에 예약했던 호텔보다 살짝 비쌌습니다. 비싸더라도 오늘 잘 곳이 필요하니 하는 수 없이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그때 대뜸 남자친구가 말을 하더라고요.








"Expensive. We are students. Discount!!"








짧지만 강력한 세 마디 말.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캐나다에서 가격흥정이라니. 게다가 호텔에서? 이번엔 제가 남자친구를 말리고 계산을 하려던 찰나에 그 직원이 대답하지 않겠어요? "Okay"라고요.








결과적으로 처음 예약했던 호텔과 비슷한 가격으로 이 호텔을 이용하게 되었어요. 방을 둘러보니 그 전 호텔보다 훨씬 괜찮은 컨디션이었고요. 이렇게 되니 첫 호텔에서 예약이 안 되어 있던게 오히려 잘된 일이 되었지요.








누군가에게 아쉬운 말을 하기 싫어하는 남자친구라 생각했는데, 그때 호텔 직원에게 가격을 깎아달라고 말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은 제가 무척이나 새로웠습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매력이?' 싶었달까요?








저는 지금도 (구) 남자친구, (현) 남편인 그에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종종 옆구리를 찌르며 말하곤 합니다. ('깎아달라고 좀 해봐바') 그럼 그는 왜 맨날 곤란한 건 자기에게 시키냐며 투덜거리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말하죠. "아주머니, 이것좀 깎아주실 수 있나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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