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이 12. 고생 끝, 행복 시작?

15일째 날

by 하만다


오전 7시 40분 제주국제공항행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졸업식만 갔다가 서울에서 하루 잔 후 바로 돌아올 예정이라, 짐은 단출하게 조그만 가방 하나와 서울에 있는 동생에게 줄 초콜릿뿐이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졸업식 때문에 제주를 떠나 서울을 간다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왜인지 여행길에 오른 것 마냥 설렜다. 단순히 비행기를 타는 것이 설레는 것인지, 아니면 내게 그새 서울이 여행지가 되어 버린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에 내려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탔다. 학교 앞 역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사범대학 건물에 도착했을 땐 나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조깅도 했는데 고작 이 정도에 숨을 헐떡이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건물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크게 몰아 쉬며 제주도에 돌아가면 조깅 코스를 늘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학위 수여식이 열리는 행사장은 사범대학 본관 2층에 있었다.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가니 행사장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식은 시작한 지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문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이니 누군가의 훈화 말씀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것은 모두 내 계획이었는데, 나는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생각이 없던 터라 식이 시작하고 30분 즈음 지난 후 도착하도록 시간을 계산해 비행기 표를 예약했었다. 공항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에도 구태여 서두르지 않았었다. 진중한 분위기에 엉덩이 무겁게 앉아 있어야 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졸업 날이라고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오는 게 어디야'라며 아무도 하지 않는 꾸지람에 혼자 속으로 소심하게 변명했다. 행사장 안에 있는 동기들에게 카톡으로 연락해 보니 곧 끝날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행사장 앞의 강의실 내 마련된 공간에는 졸업 가운 여러 벌이 행거에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석사모가 놓여있었다. 안내를 도우러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가 내 이름을 말하니 한 학생이 졸업생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주며 내 이름 옆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서명을 하면서 뜨문뜨문 비어있는 서명란을 보니 내가 꼴찌는 아닌 듯해 안도감이 들었다. 서명을 한 종이를 담당 학생에게 다시 돌려주니, 학위기와 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주려고 준비했다는 졸업 선물을 주었다. 그리곤 옆에 마련되어 있던 졸업 가운과 석사모도 사이즈에 맞게 챙겨 주었다.


"선생님!"


복도에 길게 놓인 벤치에 앉아 옷차림을 정비하고자 졸업 가운과 석사모를 들고 복도로 나오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연구실 후배들과 박사 과정 선생님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졸업 가운을 걸치고 석사모를 쓰자 친절하게도 다 같이 어디 삐뚤어진 데는 없는지 꼼꼼하게 봐주었다. 다들 졸업한 지 오래되어 어떻게 입고 쓰는 게 맞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는데, 특히 석사모 쓰는 방법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대충 이 정도면 맞겠지' 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는데 마침 행사가 끝나 교수님과 연구실 동기들이 행사장 문을 열고 나왔다. 교수님은 나를 보시고는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씀과 함께 내 석사모 쓰는 방법이 틀렸다며 이를 고쳐 주셨다. 긴 토론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깨달은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아무 말은 하지 않은 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길, 동기 한 명이 내게 말했다. "행사 안 들어오길 잘했어요.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그렇게 오기 싫었던 졸업식이건만 막상 동기들과 교수님, 연구실 사람들 얼굴을 마주하니 그래도 오길 잘했다 싶었다. 약 3년 간 지겹게 왔던 학교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가랑이 찢어질 일 없다는 게 실감이 난 나는 큰 해방감을 느꼈다.


학교를 다니면서 도대체 왜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후회한 게 여러 번이었다. 대학원 첫 학기는 회사에서 업무가 변경된 직후라 일이 너무 바빠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입학금만 내고 휴학을 했었다. 업무에 조금 적응이 된 그다음 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평일에 업무로 시달리고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하루 종일 수업을 들어야 했을 때 그때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늦었었다. 기대와는 다른 수업들을 들으면서 '내가 이걸 들으려고 뼈 빠지게 번 돈을 등록금으로 냈다니' 당장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심지어 한 교수님은 "요즘과 같은 정보가 넘치고 유튜브 같은 수단이 잘 발달된 시대에는 굳이 대학원에서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고 검색만 잘하면 대학 강의보다 더 좋은 강의가 수두룩하다."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그걸 왜 이제 말씀해 주시나요. 강의 첫날 말씀해 주셨으면 환불신청이라도 했을 텐데요.'라며 말씀하신 교수님을 원망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바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코로나가 터져 학교에는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회사는 비상이 걸려 업무 강도가 두 배는 높아져 삶이 나아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왕 한 번 시작한 거 끝까지 하자며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논문 학기를 맞이하고 그 의지마저도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난생처음으로 논문을 쓰게 되면서 100페이지가 넘는 글을 도대체 어떻게 쓴단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퇴근하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노트북을 켠 채 텅 빈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한 줄도 쓸 수 없는 내 머리를 원망하며 머리카락을 잡아 뜯어 댔다. (머리카락은 죄가 없는데 말이다.) 한 문장마다 출처, '레퍼런스'를 달아야 해서 한 문단을 쓰려면 수십 편의 논문을 읽어야 했다. 졸업은 하고 싶은데 논문은 쉽게 써지지 않고 논문 심사일은 다가와 매일 밤 울면서 타자를 두드렸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고생 끝에 나는 어찌어찌 논문을 완성했고 오늘 졸업을 한다.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별로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인데도 춥지 않았던 까닭이 그날따라 유달리 따뜻했던 햇살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해방이라고 들떠버린 마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건물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다. 석사모를 벗어 들고 다 같이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하늘을 향해 던졌다.


"아얏!"


석사모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가 던진 모자를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서서 같이 석사모를 던진 동기의 모자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내 입가에서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졸업, 해방이다.


사진을 찍고 아쉬운 마음에 교수님, 연구실 사람들과 교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을 마신 후 교문을 빠져나오면서 속으로 외쳤다. '반가웠고, 다신 보지 말자!'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투룸이다. 며칠 떠나 있었다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내 방과 침대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짐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동생은 아직 퇴근 전이라 집에 없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지만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평화로 아주 잠깐이지만 제주도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데 퇴근한 동생이 왔다. 보름 만에 만난 누나거늘 반가운 기색 하나 없이 무심하게 인사하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동생은 한 달도 넘게 남은 내 생일이지만 지금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준다며 무언갈 소파 앞 탁자에 툭 하고 올려뒀다. 택배 박스를 뜯어보니 액션캠이 들어 있었다.


회사 일과 학업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을 때였다. 응원이나 지지가 필요했던 것인 아니면 누군가에게 선언이라도 하는 게 필요했던 것인지 나는 동생에게 '나 퇴사하고 유튜브 할까 봐'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 말을 들은 동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누나가 이제 그럴 고민을 할 나이는 지났지, 누나 이제 서른 넘었어'라며 한 소리했었다. 겉으로는 '뭐, 틀린 말 아니지'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섭섭했었다. 유튜브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더라도 회사든 학교든 모두 때려치우고 싶다는 것은 진심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코로나 시기 병원에서 일하면서 바빴을 동생 눈에 일주일 내내 재택 하는 내가 힘들다고 찡찡대며 퇴사를 하겠다는 게 복에 겨운 소리 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동생은 뼈 때리는 말을 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지, 아니면 유튜브를 하겠다는 내 말을 진심으로 들었던 것인지 제주도에서 시간 보내면서 영상을 찍어보라며 액션캠을 선물했다.


내가 키우진 않았지만, 참 잘 컸다 싶다. 내 동생.

부모님, 감사합니다. 잘 키운 아들 덕을 제가 이렇게 덕을 봅니다.


그나저나 생각지도 못한 액션캠이 생겼으니 정말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려볼까 싶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이 일상을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 처음엔 많이 안 나오겠지만 꾸준히 올리고 홍보하면 좀 나오지 않을까? 그러다 구독자 수도 많아지면 어느 정도 수익이 나오겠지? 100만 유튜버 되는 거 아냐? 100만 유튜버 되면 대기업 연봉 이상으로 번다는데? 그럼 당장 회사 때려치워야지!


상상 속에서는 이미 인기 유튜버가 되어 지긋지긋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 이제 정말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동생이 생일 선물로 준 액션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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