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째 & 14일째 날
아침부터 눈보라가 몰아친다. 오늘도 어김없이 조깅을 나갔다가 너무 심한 눈보라에 해변으론 나가지 못하고 해녀박물관 즈음에서 방향을 꺾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누우니 '오늘 하루 정도는 집에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에는 엄마와 이모들이 오기로 하기도 했고 날씨도 좋지 않으니 '그냥 집에서 드라마 정주행이나 할까' 하다가 “밖에 나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누군가 했던, 심히 공감되었던 말이 떠올라 급하게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갈까', 귀찮은 마음에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이게 웬걸.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밖에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바람을 쐬고 은은한 햇살을 받으니 마치 바람 꽉 찬 풍선처럼 마음이 붕붕 떴다. 서울에 있을 때도 쉬는 날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야지 결심하고 집에 쌓여 가는 쓰레기를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 버리러 나가곤 했는데, 'PUSH' 버튼을 누르고 건물 자동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다소 춥지만 상쾌한 바람과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에 나도 모르게 기분 좋아졌을 때, '역시 사람은 밖에서 활동해야 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역시 나오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읊조렸다.
집 근처에 있는 <여름 문구사>에 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문구 용품부터 다양한 소품들을 파는 곳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다니면서 슬쩍 한 번 들어가 본 적은 있었는데, 작은 규모지만 알찬 물건들 때문에 나중에 마음먹고 다시 와야겠다고 하고 빈손으로 나왔었다. 오늘은 친구들에게 보낼 엽서를 사려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역시나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눈을 뗄 수가 없다. 엽서만 해도 각자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참 외롭다'라고 쓰인 글귀와 먼 곳을 응시하며 눈문을 흘리고 있는 참외 그림이 그려진 엽서부터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 제주 감자와 당근, 동백꽃, 우도 땅콩, 수국, 돌고래를 모두 한 그릇에 담은 그림과 이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가리키듯이 '다 가질 순 없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엽서까지, 모두 재밌는 상상에 빠지게 하는 엽서들이었다. 수박과 한라봉이 그려진 술병과 술잔은 다음에 데리러 가기로 하고 마음에 드는 엽서 몇 장과 귀여운 고양이가 잔뜩 있는 스티커를 사고 나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큰돈이 들지 않지만 이런 기분 좋은 소비가 내 하루를 한층 더 행복하게 한다.
곧장 집으로 가기에는 아쉬워 해변가에 있는 카페 <카페, 세화숲>에 갔다. 평소에 갈 생각이 딱히 들지 않은 카페였는데 자세히 보니 바다 쪽으로 난 통창이 있었다. 바다 구경은 실컷 할 수 있겠다 싶어 2층으로 올라갔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나는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푸른 세화 바다, 진한 녹색의 나무들, 이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제주도 돌담을 보자니 가슴이 떨려왔다. 이 가슴떨림이 오랜만에 마신 커피 탓인지 매일 봐도 감동인 제주도 풍경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창 밖으로 바다를 보다가 이내 길 위의 사람들 구경에 빠졌다. 이 조용한 동네에 여행객이 어디서 계속 나오는지 참 모를 일이다. 어째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이 동네에서 길 이곳저곳과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있자니 트렁크나 배낭을 멘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나타난다. 버스 터미널을 지나갈 때도 그렇다. 도통 보이지 않던 여행객들이 어디 숨어있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귀신같이 나타나는 건가 싶다. 세화에 머무는 관광객들이 어쩐지 귀여운 두더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늘 저녁 엄마와 이모들이 온다고 했기에 잔소리 방지 차원에서 청소를 해야 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하나 사서 열라면과 함께 뚝딱 해치웠다. 101번 버스가 세화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서 서서 추위를 녹이려고 발을 동동 거리고 있으니 저 멀리 반가운 빨간 버스가 보인다. 정류장에 멈춘 101번 버스에서 엄마와 이모들이 무거운 트렁크를 하나씩 들고 낑낑 거리며 내렸다. 긴 버스 여행에 지쳤는지 만나면 시끌벅적한 엄마와 이모들이 어째 힘이 없었다. 어서 오시라며 간단한 환영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숙소로 안내했다.
엄마는 7남매 중에 둘째로, 위로는 큰삼촌이, 아래로는 삼촌 셋에 이모 둘이 있다. 이모 둘은 결혼을 하지 않고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와 함께 사셨었다. 내가 중학교 때 통풍으로 쓰러지신 할머니는 처음에는 거동과 말이 살짝 불편한 정도였는데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작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수년간을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사실상 할머니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시고 돌봐줄 사람은 없으니 이모들은 멀리 여행을 가지도 못했었다. 가족, 친지들은 이모들에게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실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이모들은 한사코 거절했었다. "우리 몸이 성할 때까지는 엄마랑 같이 살 거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발인 날, 가족들 중 이모들이 가장 많이 울었었다. 그리고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말했다. "엄마, 미안해"라고.
이제는 할머니가 안 계시니 자유의 몸이 되었고 또 나도 제주도에 있으니 겸사겸사 제주도에 온 이모들이었다. 엄마는 이모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어 해서 이번 여행에도 합류하게 되었다. 엄마가 이모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보면 여자 형제가 있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하나뿐인 남동생도 믿음직스럽고 듬직하지만,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서로가 제일 친한 친구가 되는 것 같아 부럽다.
엄마와 이모들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원래도 유명한 깔끔쟁이들이라 식당이나 호텔을 가면 탐탁지 않아 하기 일쑤였는데,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우리 넷이 지내기에도 충분히 큰 크기라 숙소를 잘 구했다며 연신 나를 칭찬했다. 나중에 이모도 한 달 살기를 하러 오고 싶다며 숙소 가격을 물어보는데 아무래도 머지않아 이모들이 이 숙소에 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이모들도 제주도 여행 계획을 아주 꽉꽉 채워 왔기에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미선이도 그렇고 왜 하루에 몇 곳씩 다니는 계획을 세우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집 앞 <세화갈비>에서 매운소갈비찜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렌트카에 올랐다. 운전은 작은 이모가 맡았는데 이번 달 초 내가 운전면허를 따기 전까지는 우리 넷 중 유일한 운전면허 보유자였다. 좀 덤벙대긴 하지만 운전은 잘하는 편인 이모에게 운전을 맡기고 우리는 창밖 구경을 하면서 산방산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 걸려 산방산 근처 유채꽃밭에 도착했다. 비바람이 몰아쳐 도저히 내릴 수가 없어 좀 잠잠해지기를 차 안에서 기다렸다가 비가 살짝 멎었을 때 내려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특수부대처럼 사진만 와다다 찍고 다시 돌아왔다. 유채꽃밭에 들어갈 때 1인 1,000원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처음에는 꽃밭에서 사진 찍는 것까지 돈을 받는다는 사실에 놀랐다가 일 년 중 봄이 되길 기다리면서 꽃을 심고 가꿨는데 이 정도 돈은 받을만하지 싶었다. 엄마와 이모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그랬다.
내 사진첩이 유채꽃과 산방산으로 가득 찰 때쯤 "이제 뽕 뽑았다"며 엄마와 이모들은 나를 차에 싣고 이번에는 함덕 해수욕장으로 갔다. 하루 만에 제주도 남쪽과 동쪽을 찍고 돌아다니려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함덕해변을 스치듯이 구경하고는 함덕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 <델문도>에 가 빵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오일장에서 산 반찬들로 저녁을 차려주고 나는 서울로 돌아갈 짐을 가볍게 쌌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는데, 제주도에 터를 잡고 일 때문에 서울에 간다 하니 마치 내가 슈퍼스타 이효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주도에 있을 하루하루가 소중한데 굳이 졸업식을, 심지어 학부도 아니고 대학원 졸업식을 위해 서울로 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5학기를 다니고 받는 학위 수여식이고 나를 비롯한 동기들이 지도 교수님의 첫 제자인 만큼 안 가면 욕먹겠다 싶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제주에 온 지 14일 만에 서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