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30일
네 이름을 지었다. 너의 이름 위에 쌓일 역사, 시간 그 고유한 세계가 찬란하게 빛나기를 기대하면서 네 이름을 지었다. 평생 쓸 이름이지만 스스로 이름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인간 삶의 모순 중 하나다. 그렇다고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나이까지 이름 없이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남이 준 이름을 갖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다가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단순히 이름이 촌스러워서 일수도 있고 운명을 바꾸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나는 네가 이름을 바꾸는 수고를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름을 골랐다. 네 할아버지께서도 이름을 지어서 보내셨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한자 사전과 씨름한 결과였다. 한글과 한자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손자의 삶이 굳세고 윤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은 이름이 더 예쁘게 읽혔다. 예쁘게 들렸다. 그래서 내가 지은 이름을 주기로 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네 할아버지, 내 아빠도 알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질 것이라는 사실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지은 이름이 네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
며칠 편지를 쓰지 못했다. 자정 즈음에 퇴근하는 날이 이어졌고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얼굴빛은 어두웠고 마음 빛은 더 어두웠다. 어떤 날은 네 엄마와 네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또 어떤 날은 네 엄마에게 짜증도 냈다. 내가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날에는 그렇지 않아도 몸이 무거워 힘든 네 엄마가 평소보다 더 애교를 보인다. 사랑받는 존재인 것이 내심 좋기도 하지만 내 눈치를 보는 네 엄마가 안쓰럽다. 내 탓이다. 그래서 지금 쓰는 이 편지에서 약속할 것이 있다. 네가 세상에 오기 전에는 꼭 다른 사람이 돼 있겠다고 약속할게. 지금보다 더 자주 웃고 지금보다 더 크게 웃는 사람이 돼 있겠다고. 이제야 나는 너를 맞이할 준비가 끝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