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2021년 9월은 여러모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네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3월만큼이나 각별한 한 달이다. 9월 1일이 기억난다. 너에게 첫 편지를 쓰던 날은 더웠다.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 만으로는 충분히 시원하지 않은 날이었다. 서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을 때 막막했다. 뱃속의 너에게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입이 바싹 마르고 머릿속은 깡통이었다. 텅텅 소리가 났다. 회사일이 무척 바빴지만 아빠가 되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아빠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몇 장의 편지를 끼적인다고 아빠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편지를 쓰면서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21년의 9월은 충만했다. 네 얼굴을 상상했고 말투를 상상했고 네가 좋아할 영화나 운동 경기도 상상했다. 함께하는 우리 셋을 생각했다. 너와 네 엄마 그리고 나.
지금은 밤과 낮으로 선선하다. 얼마 전에는 겨울 이불도 꺼냈다. 이불을 차면 감기에 걸릴 법한 날씨다. 매일 자정이 되기 전에 편지를 써야 한다고 스스로와 약속한 한 달이 그 끝에 와있다. 스물아홉 번째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자정이 조금 넘었다. 네 엄마는 먼저 누웠다. 너는 뱃속에서 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자란 너를 담고 다니느라 엄마는 평소보다 빨리 지치고 피곤해한다. 안쓰럽고 또 사랑스럽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어떤 말로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마지막에는 반 정도의 후회와 반 정도의 후련함이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후회와 후련함 모두 느껴지지 않는다. 네 엄마와 너에 대한 감사함만이 남았다. 시시한 글 나부랭이나 쓴다고 앉아 있는 남편을 구박하지 않는 아내, 마치 임박한 마감에 시달리는 전문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 딸이 있어 나는 행복했다. 내 편지를 네게 전달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내 편지를 읽는 너를 몰래 훔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