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일상은 시적인 순간으로 넘쳐난다

영화 <패터슨>(짐 자무시, 2016)

by 이연미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2016)>은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다. 패터슨 출신의 위대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어딘가 어감이 비슷하다. 주인공 패터슨은 이 마을의 버스 드라이버다. 매일 같은 시간(6시 10분에서 30분 사이)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회사에 출근하고 배차 직원과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고는 23번 버스를 운전해 승객들을 실어 나른다. 점심은 아내가 싸 준 빵을 먹고, 저녁은 퇴근 후 집에서 아내와 함께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항상 개를 산책시키고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한잔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기까지가 반복되는 그의 일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바로 ‘시(詩)’를 쓰는 일이다.




패터슨의 반복되는 일상


그는 일상에서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를 쓴다. 출발 전 버스 운전석에 앉아서 시를 쓰고,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시를 쓰고, 지하실의 작은 공간에 놓인 책상 앞에서 시를 쓴다. 화면 위로 그가 적어 내려가는 시가 중첩된다. 패터슨은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시를 쓰는 의사’였던 것과 비슷하다.

패터슨의 일상은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쌍둥이처럼 하루하루가 닮아있다. 일주일이 큰 사건도 소란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아마도 가장 큰 사건은 버스의 전기장치가 고장 나 멈춘 것일 테고, 가장 요란한 사건은 바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남자를 패터슨이 제압한 것일 테다. 사실 모두 별것 아닌 일로 밝혀진다.


시적인 순간의 발견


패터슨의 주위엔 특별한 일은 없지만 일상의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조금씩 변주되는 소소한 일들이 존재한다.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듯이 말이다. 23번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이 날마다 다르고,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다르며, 아내의 저녁 레시피가 다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적인 순간’이란 우리의 삶에서 극적인 무엇이 아니라, 반복되는 유사함 속에서 감지되는 미세한 변화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 속의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시가 탄생하는 ‘아하!’의 순간이라고 말이다.


텅 빈 페이지의 가능성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이 자신의 비밀 노트가 키우던 강아지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낙담해 있을 때, 우연히 만난 일본 시인은 그에게 빈 노트를 선물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라진 노트는 새로운 시(詩)작의 가능성을 연다.

평범함은 때때로 비상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빨래방에서 매일같이 랩을 연습하는 사람,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해 매일같이 체스를 연습하는 사람,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흑백의 패턴을 반복해서 그리는 사람. 영화 <패터슨>은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도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열정에 몰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응원과 찬사의 시(詩)다.

그렇게 다시 월요일,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의 한 주가 시작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