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기예르모 델 토로, 2017)
그녀에 대한 얘기를 해줄까? 목소리를 잃은 공주. 아니면 이 사건들의 진실을 말해줄까?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와 모든 걸 파괴하려 했던 괴물에 대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7)는 푸른빛 물속에 홀로 잠들어 있는 주인공 엘라이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 위로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마치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누군가 곁에서 읽어주는 것만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온통 푸른빛이다. 물속에 떠 있는 엘라이자가 영원한 잠,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난다. 그녀의 곁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와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 사이 그녀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목소리를 잃은 공주”의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는 내레이션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인어공주>다.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내놓아야 했던 인어공주. 그래서일까, 영화 속 주인공 엘라이자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고, 강가에서 발견되어 고아로 길러졌으며, 유독 구두에 애착이 강하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슬픈 결말의 이야기다. 반면에 영화는 인어와 비슷한 신비의 수중 생명체와 엘라이자의 사랑이 위태롭게 이어지다 마침내 해피 엔딩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잔혹한 현실보다 아름다운 판타지를 진짜 결말로 믿는다면, 엘라이자의 목에 있는 흉터가 아가미로 바뀌는 장면은 그녀의 태생이 인어공주와 유사한 수중 생명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덩치 큰 괴생명체와 엘라이자의 사랑은 <미녀와 야수>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미녀와 야수의 사랑, 이들을 방해하는 악당, 그리고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돕는 조력자들, 사랑을 통한 변신 혹은 본모습으로의 회복이라는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를 변주했다.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성에 갇혀 있다면, 이 영화 속 괴생명체는 항공우주센터 실험실에 갇혀 있다. 둘 다 외로운 존재였고 여주인공의 사랑으로 구출 혹은 구원된다.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를 재해석한 듯한 이 영화는, 그러나 동화 속 여주인공의 전형성을 깬다. 엘라이자는 <미녀와 야수>의 벨처럼 눈에 띄는 외모의 미녀가 아니고 사랑을 얻고 나서 공주로 신분 상승이 되지도 않는다. 사실 엘라이자는 장애를 지닌 청소부라는 사회의 주변인 신분이다. 게다가 엘라이자는 사랑에 수동적이고 운명에 순응하는 인어공주와 다르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이웃이자 성 소수자인 자일스, 동료인 흑인 여성 젤다, 러시아 스파이 드미트리 박사와 협력해 권력자 스트릭랜드로부터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사회적 약자들 – 장애인, 성 소수자, 흑인 여성, 외국인이 차별과 폭력에 맞서 연대하는 힘을 보여주며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동화를 완성했다.
“그는 내가 뭐가 부족한지 몰라요.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몰라요. 그는 날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날 봐요.” 엘라이자는 간절한 눈빛과 격정적인 수화로 이렇게 말하며 자일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엔 장애도 편견도 없다. 둘은 눈빛과 손짓으로 소통하고 음악으로 교감한다.
엘라이자의 환상 속에서 그녀는 그에게 노래로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미녀와 야수>의 명장면인 무도회장 신을 빼닮은 이 장면은, 음악의 선율에 맞춰 두 존재가 종(種)을 뛰어넘어 사랑으로 합일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은 특정한 형태 없이 대상의 주위를 감싸며 존재한다. 물도 형태 없이 대상을 서서히 적시다가 어느새 푹 잠기게 만든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대의 모양 무언지 알 수 없네
내 곁엔 온통 그대뿐.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I find you all around me.)
영화는 수백 년 전에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읊조렸다는 이 시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사랑을 노래하는 시, 사랑을 이야기하는 동화, 사랑을 그린 영화가 형태는 제각기 달라도 이토록 닮은 것은 사랑의 본질이 결국 하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