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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y 14. 2024

반전(反戰) 시위 (1)

프리퀄: 2023년 12월 반유대주의 청문회

지난달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서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프린스턴에서 온 편지를 구독하시면, 이 글처럼 아메리카노에서 다룰 이야기, 또 아메리카노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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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북쪽에 있는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캠퍼스에서 시작된 반전 시위가 미국 전역 대학가로 번졌다. 시위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규탄하면서도 주로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인도주의 위기를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비판했다. 이번 시위가 친팔레스타인 시위(pro-palestine protest)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처음엔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시위가 진행됐지만, 대학 측의 요청을 받은 뉴욕시 경찰(NYPD)이 캠퍼스로 진입해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고 학생들을 강경 진압, 체포하면서 시위는 미국 전역의 캠퍼스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글을 쓰고 있는 12일 현재 3주 넘게 계속된 시위에서 체포된 학생과 시민의 숫자가 3천 명에 육박한다. 5월은 미국 대학교의 졸업 시즌인데, 시위로 인해 졸업식을 취소한 학교도 있고, 전체 졸업식은 취소하고 단과대, 학과 별로 조용히 졸업장만 수여한 곳도 있으며, 졸업식을 예정대로 진행했다가 충돌이 빚어진 곳도 많다.

학생들이 반전 시위를 벌이며 캠퍼스에서 농성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톱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글을 썼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쓰다 보니 계속 관련해 짚어야 할 이야기들이 쌓였다. 그러는 사이 가자지구의 상황도 휴전이나 평화로 가는 길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를 점령할 준비를 마쳤다.

대학생들의 시위를 촉발한 근본적인 원인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있다. 물론 이스라엘군에 공격의 원인을 제공한 건 지난해 10월 7일 테러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였다.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한 테러를 무슨 수로 정당화하겠냐마는 하마스는 그동안 이스라엘 점령군의 행동을 이유로 들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잘잘못을 가리기도, 누구 책임이 더 큰지 따지기도 정말 어렵다. 과연 이토록 해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또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오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근본적인 역사 이야기는 일단 논외로 하고, —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뤄보겠다. 혹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테러 공격 직후 스브스프리미엄에 썼던 이 글을 참조해 주시면 되겠다 — 가자 전쟁의 전황 이야기도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다루고, 대신 반전을 외치는 미국 대학생들과 시위가 전개된 과정, 그리고 시위를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선과 대응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미국과 이스라엘은 동맹국이 아니다. “상대방을 향한 공격은 곧 나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그 흔한 상호방위 조약 같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두 나라의 관계가 서먹하거나 데면데면하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둘은 그런 조약이 필요 없을 만큼, 흔한 동맹을 뛰어넘는, 혈맹이란 표현으로도 모자란 사이다. 가족도 아니고, 그냥 서로 한 몸이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을 1티어라고 가정할 때 만약 그 위에 0티어가 있다면 그 유일한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는 등 군사 원조를 할 때 티를 내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세금으로 친구를 도울 때는 내역을 공개하고 여론의 추이를 살펴야 하지만, 가족을 돕는 건 당연한 거라고 비유하면 지나칠까.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넘어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1,300명 넘는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1만 2천 명 넘게 다쳤으며, 150여 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이 겪은 최악의 테러였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라 중에 이번 공격에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치를 떤 나라가 있다면 그 또한 미국일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을 앞두고 정치적인 양극화가 극에 달한 미국이지만, 당적에 상관없이 한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이슈가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지지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테러를 강도 높게 규탄했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대폭 늘렸다.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2020년 기준 760만 명, 미국 전체 인구의 2.4%다. (조부모 중 한 명이라도 유대인인 사람까지 포함하면 1,500만 명.) 인구만 따지면 많지 않지만, 유대인이 미국 사회,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인구에 비해 훨씬 더 크다. 투표 성향을 보면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대인이 더 많지만, 그렇다고 공화당이 유대인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선거 때마다 공화당이나 보수 성향 수퍼팩(Super PAC)에 거금을 쾌척하는 유대인 부자들도 많다. 이들은 하마스의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이 이스라엘에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미국 사회 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유대인을 향한 차별이나 반유대주의를 이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유대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곳을 찾아 압박했다. 이들 눈에 띈 대표적인 곳이 바로 대학교였다. 특히 보수 성향 인사들의 눈에 비친 “요즘 (엘리트) 대학”들은 급진적인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의 온상”이었다. 전에도 여러 에서 자주 언급한 적 있는 뉴욕타임스의 투표소 단위로 그린 대선 결과 지도를 참조하시라. 우편번호나 도시 이름으로 검색할 수도 있지만, 주요 건물, 지명으로 검색할 수도 있다. 웬만한 대학교 이름을 쳐보면 거의 예외 없이 파랗다. 주변은 온통 빨간 곳도 대도시들은 대체로 푸른데, 파란색이 짙은 곳에는 높은 확률로 대학교가 있다. 민주당에 투표하는 사람을 급진 좌파라고 부르는 건 한마디로 ‘억까’일 테지만, 아무튼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 듯하다.


반유대주의 청문회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환호 버튼”을 재빠르게 알아챈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 엘리제 스테파닉 의원이다. 1984년생 젊은 정치인인 스테파닉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그를 지지할지 말지를 두고 공화당이 갈라졌을 때 재빨리 트럼프 쪽에 줄을 댔고, 이후 승승장구다. 하원 내 공화당 서열 3위 당직에 해당하는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은 원래 리즈 체니였는데, 체니는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정치 인생도 끝났다. 스테파닉은 그 자리를 꿰찼다.

스테파닉은 이번에 “좌파의 온상인 엘리트 대학”을 공격하는 선봉에 섰고, 보수 사이에서 청문회 스타가 됐다. 하원 교육, 노동위 소속으로 자기가 학부를 나온 하버드대학교의 당시 클라우딘 게이 총장을 비롯해 MIT, 펜실베니아대학교 총장을 청문회 증인석에 세운 스테파닉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VtAZBvmzcQ

지난해 12월 5일 열린 청문회를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하는 장면이다. 스테파닉 의원은 똑같은 질문을 세 번 했다.

“총장님네 학교에서 구성원이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자’는 구호를 외친다면, 이는 괴롭힘, 폭력 등을 금지한 윤리 규정과 학칙 위반입니까, 아닙니까? 네, 아니요로만 답해주세요.”

저 영상만 보더라도 이 청문회는 증인에게 설명을 구하고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한 자리라기보다 증인을 압박하고 몰아세우는 의원이 돋보이고자 하는 자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청문회가 그런 건 아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영상을 참조.) “네, 아니요로만 답하라”는 고압적인 질문은 대표적인 ‘답정너 질문’이었다. 3분 35초 분량의 짧은 영상에서 스테파닉 의원은 끝부분에 이미 “답이 뻔한 질문에 당신들은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며 언성을 높인다.

총장들의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불필요하게 두세 수를 내다봤는지 자꾸 사족을 붙였고, 답정너 질문의 덫에 빠지며 화를 자초한 점에서는 특히 비슷했다. 이런 식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말씀하신 그런 구호를 외치는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맥락에 따라, 또 해석하기에 따라 유대인을 향한 공격을 선동하는 소지가 있는 발언이 없지 않았지만, 해당 발언들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발언 자체를 반유대주의 발언이나 혐오발언으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테파닉 의원은 총장들이 이유를 대고, 근거를 설명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미 다른 말을 곁들여 답변을 시작하려 하면 곧바로 “네, 아니요로 먼저 답하세요!”라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일갈한다.

“그런 구호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학생들과 시위대가 인티파다(intifada)를 외치지 않았나요? 인티파다는 유대인을 말살하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데, 거기서 왜 맥락을 따집니까?”

총장들은 이 지점에서 반박하고 싶었을 거다. 구글에 “인티파다, 유대인 집단 학살(intifada meaning genocide of jewish)”라고 검색만 해봐도 바로 스테파닉 의원의 논리가 얼마나 비약이 심한 억지였는지 설명하는 과 칼럼이 쏟아져 나온다. 자꾸 이야기가 샛길로 새니,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면, 인티파다(아랍어로는 انتفاضة)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에 맞서 펼치는 모든 종류의 저항을 포괄하는 말이다. 영어로는 “uprising”으로 옮기는 것이 맥락에 가장 맞다.

비폭력 저항운동과 폭력적인 수단에 호소하는 저항 운동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인티파다를 외쳤다는 것 자체가 유대인 집단 학살을 부추긴 것인지 따져보려면 총장들이 답한 것처럼 맥락을 아주 꼼꼼히 따져보는 게 맞긴 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애초에 이 청문회는 의원들과 총장들이 반유대주의를 정의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결국 증인으로 나선 총장 세 명 가운데 MIT의 샐리 콘블러스 총장을 제외한 펜실베니아대학교 리즈 맥길, 하버드대학교 클라우딘 게이 총장은 사퇴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일어난 반전 시위 이야기를 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지난해 열린 의회 청문회 이야기만 잔뜩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도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뒤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그래서 하원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원래 컬럼비아대학교의 네맛 샤픽 총장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고 초청했다. 그런데 샤픽 총장은 오래전에 기후변화 관련 국제 행사에 참석하기로 돼 있어서 청문회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사실 먼저 맞는 친구를 보고 나는 안 맞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친구들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제일 좋지 않겠는가. 샤픽 총장은 아이비리그 총장들을 가차 없이 몰아세우는 청문회와 그 이후 일어난 후폭풍을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청문회에 출석하는 걸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철저히 준비한다.

샤픽 총장의 청문회는 4월 17일에 열렸다. 논리적으로는 앞선 세 총장의 답변이 타당할지 몰라도 이 청문회는 논증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샤픽 총장은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인다. 공화당 의원들은 만족감을 표했다. 박수갈채도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격을 규탄해 온 일부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은 총장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 날 밤, 정확히는 이튿날 동이 트기 전 새벽 무렵, 학생들은 캠퍼스에 텐트를 치고 농성에 들어간다. 2024년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시작됐다.


++ 샤픽 총장이 출석한 청문회 이야기와 시위의 전개, 확산 과정, 시위를 바라보는 여론과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셈법 등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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