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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29. 2019

엄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딸에게 모든 걸 해주고 싶은 엄마 이야기

'엄마'는 누구에게나 그 이름만 들어도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지구 상에서 정말 특별한 존재이다.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이지만 엄마가 주는 애틋함은 넘어설 수 없다. 10대 때까지 엄마는 마냥 좋은 존재였고, 20대에는 나도 머리 좀 컸다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고, 30대가 되니 이제 모든 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엄마를 향한 감정이 한층 더 겹겹이 쌓였다. 


30대, 즉 결혼하고 나서 나는 20대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왜 이렇게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을까. 자식들의 흔한 레퍼토리 "엄마 내 옷 어딨어? 이거 그냥 빨면 어떡해? 이거 오늘 입으려 했는데 왜 빨았어?" 와 같은 것들은 기본. 아침부터 가득 차려둔 한상을 보고 "아침에 입맛도 없는데 뭐 이렇게 잔뜩 차렸어? 나는 그냥 빵 먹을래" 아마도 가족 중 누군가 생일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에게 꾸중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몹쓸 짓을 많이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내게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꿀밤을 아주 세게 날려주고 싶다. 내가 엄마가 되어도 과연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투정하는 '어린 나'에게 혹은 내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내 옷 어딨어?" -> "너 옷은 이제 너가 찾아 입어야지. 엄마가 언제까지 챙겨주리?"

"이거 그냥 빨면 어떡해?" -> "엄마가 세탁소냐? 그렇게 중요한 거면 너가 따로 분리해놨어야지"

"이거 오늘 입으려 했는데 왜 빨았어? -> "그럼 너가 옷을 예쁘게 접어두던가. 엉망으로 해놨으니 더러워 보여서 빨았지."


물론 아직 엄마가 안 되어봐서 모르겠지만 내 성격 상 우리엄마처럼 착하게만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 엄마는 오히려 내게 미안해했으니까.. 지금 나는 남편이 가끔 짜증내는 말투로 말하면 왜 그렇게 말하냐고 불쑥 정색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자식들의 짜증을 어떻게 다 견뎌낸 건지. 사랑인 건지 희생인 건지 참으로 대단하고 미안하다. 




결혼할 때 가장 슬펐던 순간은 엄마가 나를 위해 각종 양념재료와 필요한 식기구들을 챙겨놓았을 때이다. 예쁜 그릇이나 굵직한 것들은 내가 직접 골라서 샀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은 엄마가 다 챙겨주었다. 그것들이 지금 살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결혼 후에 살 것들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엄마가 챙겨준 덕분에 살 게 별로 없었다. 


당장 요리할 때 필요한 설탕/소금/고춧가루/깨소금 등과 간장/고추장/된장/올리고당/식초까지 엄마는 모든 것들을 다 챙겨주었다. 특히나 엄마는 양념들을 대충 아무 데나 담아서 쓰면서 나를 위해 깔끔한 통을 구입하고 거기에 라벨지를 붙여서 각종 양념들을 담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엄마, 이거 스티커 똑바로 붙여야지"라고 마음에 없는 잔소리나 툭 해놓고, 방에 들어가서 몰래 침대에 파묻혀 울었던 기억이 난다. 



친정 집에 한 번 다녀올 때면 항상 양손 가득하게 들고 오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표 반찬들. 딸이 바깥 음식은 덜 먹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일하느라 바쁜데 요리할 시간은 별로 없다는 걸 알고선 엄마는 늘 우리집 냉장고를 채워주신다. 결혼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도 엄마 반찬이 없으면 식탁이 채워지지 않는다. 


반찬을 핑계로 집에 부르시기도 한다. "김치 맛있게 해 놨는데 안 가져갈래?", "너가 좋아하는 멸치볶음 잔뜩 해놨어" 그 말은 사실 모두 "우리딸 보고싶어"라는 걸 알기에 반찬이 필요하든 안 필요하든 엄마가 무언가 가져가라고 말할 때면 늘 찾아가려 노력한다. 


어느새 찬장에 반찬통이 가득 쌓였다. 이는 엄마에게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냉장고도 텅텅 비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엄마가 해준 반찬이 제일 맛있다. 자꾸 엄마에게 반찬을 받아다 먹으면 내 요리실력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러 계속 반찬을 갖고 오고 싶다. 




글을 쓰는 내내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 졌다.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해 핸드폰 사진첩을 뒤졌는데 온통 연애시절 사진과 친구들과의 추억뿐이다. 간간히 가족사진도 있긴 하지만 비중이 너무나 적다. 나의 20대는 사랑과 우정에 빠져 사느라 가족과의 시간은 5%도 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엄마에 대한 감정이 더 두터워질 것 같다. 이 울보가 그때 되면 또 얼마나 울지 눈에 훤히 보인다. 아마도 나는 평생 엄마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것만 같다. 미안한 마음이라도 덜 들기 위해 미리 잘해드려야겠다. 우리 엄마가 나의 엄마라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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