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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Mar 29. 2020

코로나가 바꾼 주말 식탁

외식이 사라졌다. 주말에 한 끼나 두 끼는 꼭 외식을 하였는데 이제 모든 끼니를 오롯이 집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벌써 이렇게 된 지도 어언 두 달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러한 일상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아직도 초보 요리사긴 하지만 제법 여섯 끼를 서로 다른 메뉴로 구성하는 데 능숙해졌다. 배달 음식은 치킨과 피자를 제외하고는 선호하지 않아서 선택지에 잘 없는 편이다. 외식이 사라졌으니 남은 선택지는 오직 집밥뿐이다.


3월 28일~29일 이틀간 먹은 집밥을 기록해 보았다. 훌륭한 레시피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나는 '초보' 요리 실력을 갖추었고, 동시에 가능한 요리는 2개까지 만이다. 3개부터는 패닉이다.




3월 28일 토요일 아침


9:30 단호박 샌드위치+바나나 셰이크+대저토마토


아침엔 주로 빵을 먹는다. 워낙 빵을 좋아하는데 간식으로 먹기엔 칼로리 부담이 있어서 아침에 먹는 것을 택한다. 나름 건강을 챙기고자 호밀빵을 구입했다. 코스트코에서 구입했는데 두 줄에 6,000원 정도로 가성비가 최고다. 냉동실에 소분해서 넣어놓고, 먹을 때마다 발뮤다 토스터기에 구워 먹는다. 토핑으로는 단호박 샐러드와 끼리 크림치즈를 택했다. 단호박 샐러드는 지난 친정에 들렸을 때 엄마가 해준 것. 단호박과 크림치즈의 조합은.. 천국이다!


바나나가 너무 익어버려서 셰이크로 먹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살짝 해동시켜서 우유와 단백질 분말을 한 숟갈 넣고 믹서기에 갈아 먹었다. 평소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의도적으로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식으로는 온라인으로 주문한 대저토마토. 요즘 제철이다. 가격은 조금 사악하지만 한 입 먹어보면 또 지갑을 열게 된다. 외식을 안 하니까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는 데는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월 28일 토요일 점심


13:30 냉이된장국+냉이무침+치킨봉+오이소박이+김+멸치볶음+고구마순


엄마가 준 냉이로 냉이무침과 냉이된장국을 끓여보았다. 엄마가 다 손질을 한 상태로 줘서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냉이 향이 왜 좋은지 몰랐는데 지금은 봄철만 되면 달래와 함께 꼭 먹어야 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치킨봉은 이마트에서 주문한 건데 좀 짭짤해서 밥 반찬으로도 괜찮다. 에어프라이어에 8~10분만 돌리면 끝이다.


멸치볶음은 잔뜩 볶아서 오래 저장해 두고 매일 꺼내먹는 밑반찬 중에 하나이다. 그 외 김, 고구마순, 오이소박이는 엄마가 준 반찬이다. 참고로, 김은 아빠가 어디에서 선물로 받아온 비싼 김이라며 엄마가 직접 한 장 씩 굽고 소금 뿌리느라 고생하셨다는데.. 먹어보니 역시 직접 구운 게 최고로 맛있다. 사실 저 반찬들 중에 김이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맛있었다. 비싼 재료와 엄마의 정성이 담기니 맛이 두배 세배 높아진다.




3월 28일 토요일 저녁


19:00 돼지고기 콩나물 밥+오이소박이


김나영씨 유튜브를 보다가 아이에게 콩나물밥을 해주는 것을 보고 따라 해 보았다. 그녀는 소고기 다진 것을 활용했지만 우리 집 앞 정육점에는 돼지고기 다진 것만 남았길래 변형해서 만들었다. 이 콩나물밥의 특징은 바로 콩나물을 따로 데쳐서 밥 위에 올려 먹는 것이다. 밥과 함께 밥솥으로 익혀버리면 콩나물의 아삭함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먹으니 약간 비빔밥 같기도 하고 내 입맛엔 훨씬 좋다. (부드러운 콩나물밥을 원한다면 원래 레시피가 적합할 것이다)


너무 간단한 요리지만 그래도 처음 해보는 거라서 맛없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남편이 맛있게 먹어줘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거 별미인데?" 라며 두 공기째 먹는 걸 보니 어찌나 행복한지. 내가 만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결혼 후에 많이 알게 됐다.




3월 29일 일요일 아침


08:00 어제와 똑같은 빵+사과+서리태두유


빵은 어제 먹은 것과 똑같은데 이번엔 합쳐놓질 않았다. 직접 발라 먹는 재미도 있어야지?! 사실 아침을 준비할 땐 이걸 바르는 것조차 분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오늘은 사과와 두유를 곁들여 먹었다. 두유는 윙잇에서 몸에 좋은 서리태두유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너무 단맛이 없다. 분명 꿀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샀는데.. 역시 설탕이 좀 들어가야 맛있는 것 같다. 처음에 그냥 먹어보고 내 입맛엔 도저히 안 맞아서 절반을 버렸다. 이번엔 꿀을 한 바퀴 두르고 먹었더니 먹을만했다.




3월 29일 일요일 점심


12:00 떡만둣국+배추김치


오늘 점심의 컨셉은 명확하게 '냉장고 털이'이다. 냉동실에 얼려둔 사골국과 손만두, 떡을 활용했다. 주말에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요리를 하기가 싫어진다. 분명 시간적 여유는 평일보다 훨씬 많음에도 오히려 그 시간을 요리에 쓰기 싫다고 할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를 하거나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걸 먹게 된다.  


오늘 먹은 점심은 아주 아주 간단하지만 영양가도 높고 맛도 있어서 만족스럽다. 남편도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가며 맛있게 잘 먹어줘서 고맙다.




3월 29일 일요일 간식


16:00 아빠가 키운 고구마+시장에서 사 온 감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데도 왜 이렇게 금방 출출해지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500보도 안 걷는 것 같은데 이 놈의 배는 계속 고프다고 난리다. 이참에 또 오래 보관해둔 감자와 고구마를 털어야겠다. 작년 가을에 아빠가 심어둔 고구마 밭에 가서 함께 캐왔는데 내 종아리만큼 큼직해서 못 먹고 남겨둔 큰 놈을 오늘 다섯 등분으로 썰어서 감자와 함께 쪄 먹었다. 감자는 집 앞 시장에서 3천 원어치 사 왔는데 너무 많아서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맛은 쏘쏘.


찐 고구마는 너무 맛있다.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어도 맛있고. 사실 나는 고구마 킬러다. 어떻게 해서 먹어도 다 맛있다. 지인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고구마를 식사 대용으로 먹던데 나에겐 무조건 간식이다. 마른 사람들이 살을 찌우기 위해 간식으로 고구마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나는 뭐지?.. 과자를 먹는 것보다는 고구마 간식이 나으니까 위안 삼고 그냥 먹고 있다.




3월 29일 일요일 저녁


18:30 너구리 라면 2개+유부초밥+오이소박이


메인은 유부초밥이었는데 국물로 먹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라면이 떠올랐고, 둘이서 라면을 1개만 끓이면 분명 아쉬우니까 2개를 끓이며 결국 주객전도된 오늘의 저녁 식사. 하지만 라면 2개를 끓인 건 너무나도 옳은 선택이었다. 1개만 끓였으면 분명 싸움 났을 것 같다.


유부초밥에는 어제 콩나물밥을 만들어 먹고 남은 돼지고기 다진 것을 같이 넣어서 만들어봤다. 고기에 양념을 적당히 해놔서 그런지 평소 먹던 유부초밥보다 더 맛있었다. 역시 뭐든 고기가 좀 들어가야 맛있다.





이번 주말도 잘 먹었다.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만큼 채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항상 맛있다고 해주는 남편의 칭찬도 계속 요리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체감 상 코로나가 잠잠해진 느낌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엄청 솟구치지만 우리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당분간 이런 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먹는 즐거움이라도 있으니 집콕 생활이 생각보다 버틸만하다. 다음 주엔 또 뭐해 먹으며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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