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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l 28. 2021

나는 부모님의 영원한 아기

아이가 생기고 나면 부모님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아기를 낳고 난 후 자주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우며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한다.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철부지 어린 딸의 행동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육아가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아직도 엄마에게 반찬거리를 부탁한다.


사실 나는 꽤나 의젓한 딸이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선 되려 서운할 수도 있다. 힘들거나 불안한 일이 있어도 잘 내색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남들은 쉽게 부모님께 기대는 일에도 나는 괜찮다며 남편과 단 둘이 해결하려고 한다. 출산을 앞두고도 그랬다. 출산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무섭고 떨렸지만 부모님께는 덤덤한 척했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할  거란 걸 알았기 때문에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미리 얘기해두었다. 내가 만약 급하게 산부인과에 가게 되어도 출산이 어느 정도 진전되지 않은 상태라면 부모님들께 연락하지 말라고 해두었다. 아기가 언제 나올까 노심초사 기다리며 걱정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미리 당부할 필요도 없었을 만큼 출산 당일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침 10시에 병원을 도착한 후, 8시간의 진통 끝에 저녁 6시경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남편이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부모님은 무척 기쁘기도, 놀라기도 하셨다. 분만실에서 아직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통화를 해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따 병실로 이동해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급하게 끊었다.


병실로 옮겨진 후 몸과 기분이 다 얼얼했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고?’ 믿기지 않았다. 남편이 입원처리를 하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고생했다고 위로해주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와 짧게 통화를 나눈 후 바로 엄마를 바꿔달라고 했다. 이번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마 보고 싶어..”를 외치며 펑펑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고생했지, 우리 아기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못 가고 어쩌나..”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손녀가 보고 싶은 건가 했는데, 손녀가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거였다. 엄마에게는 출산을 한 딸도 아기나 다름없었다. 사실 엄마에게 보고 싶다는 말도, 엉엉 울어본 적도 언젠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뚝뚝한 딸이었는데 출산을 계기로 나 스스로 쌓아둔 벽이 조금 무너진 기분이 들었다.


몇 달 후, 친정집에 아기를 데리고 처음 간 날 부모님은 손녀가 왔다며 무척 기뻐하셨다. 집도 깨끗이 청소해두고, 아가를 눕힐 새 이불도 꺼내놓으셨다. 아기와 한 바탕 놀아준 후 점심식사를 하는데, 아빠가 나를 보며 “우리 아기도 잘 먹어야지~”라고 하셨다. 엄마처럼 아빠에게도 나는 여전히 아가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괜히 찡한 마음에 눈물이 흐르려는 걸 꾹 참았다. 그 자리에선 티 내지 않았지만 아빠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 대단한 위로가 되었다.






예전에  혼자 산다에 용감한형제가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성인이자 조금은 험상궂게 생긴 용형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우리 아가라고 호칭하는  보고 패널들이 웃었다. 나도  장면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마음을   같다. 겉모습이   어른이라도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아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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