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단편집
일하다 말고 울리는 키즈노트 알림.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서둘러 앱을 켠다. 오늘도 우리 아가 잘 놀고 있나, 오늘은 또 어떤 귀여운 장면이 포착됐을까 기대감에 차 있다. 귀여운 사진 한 무더기 아래에 아이의 흉터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아뿔싸 이게 뭐지?’
다급하게 선생님이 쓰신 알림장 글을 확인했다. "어머님.. 죄송한 말씀드리려고 해요.."라는 말로 시작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이가 놀다가 친구가 세게 깨물어서 상처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속상해서 우는 아이를 선생님께서 잘 달래주고 약도 발라주었다고 했다. 우리 애는 걷다가 무릎이 깨져도 안 우는 앤 데.. 얼마나 아팠으면 울었을까 싶은 마음에 걱정이 한가득 밀려왔다.
알림장을 확인하면 연락 부탁 드린다는 선생님의 메시지는 잠시 접어두고, 속상함에 키즈노트만 켜두고 생각에 잠겼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아이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깨문 아이도 아직 어린 아기인데..' 차분하게 생각하자 처음에 놀랐던 마음은 어느새 가라앉았다.
선생님께 연락해서 뭐라고 말할까 고민했다. 무엇보다 내게 너무 죄송해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시는 데 찰나의 순간까지 선생님이 어찌 다 보실 수 있을까. 하물며 집에서 부모 둘이서 아이 하나를 봐도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거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궁금하긴 했다. "우리 아이를 깨문 그 친구가 다른 친구도 깨무나요?"라는 날 것의 질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습관을 가진 친구라면 선생님께서 먼저 얘기해 주실 터였다. 반대의 상황이라 가정했을 때, 그 질문이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도 예의 없는 행동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자마자 선생님께서 많이 죄송해하는 눈치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상황 설명만 짧게 들은 후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아직 다른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을 시간이라 내가 길게 붙잡고 있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선생님께 문자 한 통이 왔다. 상대 아이의 엄마에게도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무척이나 죄송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깨달았다. 만약 우리 아이가 다른 애를 깨물었더라면 나는 당하는 아이의 엄마였을 때 보다 더 난처하고 속상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너무 어린 아기들이라 집에서 훈육한다고 해도 '깨무는 일'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답장했다.
"선생님~ OO 어머님께 꼭 우리 아이도, 저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다친 엄마의 마음보다 다치게 한 엄마의 마음이 더 속상할 것 같네요.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도 충분히 최선을 다해주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감사해요"
다행히 아이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아이에겐 일부러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혹여나 아이가 그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될까 봐 말을 삼켰다. 그리고 다음날, 어린이집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고, 등원을 맡은 남편, 하원을 맡은 친정엄마에게도 그 소식이 닿았다. 선생님들이 모두 나에게 감동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요즘 이상한 학부모들이 많다 보니 선생님들께서 작은 사건 하나에도 긴장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에 비해 간결하고 뒤탈 없는 나의 대처가 감사했나 보다. 사실 감사받을 일은 아니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평소에 선생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지 알기 때문에 이런 일 하나로 신뢰를 깨트린다거나 불 같이 화낼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우리 아이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부디 부모들이 눈앞에 닥친 사건 하나만 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이를 망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