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드3_ 쁘쯔뜨끄와 짧은 이야기
스페이드3 (아사이 료, 이야기가있는집)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유독 나에게만 거슬리는 신경쓰이는 그런 존재.
신경을 쓰면 쓸 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실수하고, 쪼그라드는 그런 존재.
내가 하는 일은 족족 엉망진창 망해 버리는데, 걔는 뭐든 척척 완벽하게 잘하는 존재.
뭐든 나쁜 건 나, 좋은 건 걔 가 되는 존재.
드라마 "또 오해영" 의 예쁜 오해영 같은 그런 존재.
그런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학창 시절에 많이 만나고, 나이가 들면서 두 가지 형태로 변형이 된다.
하나, 극복해내는 경우 거슬리는 그 존재를 잊고 발전한다.
둘, 더 깊이 그 그림자에 갇혀 허우적 거린다. 이런 경우는 보통 "그 존재"와 닮아가기 마련이다.
어느 쪽으로 변형이 되는지, 어쨌든 학창시절에 만난 "그 존재"라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방향으로든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 하게 된다.
내 경우를 따져보면, 긍정적인 경우에는 "롤모델"
부정적으로는 "라이벌"로써 마음에 자리 잡는다.
있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 존재" 라는 것이.
"내가 걔 보다는 잘할거야."
"내가 걔 보다는 좀 낫지."
" 걔가 뭐가 예쁘냐?"
같은 류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때도 있고.
"걔의 인생에도 이런 찌질한 일이 있을까?"
"걔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걔는 왜 저렇게 행복한 일만 일어나고, 나는 불행한거야."
"걔는..."
같은 류로 머릿속에서 나를 갉아 먹을 때도 있다.
어떤 류가 되었든, 내가 걔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은
내 스스로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그 때에 불쑥 불현듯 까꿍! 하고 나타난다.
세상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나타나는 것 처럼.
미치요, 무쓰미, 츠카사.
세 주인공이 각각 가지고 있는 "그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셋은 퍼밀리어 라는 츠카사의 팬클럽으로 연결되어있다.
언제나 그렇듯 일본소설 느낌이 충만한 책이다.
위태로울 것 같다가도 그렇지 않은.
커다란 사건이란 게 터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원투 펀치로 강냉이를 날려버릴 파워가 아니라.
쉴틈 없이 잔잔하게 마음을 툭툭 쳐 대는 이야기들이 수두룩 빽빽한 책이다.
공감이 될 수도,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 책.
하필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요즘 같은 때에 읽어서,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아홉수라 그래."
에서
" 그 년 때문에 그래." 로 바뀌어 버렸다.
문제의 본질은 "그 존잭"가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느끼게 하는 책.
그런 책을 읽었는데 나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 버렸다.
잊고 있던 "그 존재" 가 머릿속을 둥둥 떠나니고 있다.
기분이 아주 더러워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