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평 반.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도보로는 15분 거리. 언덕 위 산자락에 위치한 20년 된 낡은 빌라. 베란다가 넓어 해가 잘 들었지만 베란다가 넓어 결로가 심했던 그 곳.
그 집이 우리의 신혼집이었어요. 달콤한 신혼의 시작을 곰팡이와 함께 맞이해야 했지만. 참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남편이 있고 내가 있고 소중한 아이가 생긴 곳이었으니까요.
오후에 언덕 아래로 잔잔하게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집이 낡아도 풍경이 좋아 좋다며 웃을 수 있던 집.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 육아를 위한 물건이 늘어나는 만큼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고. 공간이 줄어드는 만큼 우울함이 깊어졌습니다. 얼룩덜룩 곰팡이가 피어오른 벽 아래에서 아이에게 수유를 해야 하고 낡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을 피하려 태열이 오른 아이를 이불로 둘둘 말아놓아야 했거든요. 아이에게 뭐든지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다 담기지 않을 만큼 좁아 터진 그 집. 전 결국 그 집이 미워져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양가 형편 상 아무 도움없이 시작해야 했던 신혼생활. 각자 양가의 생활비를 지원하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던 저희가 가진 거라곤 낡은 빌라 전세금이 전부. 그래도 아이가 생기기 전 3년, 부지런히 일하고 갚아 대출금이 없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수시로 앙앙 우는 아이를 받쳐 안고 달래며 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검색의 시작은 호기로웠어요. ‘아이 키우기 좋은 아파트’, ‘25평 아파트’, ‘산책하기 좋은 동네’. 그러나 검색결과는 참 슬펐습니다. 서울 집 값이 비싸단 말은 익히 들어봤지만 전부 남의 일이다 생각하고 무관심 했던 제게 ‘그거 이제 남의 일이 아니고 네 일이란다. 이봐, 정말 비싸지?’ 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콧대높은 결과들이었거든요. 포기해야 할까? 그냥 여기서 살다보면 적응해서 괜찮아지지 않을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아파트 가격들에 지쳐 ‘몇 억’이 우스워 보이고 더불어, 열심히 살아 온 ‘제 삶’도 우스워보였어요. 이십대를 받쳐 열심히 일 했는데 집 한 칸 내 마음대로 가지지 못하는 삶이라니. 아이에게도 참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언감생심 노려볼 수도 없는 가격이니 어쩌겠어요. 이사가려던 마음을 접어야지 미련을 버려야지 하며 남편과 아픈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포기하지 말고 더 알아보라는 신호를 보내셨어요. 저희가 전세로 살던 집이. 내려다보는 노을이 좋았던 그 집이.
새로운 집주인에게 팔렸거든요.
그리고 그 새 주인이 3개월 후부터 그 집에 살아야 한다고 저희에게 통보를 해왔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에 ‘앗 뜨거’라며 놀랄 겨를도 없었습니다. 핏덩이를 안고 길 위에 나 앉을 순 없으니까요. 일단 불에 덴 발로 서울 외곽, 처음 보는 동네들을 누벼야 했습니다. 12월의 찬 겨울, 이상기온으로 인해 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 몸을 녹이기 위해 잠시 들린 카페에서 다시 꺼내 든 스마트폰에 현실적인 검색어들을 입력했습니다. ‘저렴한 동네’, ‘싼 아파트’, ‘적은 돈으로 집 사기’. 그러다 찾았습니다. 아니 만났습니다. 이사가라고 등을 떠민 하늘에서 슬그머니 놓아 둔 ‘디딤돌’을요.
처음 만난 디딤돌은 수식어도 참 예뻤습니다. ‘생애 최초 내 집 마련’ 이라니. 여기요! 여기요! 저희가 바로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이에요. 마음이 벅차고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카페 한 구석에 앉아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의 대출요건을 수험생이 수능문제지를 들여다 보듯이 샅샅이 살펴봤어요. 부부합산 연소득 7천만원 이하면 집 값의 70%까지 저리로 대출해준다니, 머리 속에서 멈춰있던 계산기가 윙윙 돌아갔습니다. 전세금에 한정되어 있던 예산이 갑자기 껑충 뛰어 오르니 남편 입고리도 씰룩 씰룩 제 엉덩이도 움찔 움찔 뛰어 올랐어요.
저는 다시 호기로워졌습니다. 높아진 예산을 가지고 공인중개사 문을 똑똑똑 두드렸지요. 예산이 높아지니 아이 키우며 살기 좋은 아파트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집도 보고 저 집도 보고. 마음에 꼭 드는 좋은 집을 보고 돌아온 날은 낡은 빌라도 방금 보고 온 좋은 집같이 느껴졌어요. 이제 곧 곰팡이도 찬 바람도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갈 거란다. 아이에게 속닥속닥 희망적인 이야기를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 켠이 왜 인지 불안불안 했어요. 대출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누군가가 '여기 놓아 둔 디딤돌은 사실 너희를 위한 게 아니란다.' 라고 말하면 어쩌지? 남편도 같이 불안해했어요. 집 값의 70%가 대출이 된다는 말에 예산을 너무 높게 잡은 건 아닌지, 우리 형편에 이렇게 많은 빚을 내어도 되는 것인지. 당분간 외벌이로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해 저보다 부담이 컸던 남편의 눈가에 그늘이 슬금슬금 내려 앉았습니다. 더불어 제 마음에도 불안이 스멀스멀 커졌구요.
그런데 하소연을 늘어 놓는 제게 ‘그렇게 불안하면 예상대출을 조회해보지 그래요?’라며 친한 지인이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에서 최대대출한도와 월별상환원리금이 얼마 정도인지를 미리 조회해 볼 수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불안을 덜 수 있다니. 조회를 통해 우리가 정해 둔 예산이 실현 가능함을 그리고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원리금을 장기로 나눠 갚을 수 있음을 확실하게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 저희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의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이사를 하며 대출금 외에도 여러가지 난관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사라는 것이 이렇게 큰 돈이 들고 이렇게 큰 수고가 든다는 것을 한 겨울 낯선 동네에서 아기띠를 멘 채로 동동거리고 돌아다닌 끝에 뼈저리게 알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 집 마련이 더욱 행복합니다. 이제 더 이상 이사를 다니며 마음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아이가 소년을 넘어 청년이 될 때까지 그리고 우리 부부가 청년에서 노년이 될 때까지 한 집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으니까요.
--------------------------------------------------------------------------------------------
오그리 오글오글...아악 내 손가락!!
주택금융공사에서 수기 공모전을 한다고 하여 작성했던 초고(?). 이 글에 살 붙이고 쭉쭉 늘려서 응모해봐야지 했었는데 때 맞춰 아기님 재접근기 오시고...집안일 퐝퐝 터진 덕분에 응모는 Fail. 뚜두두두두...
공모전 응모를 결심할 때 전업주부라는 직군이 공모전에 응모하기 가장 적합한 직군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전업주부는 지적활동에서 유리되어있다는 사회편견 상 기대치가 낮을 것이라고 혼자 그렇게 지멋대로 생각해서...) 공모전에서 당선된 글들을 보니 오메 시상에나 신춘문예 같은데 도전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공모전에 응모했나 싶을만큼 잘 쓴 글들이 어찌나 많은지 응모했어도 입상은 커녕 어딘가에 처박혀 풀풀 썩었겠다 싶어졌다;;
음료 브랜드 영상 공모전 진행했을 때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참...능력자가 많아...